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딩은 보이지 않는 신념을 보이게 만드는 일
주 소 : 600-8216 Kyoto, Shimogyo Ward, Higashishiokojicho, 939 1階
전화번호 : 075- 353-9154
영업시간 : 08:30 -17:00
정기휴일 : 월요일
홈페이지 : https://coyote-coffee.stores.jp/
도시에는 언제나 틈이 필요하다. 길과 길이 만나는 교차점과 사람과 사람이 스쳐 지나가는 그 사이의 여백 속에서 비로소 도시의 숨결은 완성된다. 커피숍은 그 틈을 메우는 중계지점이다. 흐름과 흐름이 이어지는 길 위에서 잠시 멈출 수 있는 장소이자, 생각을 정리하고 다시 세상 속으로 흘러가기 위한 간이 정거장이다. 사람들은 집도 직장도 아닌 그 틈새 안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며 자신을 회복했고, 그 회복의 순간은 도시의 또 다른 리듬으로 이어졌다.
스타벅스는 이 감각을 ‘제3의 공간(Third Place)’이라는 언어로 번역해 세상에 내놓았다. 하워드 슐츠는 이탈리아의 에스프레소 바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지만, 그가 진짜 발견한 것은 '공간이 아니라 공식'이었다. 그는 머물기의 풍경을 산업의 언어로 바꾸었다. 스타벅스는 도시의 틈을 상품화했고, 사람들은 그 안에서 일상의 쉼표를 소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본에는 훨씬 이전부터 제3의 공간이 존재했다. 그곳은 깃사텐((喫茶店)이었다. 깃사텐은 단순한 커피숍이 아니었다. 메이지 시대부터 형성된 이 커피숍들은 그 어디보다 필요한 공간이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깃사텐에서 시간을 다르게 경험했다. 작가는 원고를 썼고, 학생은 책을 읽었으며, 직장인은 출근 전 하루를 가다듬었다.
깃사텐의 마스터는 손님의 얼굴을 기억했다. 자리를 기억했고, 취향을 기억했다. 어제와 오늘의 기분까지 읽어냈다. 잔의 무게, 커피의 온도, 내어주는 속도 등 모든 것이 그날의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것은 매뉴얼로 전수 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한때 일본 전역에는 15만 개가 넘는 깃사텐이 있었다. 단순한 취향을 넘어 하나의 문화가 되었고, 그 문화가 가장 깊이 뿌리내린 곳 중 하나가 교토였다. 교토는 서두르지 않는 도시였다. 사람들은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하루를 보냈다. 삶의 리듬이 느렸기에, 한 잔의 커피를 음미하는 시간도 자연스러웠다. 그래서일까. 교토의 커피와 빵 소비량이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아침이면 로스터의 불빛이 골목마다 켜지고, 점심이면 갓 구운 빵 냄새가 거리를 채웠다. 전통과 서양, 정적과 생활이 섞인 공기 속에서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삶의 리듬을 조율하는 언어가 되었다.
블루보틀 커피의 창업자 제임스 프리먼이 일본의 깃사텐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사실은 이제 공공연하다. 그는 특히 도쿄의 ‘챠테이 하토우(茶亭羽當, Chatei Hatou)’와 ‘카페 바흐(Café Bach)’에서 한 잔의 커피와 그것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를 깊이 느꼈다고 한다. 그곳엔 꾸밈이 없었다. 커피와 마스터, 그리고 그 사이의 공기만이 있었다. 마스터는 말을 아꼈다. 손끝이 움직일 때마다 수증기가 피어올랐고, 그 향이 천천히 공간을 채웠다. 커피가 내려오는 동안 시간은 아주 느리게 흘렀고, 그 느림이 하루를 완성했다.
그 순간 프리먼은 커피의 본질이 기술이 아니라 태도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속도보다 집중, 효율보다 정직함이 깃사텐을 오랫동안 지켜온 방식이었다.
깃사텐은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마스터들은 늙어갔고, 자식들은 가게를 물려받지 않았다. 1980년대 일만 개였던 교토의 깃사텐은 2020년 무렵 천 개 남짓으로 줄어들었다. 어두운 조명과 느린 서비스는 시대착오처럼 보였다. 담배 연기가 자욱한 공간은 젊은이들에게 불편한 과거처럼 느껴졌다.
그 무렵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밝고 빠른 세상에 익숙했던 MZ세대가 어느 순간 속도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도시 곳곳의 오래된 깃사텐을 찾아다니며, 낡은 의자에 앉아 조용히 커피를 마셨다.
왜 돌아왔을까.
깃사텐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다만 세상이 너무 빨리 달려가며 그 존재를 잊었을 뿐이다. MZ세대가 깃사텐으로 향한 것은 유행이 아니라 회복이었다. 그들은 뉴트로라는 언어를 빌려 느림을 복원했고, 오래된 공간 안에서 지금의 자신을 다시 확인하고 싶어 했다. 화려한 경험 대신 오래된 가치를, 즉흥적인 속도 대신 꾸준히 쌓이는 시간을 택했다. 물질의 시대를 지나, 사람들은 다시 ‘태도’를 소비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단순한 귀환일지, 아니면 새로운 출발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깃사텐은 그렇게 과거와 미래 사이 어딘가에, 여전히 조용히 서 있다. 그 자체가 이미 한 시대의 반증이다. 이것이 깃사텐의 본질이다. 차별화는 제품이나 서비스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존재 자체가 곧 차이다. 깃사텐은 외국의 문화를 받아들여 시작했지만, 결국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독자적 세계를 만들어냈다. 깃사텐은 그렇게 시대를 견디며, 여전히 한 잔의 온도를 지키고 있다.
어쩌면 MZ세대는 돌아온 것이 아니라, 비로소 도착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도착은 단순히 과거를 소비하는 일로 끝나지 않았다. 누군가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켜보고, 또 누군가는 그 자리를 이어가고 있다. 그들은 깃사텐의 시간을 흉내 내지 않는다. 대신 그 태도를 오늘의 언어로 다시 쓴다. 커피를 마시던 세대가 이제는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깃사텐은 형태를 바꾸며, 다시 한번 세상 속으로 살아나고 있다. 그것이 바로 네오 깃사텐이다.
최근 교토에는 새로운 깃사텐들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전통의 감성을 현대의 언어로 옮긴 공간들이다. ‘위켄더스커피(Weekenders), 쿠라수(Kurasu)’ ‘스타일 커피(Style Coffee)’가 그렇다. 그들은 빠름보다 정직함을, 유행보다 일상의 리듬을 택했다. 속도가 아니라 온도를 중시한다. 나는 그중 ‘코요테 (COYOTE)’를 좋아한다.
이곳의 마스터 가도카와 유스케의 이력은 좀 남다르다. 그는 일본국제협력기구(JICA) 해외협력대 프로그램을 통해 엘살바도르로 파견되었다. 챠라테난고 지역의 커피 산업 진흥을 돕는 임무였다. 그는 ACOPACA 생산자 조합의 농장에서 1년 넘게 머물렀다. 바이어가 아니라, 생산자의 일원으로 일했다. 커피 체리를 손으로 따고, 농부들과 하루를 나누며 신뢰를 쌓았다.
일본으로 돌아올 때 그는 이상한 결정을 내렸다. 가게도, 상호명도 없는 상태에서 엘살바도르 커피 8톤을 먼저 구입한 것이다. 생산지에 남겨진 커피를 어떻게든 해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이 8톤의 커피가 훗날 ‘COYOTE’가 로스터리로 자리 잡게 된 시작이었다.
2021년, 교토역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첫 매장 ‘COYOTE the ordinary shop’이 문을 열었다. 코요테는 중남미 커피업계에서 사용되는 속어로 ‘농장에서 커피 체리를 사들여 대형 수출업자에게 되파는 중개인'을 의미한다. 좋은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그는 이 부정적인 단어를 의도적으로 선택했다. 자신도 결국 농부와 소비자 사이의 중간에 선다. 그렇다면 투명하고 정직한 중간업자가 되겠다는 뜻이었다. 그는 직접 로스팅하고, 다른 로스터들에게도 생두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그의 커피를 맛본 이들은 다시 찾아왔다. 그렇게 입소문이 번졌다. 그는 생두를 전할 때마다 이야기를 함께 전했다. 어느 농부의 손끝에서 자랐는지, 어떤 방식으로 재배되었는지, 그해의 기후는 어땠는지. 그것은 단순한 거래가 아니었다. 한 잔의 커피에 담긴 관계를 번역하는 일이었다.
맛있는 음식에 온기 있는 그릇이 필요하듯, 그의 철학에도 머물 공간이 필요했다. 그의 이야기는 그렇게 새로운 공간으로 이어졌다. 2024년, 세 번째 매장 코요테 로스터리 COYOTE ROASTERY가 데마치야나기역 근처에 문을 열었다. 오래된 빈 집을 개조해 만든 공간은 현대적이면서도 따뜻했다. 메뉴는 단출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화려한 선택이 아니라 진심이 닿는 구조였다.
사람들은 코요테를 스페셜티 커피전문점이라고 말한다. 요즘 트렌드를 담은 브랜드라고도 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그의 커피에는 유행보다 오래된 무언가가 깃들어 있다. 나는 그것이 깃사텐의 본질이라고 믿는다. 커피를 매개로 사람과 사람을 잇고, 그 사이에서 시간을 우려내는 태도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다. 그는 효율보다 정성을 믿고, 속도보다 체온을 신뢰한다. 그것이 바로 깃사텐의 본질이자, 교토라는 도시가 지닌 오래된 문법이다.
코요테는 오직 엘살바도르의 원두로 깃사텐의 전통을 잇는다. 그에게 커피는 다양성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해법이기 때문이다. 그의 커피는 먼 남쪽의 농장에서 시작해 이 도시의 오후로 이어진다. 한쪽에서는 체리를 손으로 따고, 다른 쪽에서는 그 향을 손으로 내린다. 그 사이엔 숫자도, 매뉴얼도 없다. 그저 사람의 온기와 시간이 있을 뿐이다.
코요테는 그 문법을 새 시대의 언어로 다시 쓴다. 새로운 기술과 감각을 입었지만, 그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 핸드드립의 리듬 속에는 침묵의 미학이 흐르고, 그 속도 안에는 관계의 온도가 깃들어 있다. 그는 커피를 만든 것이 아니라 관계를 빚는다. 그래서 그의 공간은 단순한 매장이 아니라 이야기가 머무는 그릇이다. 그리고 그 그릇 안에는 언제나 한 잔의 커피와 누군가의 시간이 함께 식는다.
그의 손끝은 언제나 그 중간에 있다. 엘살바도로의 새벽과 교토의 오후, 농부의 손끝과 손님의 입가, 그 중간 어딘가에서 그는 커피의 온도를 조율한다. 그의 가게는 흘러가는 세상의 틈을 잇는 중계지점이다. 도시는 그렇게 새로운 깃사텐으로 숨을 고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