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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코우 키사팡
Donkou / Kissa fang

브랜딩은 철학을 공간과 시간으로 번역하는 일

by 김도환

미야케하치만 역에서 내린 나는 조용한 골목을 따라 걷다가, 작은 표지판 하나를 따라 돈코우(鈍考, donkou)의 문을 열었다.



donkou https://donkou.jp/en/ 참조

돈코우 / 깃사 팡

鈍考 donkou / 喫茶 芳 Kissa Fang


주 소 : 4-9 Kamitakano Kamonbayashicho, Sakyo Ward, Kyoto, 606-0072

영업시간 : 09:00 - 18:00

정기휴일 : 없음

홈페이지 : https://donkou.jp/




뉴욕타임스 일요일판 한 편에 담긴 정보가, 18세기 가장 똑똑한 사람이 평생 접한 양보다 많습니다.


십여 년 전 읽은 이 문장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정보의 양이 역사상 유례없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이 인류를 어디로 이끌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이 불확실한 시대를 인터레그넘(interregnum), 궐위의 시대라 불렀다. 옛 질서는 이미 힘을 잃었지만, 새로운 질서는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 시기라는 뜻이다. 바우만은 이를 '권력(Power)이 정치(Politics)와 이혼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금융, 무역, 테러리즘까지 권력은 국경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움직이지만, 정치는 여전히 국경을 벗어나지 못하고 묶여 있다. 대한민국 의회의 결정이 국경 밖에서는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처럼, 민주주의는 한 나라 안에서만 머문다. 이 불균형 속에서 권력과 정치의 간극은 점점 벌어지고, 그 틈새에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거대한 공백이 생겨났다.


궐위의 시대는 비단 국가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더 근본적인 단절은 '정보와 지혜의 이혼'이다. 하루에도 수백 개의 뉴스를 읽고 수십 개의 영상을 보지만, 깊이 사유하는 순간은 점점 줄어든다. 알게 되는 것은 많아졌으나, 이해하는 것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우리 모두의

하루


우리의 어제를 되돌아보자. 아침에 인스타그램 릴스로 하루를 시작한다. 30초짜리 영상을 스무 개쯤보고, 이내 틱톡으로 넘어가 또 다른 15초들을 흘러보낸다. 지하철에서는 유튜브 쇼츠를 보고, 사무실에서는 일하다 말고 SNS를 들여다본다. 전쟁 소식, 신제품 출시, 부동산 전망, 다이어트 레시피, 연예인 기사 등 하루 만에 한 세기를 살아낸 사람이 접했을 정보량을 삼켜버린다.


그러나 밤이 깊어 잠들기 전,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오늘 하루 동안 나는 무엇을 깊이 생각해본 적 있었는가. 수많은 것을 '알게'되었지만, 정작 하나도 '생각해보지'않았음을 깨닫는다. 언제부터 우리는 정보를 삼키는 일과 사유하는 일을 혼동하기 시작했을까. 내 안에는 생각이 아닌, 습관처럼 삼킨 정보의 파편들만 흩어져 있었다.


브랜드의 세계도 다르지 않다. 브랜드들은 매일 콘텐츠를 쏟아내고, 데이터를 분석하며, 트렌드를 추격한다. 하지만 정작 자신들이 왜 존재하는지,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은 점점 줄어든다. 정보는 넘쳐나지만 지혜는 메말라간다. 브랜드의 철학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 벌어지는 것이다.



철학을

현실로 번역할 때



어느 늦은 봄과 여름 사이, 나는 에이잔 전철에 몸을 실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설명할 수 없는 호기심이 나를 북쪽으로 이끌었다. 전철은 느리게 달렸고, 창밖으로는 오래된 목조 가옥과 햇살이 흔들리는 정원이 흘러갔다. 미야케하치만 역에서 내린 나는 조용한 골목을 따라 걷다가, 작은 표지판 하나를 따라 돈코우(鈍考, donkou)의 문을 열었다.


이곳은 북 디렉터 하바 요시타카가 2023년에 교토에 연 작은 도서관이다. 그는 일본에서 ‘북 디렉터’라는 직업을 개척한 인물로, 서점과 도서관은 물론 기업의 로비, 호텔, 병원까지 책을 매개로 한 무대를 기획해왔다. 2005년 도쿄에서 설립한 그의 회사 BACH는 지금까지 수천 권의 책을 수집하며, 책과 사람이 우연히 만나는 장면을 설계해왔다.


돈코우라는 이름은 사전에 없는 조어다. ‘둔하다(鈍)’와 ‘생각하다(考)’를 붙여, 빠르게 결론을 내리기보다 천천히 곱씹는 태도를 뜻한다. 동시에 발음은 ‘완행열차(鈍行)’와 같아, 각 역마다 멈추는 느린 기차처럼 머무르며 생각하는 공간을 은유한다. 나는 그 이름을 오래 바라보다가, 그가 의도했을 바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도 그것은 인간이 조용히 사유를 이어갈 수 있는 장소에 대한 소망이었다.


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입구에는 작은 바구니가 놓여 있었고, 휴대폰을 그 안에 맡겨달라는 안내가 적혀 있었다. 강제는 아니었지만, 이곳의 운영 방식이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책과 마주하는 90분'이었기에 나는 기꺼이 따랐다. 기계를 내려놓는 순간, 손이 할 일을 잃은 듯 어색했다. 무언가를 잃은 듯 했다. 그러나 그 공허함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내 손가락이 얼마나 오랫동안 작은 스마트폰 화면 위를 떠돌며,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흘려보냈는지를 말이다.


책장은 서가가 아니라 풍경이었다. 일본어 책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사이사이에는 영어와 프랑스어, 낯선 언어의 책들도 끼어 있었다. 나는 책을 읽는 대신 분위기를 읽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때 커피가 나왔다. 첫 모금에서 단맛이 밀려왔다. 두 번째는 과일 향. 나는 책을 덮고, 오직 커피에만 집중했다. 커피를 내린 곳은 ‘깃사팡’이었다. 둔코우 안에 자리한 작은 커피 하우스로, 하루에 단 1킬로그램 남짓의 원두만을 수동 로스터로 볶고, 전통적인 넬 드립으로 한 잔을 내린다.


하바 요시타카가 돈코우를 통해 보여준 것은 브랜딩의 정수였다. 그는 "빠른 시대에 느린 사고를 되찾자"는 철학을 단순한 구호로 끝내지 않았다. 대신 그것을 치밀하게 설계된 경험으로 번역했다. 90분이라는 시간의 틀, 3,000권으로 큐레이션된 공간, 2,000엔이라는 접근 가능한 가격, 휴대폰을 내려놓는 의식 등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철학을 구현하는 브랜드 언어였다.


그리고 나는 이 순간, 브랜딩의 본질을 다시금 떠올렸다. 그것은 철학을 현실로 번역하는 일이다. 철학은 말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설계 속에서 살아난다. 정보와 지혜의 이혼도, 결국 그런 공간 속에서 화해할 수 있다. 나는 자리를 정리하고 휴대폰을 다시 쥐었다. 알림은 여전히 쌓여 있었고, 메시지도 줄지어 도착해 있었다. 그러나 90분 전과는 달랐다. 나는 서두르지 않았다. 화면을 켜는 손끝에 더 이상 조급함이 없었다. 정보는 그대로였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내 마음은 달라져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정보와 지혜가 다시 만나는 길은, 책 속이 아니라 우리 삶의 리듬 속에 있다는 것을.

브랜드든, 일상이든, 관계든 마찬가지다. 적절한 시간의 틀과 의미 있는 공간이 주어질 때, 모든 단절된 것들이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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