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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포스 ZAPPOS



미국의 유통업체 ‘자포스’가 라스베이거스 구시가지 일대에 사옥을 대신해 건설한 기업 타운의 모습/zappos.com



2013년 미국의 마케팅 컨설팅 기업 피데룸 파트너스와 프린스턴대 심리학 교수인 수잔 피스크는 자국의 대형 유통업체 6곳을 대상으로 고객 충성도를 조사했다. 대상 기업은 온라인 종합 쇼핑몰인 아마존과 자포스, 대형할인점·슈퍼마켓 체인 월마트, 백화점 메이시스와 시어스, 전자제품 전문점 베스트바이였다. 소비자가 온라인 쇼핑을 하면서 어떤 생각에서 해당 기업을 택했는지, 그리고 인간적인 따뜻함을 느끼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당연한 조사 결과가 드러났다. 대부분의 기업이 낮은 점수를 받았다. 온라인 쇼핑몰에서의 소비 목적은 오직 편의성에 있다. 조금 더 저렴한 가격으로, 조금 더 빨리 구매하는 것을 제외하고 우리가 온라인 쇼핑몰에서 요구하는 가치가 있는가. 따라서 인간적인 따뜻함을 느낀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고, 그 사실은 실제 조사 결과로도 나왔다.



한 고객과 10시간 51분 동안 통화


그런데 한 기업만은 예외였다. ‘자포스(ZAPPOS)’였다. 자포스는 신발 전문 쇼핑몰로 시작해 현재는 신발 외에도 의류와 잡화 등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는 유통업체다. 조사에서 소비자들은 이 회사에 인간적인 따뜻함을 느낀다고 평가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사례가 하나 있다. 어느 여성 고객이 몸이 편찮은 어머니를 위해 신발을 구입했다. 자포스에선 e메일로 그녀에게 신발이 마음에 들었는지 물었다. 그러나 그녀는 e메일을 확인하지 못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신발을 신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었다. 경황이 없던 그녀는 상을 치르고 난 뒤 e메일을 확인했고, “어머니가 죽어서 신발을 드리지 못했다”는 메시지와 함께 환불을 요청했다. 이를 확인한 자포스 고객충성팀은 환불을 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직원을 직접 그녀의 집으로 보내 꽃과 카드를 전달한 뒤 함께 슬픔을 위로했다. 놀라운 사실은 이 모든 상황이 회사의 서비스 매뉴얼대로 진행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고객충성팀의 직원이 인간적인 교감을 통한 고객과의 연결고리를 만들기 위해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인 것이었다.


자포스에서 위와 같은 사례는 흔하다. 장난으로 걸려온 전화를 서슴없이 받아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은 기본이다. 심지어 자포스에서 판매되고 있는 제품과 동일한 제품을 타 사이트에서 검색, 현재 그 제품이 얼마에 판매되고 있는지 알려주기도 한다. 가격이 더 저렴하면 다른 곳에서 구매를 권할 정도다.


이런 일화도 있다. 미국 온라인 매체인 〈허핑턴 포스트〉에 실린 2012년 12월 기사를 인용하면 고객충성팀의 한 직원은 소비자와 무려 10시간 29분 동안 통화한 기록을 세웠다. 그는 자포스 본사가 있는 라스베이거스에서의 삶을 소비자와 함께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대화는 결국 어그 부츠 한 켤레의 판매로 이어진 것이 전부였다.(이 기록도 2018년 8월에 깨졌다. 현재까지 가장 긴 통화는 10시간 51분이다. 믿거나 말거나.)


자포스에게 긴 전화통화는 고객을 위한 헌신을 증명하는 것이다.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소비자라도 평생에 한 번은 전화를 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고, 방해를 받지 않고 소비자와 오랜 시간 이야기할 수 있는 전화상담은 낭비가 아닌 투자라고 인식했다.


자포스는 소비자를 진짜 ‘왕’으로 생각한다. 작고 하찮은 예의일지라도 소비자의 심금을 울릴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증명한다. 친절함과 자상함이라는 ‘공짜(free)’를 소비자에게 제공해 기업의 ‘프리미엄(premium)’을 구축한다. ‘프리미엄(freemium)’의 실현이다. 사실 자포스의 모든 제품은 결코 저렴하지 않다. 거의 모든 유통업체가 진행하는 고객 맞춤별 혜택도 없다. 할인 행사도 없고 TV나 온라인에서 각종 상업적인 광고도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자포스 전체 매출의 95%는 온라인 거래에서 일어나는 매출이다. 그럼에도 소비자가 자포스를 찾는 이유는 뭘까?




전원 정규직으로 운영하는 고객충성팀


결국 인간적인 따뜻함 때문이다. 자포스도 초기엔 경쟁사보다 가격이 비쌀 경우 차액의 110%를 보상해주는 ‘최저가격 보상제도’를 실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래전 이 정책은 폐지되었다. 낮은 가격보다 고객 서비스에 집중해 소비자와의 유대관계를 강화하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래서 자포스는 미국의 많은 기업이 늘어나는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콜센터 업무를 인도 등지로 아웃소싱하는 상황에서도 고객충성팀을 직접 운영하고 전원 정규직으로 고용한다. 미리 준비된 대본이나 매뉴얼 없이 직원들에게 더 많은 재량을 부여하고 고객이 형식적인 상담이라고 느끼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다. 하루에 통화하는 고객의 수를 제한하고 더 적게,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한다.


뿐만 아니라 자포스는 소비자가 원하는 방식의 서비스 개념을 향상시키기 위해 기존의 물류창고 개념에서 벗어난 풀필먼트 센터(Fullfillment Center)를 구축하고 최첨단 기술집약형 인프라를 갖췄다. 총 1400여 명의 직원이 각각 4개 조로 나눠 24시간 내내 센터를 운영하기 때문에 소비자가 오후 늦게 주문하더라도 다음 날 오전까지는 상자에서 제품을 꺼내볼 수 있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결국 자포스 서비스의 핵심은 사람에게 있다. 자포스는 창업 초기인 1999년부터 모든 직원이 지켜야 할 10가지 핵심 가치를 정립하고 기업과 직원, 소비자 모두가 행복한 삶을 꿈꿀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 결과 설립 후 1년 뒤부터 10년 동안 매년 매출이 약 100%씩 증가했다. 〈포춘〉 지에서 평가하는 ‘미국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 중 꾸준히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한때 아마존은 자포스와의 정면 대결을 시도했지만 자포스에 무참히 깨졌다. 그러고 나서 결국 자포스를 12억 달러(약 1조3000억원)에 인수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마케팅 전문가 세스 고딘은 아마존이 자포스를 인수한 배경으로 “세계 유일의 기업문화와 강한 고객 유대관계, 탁월한 비즈니스 모델, 전설적인 서비스, 리더십 등 자포스만이 지닌 엄청난 가치의 무형 자산을 얻기 위해 비용을 지불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자포스 창업자 토니 셰이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자포스가 아마존에 합병되는 것이 아니라 자포스의 기업문화와 고용, 독자적인 경영방식을 100% 승계할 수 있도록 약속받은 합리적 결혼”이라고 언급했다.


현재 자포스는 구성원 모두가 주인의식을 가진 리더가 되는 새로운 수평적 조직문화인 ‘홀라크라시(Holacracy)’ 제도를 도입하는 한편, 회사의 사옥을 하나의 도시 형태로 만드는 실험도 선보이고 있다. 라스베이거스 구시가지를 3500억원에 통째 매입해 일종의 기업 공동체 도시를 만드는 등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목소리가 있지만 아직까지는 ‘지켜보자’라는 의견도 많다. 최고의 온라인 기업이 아닌 최고의 ‘서비스’ 기업, 자포스의 도전적인 기업문화를 나 역시 계속 지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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