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소비의 기준이 바뀌고 있다

 



먹기 위해 사지 않는다     



   포켓몬빵의 인기는 좀처럼 식지 않고 있다. 일시적인 유행이라는 일각의 관측과 달리 여전히 포켓몬빵은 완판 행진을 이어가는 등 현재까지 총 8,100만 개의 누적 판매량 -매일경제 <엄빠들 또 줄 서야 하나, 2022.09.21. 이하린 기자>-을 기록하고 있다. 이전에도 포켓몬빵을 비롯해 다양한 캐릭터 빵이 인기를 끈 적이 있었지만 지금처럼 품귀현상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일부 전문가들은 과거 팔도의 꼬꼬면과 해태제과의 허니버터칩에서 드러났던 증설의 저주 - 증설을 통한 공급량 확대가 제품이 지니고 있는 희소성을 감소시켜 수요가 대폭 반감되는 상황을 의미.  2011년 꼬꼬면과 2014년 허니버터칩 등이 열풍에 올라타 공급량을 확대했다가 되레 인기가 식어버린 사례- 를 설명 를 피하기 위한 제조사의 전략이라면서도 포켓몬 롤케이크, 디저트 등이 추가로 출시 예정이라는 점을 들어 시장 지배를 공고하게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꼼수라고 지적한다.


   그런데 이번 인기는 사뭇 다르다. 지금의 포켓몬빵 신드롬은 자신만의 개성을 상징하고 표현해 줄 수 있는 희소성 있는 제품을 원하는 2030 세대의 수요가 공급을 초과한 탓에 벌어진 일이다. 원하는 제품을 얻기 위해서라도 어떠한 비용도 감수하는 측면이 더욱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미 명품 및 한정판 구매를 위해 매장이 문을 열기도 전에 장사진을 이루는 모습이나 리셀 제품을 고가에 구매하는 모습을 통해서도 여실히 입증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래를 위한 자산 축적에 환멸을 느낀 2030세대들이 지금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돈을 아끼지 않는다며 다소 비관적인 견해를 내놓고 있다. 문학 평론가 김내훈씨는 어느 한 기고문-한겨레 <한겨레S 김내훈의 속도조절_미래 없음의 시대, 2022.03.19>-에서 미국의 문화연구자 그래프턴 태너의 ‘시간이 시계를 잃어버렸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바쁜 현실에 따른 일과 삶의 구분이 희미해진 현대인들이 시간관념으로 인해 지금 이순간, 여기의 ‘나의 상태, 나의 기분’에 몰입되는 탓에 포켓몬빵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는 의견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비관적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영국의 비평가이자 소설가인 존 버거는 <다른 방식으로 보기>에서 사람은 사물을 결코 한 가지 시각에서만 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우리의 시각은 끊임없이 능동적으로 움직이고, 시각 안에 들어온 사물을 훑어보면서, 동시에 사회 속 자신의 위치도 가늠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것을 볼 수 있게 되자마자 타인도 우리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버거는 타인의 시선과 우리의 시선이 결합함으로써 우리 스스로 가시적 세계의 일부라는 사실을 납득할 수 있게 된다고 덧붙였다.


   다소 투박한 표현이지만 면밀히 살펴보면 오늘날의 소비 행위는 일종의 관계 맺기다. 특히 각종 소셜미디어(SNS)가 발달하면서 관계 맺기를 기반으로 하는 소비는 더욱 크게 주목받고 있다. 우리는 여행을 가서 고급 호텔에 숙박하거나 현지 유명한 맛집에 들르면 어김없이 자신의 SNS에 게시한다. 일기처럼 일상을 기록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지인들에게 자신이 그런 소비를 통해 타인과 관계를 맺고 싶은 욕망을 보여주려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와 같은 관계 맺기 소비가 오늘날의 브랜드란 개념을 더욱 발전시키는 계기가 된 면도 있다. 과거의 마케팅이 제품의 독특한 특징이나 기능 등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면, 현재는 소비자가 ‘제품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이끌어내는 것이 표준적인 마케팅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제품을 통해 나를 투영한다



   나는 얼마 전 평일 오후,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룰루레몬 플래그십스토어를 방문했다. 손님은 대부분 20대부터 60대까지의 여성들이었다. 하나같이 즐거운 표정으로 선반을 탐색하고 있었고, 매장 안쪽 탈의실 앞에선 두 명의 여성이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고 매장 입구에선 한 에듀케이터 룰루레몬에서는 손님을 게스트로직원은 에듀케이터로 부른다 가 세 명의 여성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었다. 사실 대다수가 이미 룰루레몬의 타이츠와 티셔츠를 입고 있어서 누가 에듀케이터인지 게스트인지 구분하기도 힘들었다.


   언뜻 보면 그저 평범한 가게일 뿐인데 마치 친한 친구들과 사교모임을 하는 커뮤니티 같았다. 나는 호기심이 동했다. 요가복 바지를 10만원이 훌쩍 뛰어넘는 가격에 팔고 있는데도 날개 돋친 듯 팔려서 ‘요가복 업계의 사넬’이란 별명도 생긴 룰루레몬은 왜 제품을 팔지 않고 게스트들과 대화만 하는걸까? 마침 에듀케이터가 내 앞을 지나갔다. 그래서 나는 물었다.

   

   “조금 전에 매장 입구에서 반갑게 맞이했던 사람은 누구인가요? 그녀는 곧바로 이렇게 말했다. “오늘 지하에서 열리는 요가 수업에 참여하러 온 게스트들이에요. 마침 땀 배출이 잘 되는 소재의 의류를 보고 싶다고 해서 제가 여러 원단으로 제작된 하의를 입어 보며 비교 분석을 하고 있었어요."


   그녀는 요가 수업에 대해서 말을 이어갔다. “우리는 게스트들을 대상으로 요가, 러닝, 마인드풀 러닝, 현대무용, 퍼포먼스 트레이닝 등 매달 다양한 강좌를 개설해요. 매장을 체험공간으로 활용해 무료로 진행하고 있어요. 우리는 새로운 매장을 열기 1년 전부터 무료강좌를 진행할 커뮤니티 대사를 임명해요. 대사는 게스트들을 대상으로 무료강좌를 진행하는 대신 각종 할인 혜택을 받고 룰루레몬 웹사이트와 매장 등에서 자신들의 강습 프로그램을 홍보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 받죠.”


   나는 그녀에게 고객관계관리(CRM) 마케팅의 일환이냐고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는 게스트들에게 요가복을 판매하는 것을 목표로 내세우지 않아요. 대신 요가를 배우면서 내면을 채우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고, 이상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격려해요. 저도 게스트들과 함께  ‘요즘 도전하고 있는 일’, ‘직장과 가정에서의 워라벨’같은 일상적인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해요.”

  

   실제로 룰루레몬은 일반적으로 고객 충성도를 높이려 쓰이는 다수의 프로모션이나 이벤트를 진행하지 않고, 광고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제품 태그나 포장을 뜯으면 환불⋅교환이 안되는 엄격한 정책을 유지한다. 인기상품은 제한적으로 생산하면서 신제품 교체 주기를 짧게 유지해 재고가 있을 때 반드시 사야 한다는 불안감을 조성시키기도 한다. 할인 행사는 거의 하지 않지만 재고가 많이 남는 비인기 제품만 할인해 판매한다. 언뜻 봐선 불친절하고 오만해 보이는 면도 있는 브랜드인 셈이다.

  

   그러나 소비자와 동등한 친구 자격에서 대화하고 구매 이후에도 이어지는 사용 경험을 개선하려는 참여 프로그램을 확대하거나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다양한 캠페인을 전개한 룰루레몬의 노력에 대해 소비자들은 제품 구매로 화답했다. 2021년 룰루레몬의 연간 매출액은 44억 200백만 달러로 전년 대비 21%나 신장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