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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한 화자 Aug 11. 2022

나도 아버지가 되었다.

2022년 8월 10일 11시 44분. 3.13kg의 남자아이를 낳았다. 원래 예정일인 8월 23일보다 약 2주가 빠른 갑작스러운 출산이었다. 3주 전 생긴 임신 소양증이 걷잡을 수 없이 심해져 정기검진일에 가능하면 빨리 제왕절개를 하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고, 상태를 보신 원장 선생님도 바로 수술을 잡아주셨다. '설마 오늘 수술하겠어?'라고 생각하면서 혹시 몰라 입원할 짐을 다 챙겨갔는데 다행히도 바로 수술을 할 수 있었다.


입원과 수술에 관한 설명을 듣고 아내는 수술 전 처치를 받고 기다렸다. 연신 몸을 긁는 아내를 습관처럼 말리다가 이제 수술할 건데 맘껏 긁으라고 했다. 3주 내내 온몸으로 퍼지던 두드러기와 간지러움, 열감을 참는 아내를 보면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이러다 좀 잦아들겠지 했는데 하루가 다르게 증상이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간지러움에 잠까지 설치던 아내 옆에서 나는 속도 모르고 새벽까지 깊게 잠을 잤었는데 어느 날부턴가 아내가 잠결에 온몸을 벅벅 긁는 소리에 잠을 깨기도 했다. 배와 다리, 허벅지, 엉덩이, 등까지. 매일 밤 자기 전 샤워를 마친 아내는 온몸에 스테로이드 로션을 발랐다. 터질 듯 나온 배와 온몸은 타들어 가듯 붉어져서 보고 있으면 아이고 소리와 한숨밖에 나오질 않았다. 처방받아온 약이라도 좀 먹었으면 좋으련만 둘이서 최대한 빨리 수술하는 쪽으로 하자고 의논을 하고 나서는 이제 곧 수술이니 조금만 참아보겠다며 아내는 버텼다. 남들은 피떡이 되게 긁는다던데 아내가 존경스러웠고, 아기를 향한 모성애는 숭고해 보였다.


아내가 수술실로 향했다. 같은 병원에서 2번의 소파수술을 했었는데 그때마다 갑작스럽게 수술실에 들어간 기억 때문에 이번엔 아내를 꼭 안아줬다. 수술 잘될 거라고, 금방 우리 밍밍이를 만날 거라고 서로를 토닥였다. 수술은 원장님이 들어가고 10분이면 끝난다더니 10분이 10시간 같았다. 얼마 후 우렁찬 울음소리가 들렸고 직감적으로 저게 내 아이의 울음소리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울컥하는 마음에 눈물이 나려고 했지만 꾹 참았다. 그런데 몇 분이 지나도 아기가 나오지 않아 수술실 앞을 서성이다 뒤를 돌아섰는데 간호사 선생님이 이불에 쌓인 핏덩이를 나에게 보여주는 게 아닌가. 허겁지겁 핸드폰을 꺼내 아이를 찍었다. 눈에선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건강해요?" "네, 울음소리 들으셨죠?" 엉엉 울면서 아기 얼굴을 찍었다. 고마웠고 대견했다. 이렇게 큰 생명체가 아내 뱃속에 있었다는 게 놀라웠고 그런 아내가 또 존경스러웠다. 아기가 들어가고 의자에 앉아 엉엉 울었다. 두 번의 유산 끝에 얻은 아들이었다. 1년 전 두 번째 소파 수술을 하러 들어간 아내 뒤로 다른 사람들의 아기 울음소리가 들릴 땐 그게 너무나 서러웠다. 내 귀엔 들려도 좋지만 아내에겐 들리지 않았으면 했다. 왜 수술실 위치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병원도 참 야속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랬었는데... 이렇게 건강하고 예쁜 아기가 찾아오다니. 열 달을 고생한 아내와 건강하게 자라준 아들에게 너무 고마웠다.


회복실로 옮겨진 아내를 보러 들어갔는데 아내는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다. 왜 그런 거냐고 깜짝 놀라서 물었더니 자궁수축제 때문에 그런 거라고 정상적인 거라고 간호사 선생님이 말했다. 너무 놀란 나는 또 엉엉 울었다. 하반신 마취가 잘 안 돼서 전신 마취를 해서 아기를 못 봤다는 의사 선생님 말이 떠올라 "아기 못 봤다면서, 우리 밍밍이 봐봐"하면서 사진을 보여줬더니 와이프도 울기 시작했다. 회복실에서 수축제가 다 들어가고 마취가 완전히 깨길 기다리는 두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던지. 회복실에서 나와 입원실로 올라가는 길에 잠깐 아기를 볼 수 있었는데 태어난 직후 퉁퉁 불어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아주 조그만 생명체가 꿈틀대고 있었다. 내 새끼. 우리 아가. 우리 아들. 우리 밍밍이.


오늘은 입원 2일 차다. 아내는 생각보다 빨리 회복하고 있다. 오늘 오전엔 소변줄을 빼고 미음을 먹은 뒤 같이 아들을 보러 갈 수 있었다. 아기는 어제 얼굴이 달랐고 오늘 오전 얼굴이 달랐다. 오늘 오전엔 반쯤 눈을 뜬 모습도 보여줬다. 저녁 면회시간엔 말끔하게 목욕까지 마쳤는지 더 멋있어진 얼굴로 우리를 맞았다. 눈, 코, 입 모두 나를 판박이처럼 닮아 사진을 볼 때마다 웃음이 나고 신기하다.


Jon이 말했다. "I remember feeling "What was the meaning in my life before?" 너무 공감이 됐다. 아기를 본 순간 그전까지 겪은 기쁨, 슬픔은 모두 생각나지 않았다. 행복보다 더한 행복. 이제 네가 내 삶의 모든 의미구나. 열 달 동안 아들을 품었던 아내, 그리고 건강히 태어나준 아기를 위해서 살아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열심히 살고,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나도 아버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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