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는 결국 사람의 온도를 닮는다
역사는 물결처럼 반복된다.
커피 산업의 지난 백여 년은 다섯 번의 거대한 파도로 요약된다. 첫 번째 물결은 대량생산이었다. 커피는 제품이었고 시장은 대중이었으며 목표는 표준화였다. 누구에게나 같은 맛을 제공하는 것이 전부였다. 두 번째 물결은 차별화였다. 스타벅스는 커피를 제품에서 경험으로 바꾸었다. 매장의 향기, 음악, 조명까지 브랜드가 되었다. 커피는 사람들의 자기표현 수단이 되었고, 그 무렵 제 3의 공간이라는 개념이 유행하며 커피빈, 피츠 커피 등 다양한 커피 프랜차이즈 기업이 등장했다.
1990년대 이후 중산층의 해외여행이 늘면서 커피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와인이나 치즈처럼, 커피도 원산지에 따라 맛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인터넷으로 정보가 확산되고 동호회가 생겨났다. 사람들은 브랜드의 광고가 아니라 '커피가 어디서 왔는가'를 묻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2002년, 미국의 로스터이자 커피 연구가인 트리쉬 로스게브는 한 매거진에서 '커피 제3의 물결(The 3rd Wave Coffee)'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그는 "커피를 다시 사람의 이야기로 되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1의 물결이 대량화의 시대였다면, 제2의 물결은 경험의 시대였고, 제3의 물결은 진정성의 시대였다.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제 3의 물결은 전성기를 맞았다. 블루보틀은 로스팅 후 48시간이 지난 원두를 팔지 않았고, 스텀프타운은 커피 농부와의 다이렉트 트레이드를 창안하며 거래의 윤리를 구축했으며, 인텔리젠시아는 바리스타를 장인이라 불렀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작은 로스터리들이 속속 문을 열었다. 스페셜티 등급, 단일 원산지, 핸드드립, 사이폰 추출 등 커피는 예술이 되었고 다시 사람의 이야기가 되었다.
그러나 2010년대 후반, 균열이 시작되었다. 고품질의 커피를 추구할수록 가격은 올랐고, 장인정신을 강조할수록 속도는 느려졌다. 한 잔의 커피를 위해 원산지를 묻고, 로스팅 날짜를 확인하고 추출방식을 선택하는 것은 일상의 커피를 원하는 대중에게는 부담이었다. 좋은 커피는 점점 더 비싸졌고 접근성은 낮아졌다. 전문성과 대중성 사이의 간극이 벌어졌다.
바로 이 틈새에서 네 번째 물결이 시작되었다. 2020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블랭크 스트리트 커피가 등장했다. 그들의 컨셉은 명확했다.
“맛있고 저렴한 커피”
듣기엔 가능할까 싶지만, 비결은 효율화였다. 한 시간에 700잔을 내릴 수 있는 스위스제 에스프레소 머신을 도입하고, 매장은 소형화했으며, 앱 주문을 기본으로 했다. 중요한 점은, 원두의 품질은 타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제3의 물결이 추구한 스페셜티 등급의 원두를 사용하면서도, 자동화를 통해 가격을 낮췄다. 바리스타는 복잡한 추출 기술 대신 사람과 대화하는 데 집중했다. 뉴욕타임스는 "블랭크 스트리트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고 썼다.
같은 시기, 중국에서는 루이싱 커피가 '커피 타는 시간보다 배달이 더 빠른 회사'를 표방하며 시장을 뒤흔들고 있었다. 앱으로 주문하고, 30분 내에 배달되며, 스타벅스보다 저렴했다. 카운터 없는 키오스크 매장, 전면적인 디지털 결제, 공격적인 할인쿠폰 정책으로 2017년 창립 후 3년 만에 중국 전역에 만 개가 넘는 매장을 열었다. 제3의 물결이 강조한 '장소의 경험'은 사라졌다. 대신 속도와 접근성만 남았다.
이것이 제 4의 물결이었다. 핵심은 기술 기반 효율화였다. 제3의 물결이 장인의 손을 강조했다면 제 4의 물결은 기술의 정밀함을 믿었다. 품질을 유지하거나 적당히 타협하는 대신 접근성을 극대화했다. 커피는 대화의 매개에서 데이터 항목으로 변했다.
이제 곧 다섯 번째 물결이 올 것이다. AI는 생체 리듬을 분석하고 하루의 피로를 계산하며, 나에게 필요한 카페인을 제안한다. 초개인화, 맞춤형 웰빙, 지속가능성 등 커피는 더 이상 음료가 아니라 알고리즘이다. 그러나 그 완벽함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도 질문이 남는다. 이것으로 충분한가.
물결은 거세지만, 모든 것이 물결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교토의 골목 깊숙이, 전통 깃사텐들은 수십 년 된 로스팅 기계, 단골들의 정해진 자리와 함께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킨다. 그들은 제 1의 물결도, 제 3의 물결도 아니다. 그들은 물결 밖에 서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 자체가 하나의 흐름이다.
흥미로운 것은 최근 등장한 네오 깃사텐들이다. 그들은 깃사텐의 미학을 계승하되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빈티지한 인테리어, 정성스러운 핸드드립 등 전통의 형식을 빌려 제 3의 물결의 가치인 진정성을 실천하지만, SNS를 통해 젊은 세대를 끌어들인다. 레트로는 감성이 되었고, 느림은 사치가 되었으며 아날로그는 하나의 브랜딩이 되었다. 할아버지의 깃사텐이 단골들의 입소문으로 살아남았다면, 손자 세대의 네오 깃사텐은 해시태그로 확산된다. 그러나 형식은 달라졌지만 본질은 같다. 그들은 물결이 지나간 후에도, 여전히 한 잔에 담긴 시간을 믿는 사람들이다.
20세기 초, 인류 역사를 바꿀 경주가 벌어지고 있었다. 동력 비행이라는 꿈을 향해 수많은 이들이 달려들었다. 그중 가장 유력한 후보는 사무엘 랭리였다. 하버드 대학 박사이자 스미소니언 연구소 책임자였던 그는 미 국방부로부터 막대한 자금을 지원받았고, 당시 최고의 엔지니어들을 거느렸으며,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언론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했다. 성공의 모든 조건을 갖춘 사람이었다.
반면, 같은 시기 오하이오의 작은 도시 데이턴에서는 두 형제가 자전거 가게를 운영하며 비행 실험을 하고 있었다. 윌버와 오빌 라이트는 대학 학위도 없었고, 자금도 부족했으며, 그들을 아는 사람은 고작 수백 킬로미터 반경의 지인들뿐이었다.
그러나 역사는 예상과 다르게 흘렀다. 1903년 12월 17일, 노스캐롤라이나의 키티호크에서 라이트 형제는 인류 최초의 동력 비행에 성공했다. 36미터를 날았고, 52초간 공중에 떠 있었다. 반면 랭리는 그보다 며칠 전 두 번의 시험 비행에서 모두 실패했고, 라이트 형제의 성공 소식을 듣고 프로젝트를 포기했다.
차이는 명확했다. 랭리는 결과(WHAT)부터 시작했다. 먼저 비행에 성공하면 부와 명예가 따라온다는 계산이 그를 움직였다. 그의 팀은 고용된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월급을 받기 위해 일했다. 라이트 형제는 신념(WHY)에서부터 시작했다. 그들은 '사람이 하늘을 날 수 있다면 세계가 변할 것이다' 고 믿었다. 그들의 팀은 자발적으로 모였고 비전을 함께 공유했으며, 돈이 아니라 꿈이 그들을 하나로 묶었다. 이것이 사이먼 시넥이 말한 골든 서클이다. 사람들은 당신이 무엇을 하는지가 아니라 왜 하는지에 반응한다. 애플은 컴퓨터를 팔지 않고 "다르게 생각하라"는 신념을 판다. 마틴 루터 킹을 따른 사람들은 그가 계획서를 가져서가 아니라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커피에 곧바로 적용하는 것은 조심스럽다. 라이트 형제의 이야기는 기술 혁신의 서사다. 당시엔 시장도, 경쟁도, 프랜차이즈도 없었다. 반면 오늘날의 커피 시장은 자본력, 입지, 마케팅, 공급망의 게임이다. 교토의 깃사텐이 수십 년간 살아남은 것은 WHY만으로 이룬 성과가 아니다. 부동산 소유, 지역 커뮤니티, 세대를 이어온 단골, 그리고 운도 함께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WHY라는 질문은 여전히 중요하다. 명확한 신념이 생존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신념 없는 생존은 공허한 것도 사실이다. WHY는 성공의 충분조건이 아니지만, 의미의 필요조건임엔 분명하다.
기술은 발전한다. 제5의 물결은 초개인화를 약속한다. 그러나 아무리 기술이 정교해져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한 잔의 커피를 들어 올릴 때, 우리는 카페인만 섭취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 잔에 담긴 누군가의 시간을, 선택을, 때로는 신념을 함께 마신다. 자동화된 키오스크의 커피도 맛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커피가 왜 그 자리에 있는지를 아는 사람이 내린 커피는 다르다.
마흔 번이 넘는 교토 여행 속에서 나는 늘 같은 장면을 보았다. 그곳이 깃사텐이든, 네오 깃사텐이든 커피를 내리기 전 물의 온도를 재고, 잔의 결을 닦는 행위 속에는 효율로는 측정할 수 없는 인간의 품격이 있었다. 그들은 속도의 바깥에서 자신만의 시간으로 존재하는 법을 알았다. 기술이 아무리 진보해도, 사람은 결국 다시 인간의 시간을 찾게 된다. 그것이 내가 제 5의 물결 이후에도 여전히 손의 철학을 믿는 이유다.
왜 이 커피를 내리는가. 왜 이 공간을 지키는가. 왜 오늘도 원두를 볶고, 물의 온도를 재고, 추출 시간을 계산하는가. 그리고 당신의 카페는 왜 존재하는가. 그 답이 명확하다면, 당신은 단순히 커피를 파는 사람이 아니다. 당신은 물결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사람이다. 당신은 브랜드가 된다.
커피 유토피아는 멀리 있지 않다. 그것은 WHY를 아는 자의 손끝에서, 매일 아침 피어오르는 향기 속에 있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 믿음으로 언젠가 나만의 공간을 만들고 싶다. 그런 믿음을 준 교토의 모든 마스터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