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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블랜드클리닉 Cleveland Clinic



  

Connie Culp 의 사고 전 사진 (참조 : NBC News)

2004년, 두 아이의 엄마인 코니 컬프(Connie Culp)는 남편이 쏜 산탄총에 맞아 얼굴의 중앙부가 함몰되는 사고를 겪었다. 코는 완전히 부서지고 볼은 산산조각이 났으며 시력도 거의 잃었다. 30회에 걸친 수술로 얼굴을 복원했지만, 자력으로는 냄새를 맡거나 숨을 쉴 수 없었다.


2008년 12월 10일 그녀는 심장발작으로 사망한 안나 캐스퍼의 안면조직을 기증 받아 그녀의 얼굴 중 80%를 이식하는 안면 이식수술을 받았다. 의료진은 코니의 얼굴에 기증받은 안면을 덮고 혈관을 연결해 정상적으로 혈액이 공급되는 것을 확인했다. 무려 22시간이나 걸린 대수술이었다.


미국 역사상 최초이자 당시 가장 규모가 크고 복잡했던 안면 전체 이식 수술을 성공적으로 이끈 병원은 미국 오하이오 주에 위치한 클리블랜드 클리닉(Cleveland Clinic)이었다. 이곳은 메이요 클리닉, 존슨홉킨스 병원, 메사추세츠 종합병원과 더불어 미국 4대 병원으로 꼽힌다. 올해로 창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클리블랜드 클리닉은  약 4600명의 의사와 과학자들이 일하고 있고 의료진을 돕는 지원인력은 간호사 14000명을 포함, 무려 68000명에 달한다. [2020기준]



클리블랜드 클리닉은 미국 최고의 병원이자 독특한 기업 문화로 이미 정평이 나 있다. 이는 설립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클리블랜드 클리닉을 설립한 조지 크릴 시니어, 프랭크 번츠, 윌리엄 로워는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던 1917년 군의관으로 참전했다. 이들은 민간에서의 의료방식과 달리 오직 부상병들이 집에 무사히 돌아갈 수 있도록 헌신적으로 팀을 구축해 환자 회복에만 집중하던 군대 의료 방식에 큰 감명을 받았다.


환자 치료, 연구 및 교육을 제공하는 비영리 그룹 치료 조직으로 개원 (1921.2.26) [사진 : 클리블랜드 클리닉 홈페이지)

전쟁에서 돌아온 이들은 당시 내과전문의로 활동하던 존 필립을 영입하고 1921년 클리블랜드 클리닉을 설립했다. 설립자들은 초기부터 미네소타주(州) 로체스터에 위치한 세계 최초의 그룹 프랙티스 병원인 메이요 클리닉 (MAYO CLINIC)의 운영방식을 채택했다. 그룹 프랙티스(Group Practice)팀 단위 의료 서비스를 뜻한다. 일반적으로 병원은 오래전부터 정형외과, 신경외과 등 전문과별로 구분해 진료를 하는 데 반해 그룹 프랙티스는 의사들 간의 협력을 기반으로 모든 인력이 하나의 통합 진료팀을 구성해 운영된다.


그리고 2008년, 클리블랜드 클리닉은 다시 한 번 혁신적인 제도를 도입한다. 그룹 프랙티스가 더욱 기능적으로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당시 조직 구분 기본 단위인 진료과를 폐지하고 이를 총 27개의 임상, 연구, 교육 및 지원 인스티트튜(Institute)로 전환했다. 인스티튜트 제도는 의사, 과학자, 기초 학문을 전공한 전문가들이 상호 협력을 통해 환자 치료 및 질병 연구에 전념하고 그 밖의 다양한 지원 업무 부서에서 물품 구매, 청구 업무 등의 지원 서비스를 전담하는 제도이다. 클리블랜드 클리닉의 각 인스티튜트는 각각의 질병에 맞는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기술과 서비스를 갖춘 독립적인 팀으로 거듭났다.


클리블랜드 클리닉과 전통 병원의 비교 



사실 국내에서도 의사들 간의 협력 사례는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암센터와 심혈관 질환 전문 센터(이)다. 그러나 클리블랜드 클리닉은 몇몇 진료과의 협력을 넘어 다양한 진료과 전문의를 포함해 각종 지원 업무 인력이 하나가 되어 환자에게 최적화된 원-스탑 서비스(One-Stop Coordinated Care)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그리고 코니 컬프의 수술이 클리블랜드 클리닉의 원-스탑 서비스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자 오늘날 전 세계 최고의 병원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이유이다. 다시 그녀의 수술로 돌아가보자. 


코니 컬프 수술을 담당한 마리아 시니오노브 박사(Dr. Maria Siemionow) 맨 오른쪽


코니 컬프의 수술은 당시 피부⋅성형 인스티튜트와 두경부 인스티튜트가 협력한 결과물이다. 수술에 참여한 인원은 이들을 포함해 신경과, 정신과, 치과, 안과, 마치과, 감염 질환과의 전문의들로 구성되었고 그 밖에 의료 윤리, 사회 복지, 간호, 약국, 환경 서비스 및 보안 분야의 인스티튜트가 각자의 영역에서 제 몫을 발휘했다. 더욱 놀라온 사실은 이들의 팀워크가 그녀의 수술 이전부터 준비된 결과물이란 점이다. 오랫동안 이들은 다양한 이식법을 연구했고 면역반응을 방지하는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매 주말마다 해부용 시체로 40회에 달하는 모의실험을 진행하는 한편, 각자가 맡은 바 업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매뉴얼을 명확하게 준비했다. 나아가 수술 이후의 치료와 더불어 심리학자는 예상 환자의 수술 적합성을 평가했고 사회복지사는 향후 가족들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 지에 대해 미리 고민했다. 이것이 바로 극단적으로 환자의 중심에서 사고하는 클리블랜드 클리닉의 원-스탑 서비스이자 인스티튜트 제도의 활용 케이스다. 


혹자는 이러한 인스티튜트 제도가 제대로 기능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기도 했다. 의사 개개인의 능력이 팀에서 발휘되지 못할 수도 있고, 각자의 생각이 다른 까닭에 불협화음이 일어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의 의문은 기우에 불과했다. 비단 코니 컬프의 수술 성공 뿐만 아니라 각종 통계 수치에서도 클리블랜드 클리닉의 인스티튜트 제도는 성공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클리블랜드 클리닉은 2020년 <US News & World Report>가 선정한 전 세계 베스트 병원 2위, 26년 연속 심장 및 심장 수술 부문 1위, 상위 10위 이내 13개의 전문 병원으로 선정되었다. <뉴스위크>가 선정하는 전 세계 베스트 병원에서도 2위, 심장내과 1위를 포함한 6개 전공 분야에서 전 세계 최고 수준으로 꼽혔다. 


2020-21 미국 베스트 병원


1위 : 메이요 클리닉 (로체스터, 미네소타)

2위 : 클리블랜드 클리닉 (클리블랜드, 오하이오)

3위 : 존스 홉킨스 병원 (볼티모어, 메릴랜드)

(공동)4위 : 뉴욕 장료교 병원 - 콜럼비아 및 코넬 (뉴욕, 뉴욕) / UCLA 메디컬 센터 (LA, 캘리포니아)

5위 : 매사추세츠 종합 병원(보스턴, 매사추세츠)



물론 인스티튜트 제도 뿐만 아니라 클리블랜드 클리닉의 성공을 보여주는 사례는 많다. 이들은 매년 의료 혁신 대회 등을 개최하여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사람에게 상금을 주고 다양한 연구활동에 전폭적인 비용을 지원한다. 또한 기술지원 혁신센터를 설치하여 해당 연구와 실험을 통해 도출되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상품화하고 양산 및 판매, 특허출원을 진행한다. 그리고 이 모든 활동의 정점에도 <극단적인 환자 중심의 사고 방식>이 내재되어 있다.


클리블랜드 클리닉은 환자 중심의 협력하는 기업 문화를 통해 전문 분야 간 협력 작업으로 최선의 진료 결과를 창출하고 전 세계로부터 환자를 유치해 매출을 끌어올린다. 높은 매출을 통해 다시 최고의 시설, 연구, 인적 자원에 투자를 진행해 최적의 의료 서비스와 전문가를 확보해 지속 가능한 경영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한다. 이것이 바로 클리블랜드 클리닉을 오늘날 세계 최고의 병원이자 100년 동안 이끌게 만든 원동력인 셈이다.



클리블랜드 클리닉 플라이휠 (플라이휠을 돌려라 P.48 , 김영사, 짐 콜린스 참조)

    



클리블랜드 클리닉의 이러한 운영 전략을 브랜드 마케팅 관점에서 살펴본다면 다른 병원과의 차별화를 내세우는 것이 쉽지 않다. 차별화를 위해선 경쟁 병원에서 아직 내세우지 않았거나 내세울 수 없는 독특하하고 차별적인 제안이어야 하는 동시에 소비자의 행동을 쉽게 유도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환자 중심의 사고 방식>은 어느 병원에서나 쉽게 쓰일 수 있다. 그러나 하루에 23000명, 일 년에 860만 명의 외래 환자가 이곳을 찾고 년간 매출액이 약 1천억 달러(한화 11조 원)에 이르는 것만 보면 클리블랜드 클리닉의 운영 전략은 유형의 가치와 무형의 만족감을 동시에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클리블랜드 클리닉은 그룹 프랙티스에 기반을 둔 인스티튜트 제도를 통해 개별적인 진료과의 전문적인 의료 행위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진료 카테고리 전체로 눈을 돌려 새로운 카테고리를 스스로 창출한 점이 최고의 차별화라고 볼 수 있다. 다른 병원과의 경쟁이 불필요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곳을 찾는 환자는 개별 진료과목의 전문성에서의 차이가 아닌 오직 클리블랜드 클리닉이라는 하나의 병원에서 의료 서비스를 경험하는 것에 목적을 뒀다. 더군다나 원스탑으로 모든 진료를 볼 수 있다는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서비스는 환자 스스로 최고의 진료 서비스가 무엇인지, 자신에게 가장 올바른 진료 서비스는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도록 했다. 


어쩌면 뚜렷한 차이를 보이게 만드는 것은 제품이나 서비스 그 자체에 있지 않고 세상에 제시하려는 클리블랜드 클리닉의 철학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것이 명확한 차이를 만드는 브랜드로 거듭나게 만들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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