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신혼여행
“40살까지 서로 혼자면 우리 결혼하자!”
“그러지 말고 오늘부터 함께 하면 되지!”
그녀와 나는 오랜 친구였다. 한때 유행하던 대학생 대외활동 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우리는 비슷한 취미와 성격, 가까운 지리적 요건 등의 이유로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물론 여느 남녀 관계가 그러하듯 우리 사이에도 한 명의 친구가 더 존재했다. 그렇다고 승자와 패자가 존재하며 사랑과 우정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뻔한 삼각관계 스토리는 아니었다. 믿을 수 없겠지만 우리 셋은 요즘 흔히 말하는 ‘여자 사람 친구’, ‘남자 사람 친구’의 관계로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다. 그렇게 5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나는 현실에 지쳐 도망치듯 회사를 그만두고 생각할 시간을 갖는 단 핑계로 미국 PCT로 떠났다. 그녀 역시 갑작스러운 변화에 걱정하는 눈치였지만 큰 물음 없이 나의 길을 응원해 줬다. 나는 175일 동안 4,300km의 긴 길을 걸으며 나의 인생을 하나하나 돌아보기 시작했다. 신선이 되기 위해 길을 떠났다고 말했지만 결국 신선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나 스스로를 더 잘 알게 되고 나 자신에 대해 조금 더 솔직해지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긴 길을 걸으며 일기처럼 하루하루 썼던 글들이 좋은 기회를 얻어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나는 PCT 가 끝난 이후에도 여행을 계속 이어가기로 했지만 책의 발간에 맞춰 잠시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사실 의도를 하고 찾아간 것은 아니었다. 한국에 들어온 첫날, 부모님과 함께 근교로 식사를 하러 나갔다 그녀가 일하고 있는 곳이 근처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 내곤 인사를 하러 잠시 들렀을 뿐이었다. 하지만 참 신기했다. 물론 이전부터 사람으로서 호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오랜 친구로 지내고 있었겠지만 그날 그녀와의 만남은 지금과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바쁘게 일하고 있는 그녀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가슴이 떨려왔다. 이상한 떨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