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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pe diem Mar 08. 2021

09. 모성 점검의 날

엄마부터 행복해지기


 

 임신한 지 어느새 200일이 넘었고 출산예정일까지 76일이 남았다. 5월 출산을 앞두고 잠정적 휴직에 들어갔고, 늘 바쁘게 보내던 3월 첫 주, 나만 덩그러니 놓인 느낌에 한 주 내내 썩 유쾌하지 않았다. 배가 불러오면서 점점 불편해지는 몸때문에 방학도 모자라 얼른 3월이 되었으면 했는데, 마냥 홀가분하지만은 않은 게 영 이상하다. 꿈에서 난 자꾸 교탁 앞에 서있고, 아이들에게 고래고래 언성을 높이느라 진을 쏙 빼다 잠에서 깬다. 자면서까지 학교를 그리워할 만큼 열혈교사였나 민망할 정도로 어제도 난 학교 꿈을 꿨다.


2019년의 어느 날, 이런 순간들이 늘 그리운가보다


 ‘잠정적 휴직’이라는 말에 익숙해지려 노력하는 내 모습에, 어쩌면 아이를 낳자마자 다시 일하고 싶어 우울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난 아이를 좋아하고, 그렇게 원하던 아이를 가져 곧 출산을 앞뒀으니 행복해야 마땅한데, 뱃속에 있는 아이에겐 좀 미안하지만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은가 보다. 인정하긴 싫지만 솔직히 말해 두렵다. 엄마 역할도 남편 외벌이 생활도 잘 해낼 수 있을지 미지수고, 복직한다 해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지금처럼 자연스럽게 거침없이 할 여력이 될지도 장담할 수 없다. 어쩌면 꽤 오랜 시간 복귀가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세상에 나오고 나면 모성애든 책임감이든 어떤 동력이 됐든 간에 아이에게서 헤어나지 못할 게 분명하다. 생각이 꼬리를 물어 너무 진부해졌다. 기분 전환이 필요하단 생각에 동생과 엄마의 청대로 백화점이라도 다녀오기로 했다.

 부정적인 상념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나선 외출이니 곧바로 흥이 오를 리 없지만, 아기 옷 코너에 멈춰 선 채 이 옷 저 옷 고르는 엄마와 달리 난 강 건너 불구경이었다. 동생이 아이를 낳았을 때 예쁜 아기 옷만 보면 조카가 떠올라 설레던 내가 정작 내 아이 옷 앞에서는 심드렁이라니. 아기욕조를 당근 마켓으로 구매한다는 내 말에 새 걸로 사지 핀잔을 준 엄마가 오래 입히지도 못할 신생아 옷에 돈을 아끼지 않는 게 못마땅하고 미안해져 마음이 편치 않아 그러려니 내색은 하지 않았으나 기분은 좀처럼 나아지질 않았다.

“우리 아기, 예쁜 옷만 입혀야지.”

 아이 옷을 고르며 엄마는 혼잣말을 했다. 언제부턴가 ‘우리 아기’라는 말을 달고 사는 엄마와, 나에게 ‘축복이 엄마’라고 부르는 동생이 아직은 영 낯설기만 하다. 뱃속에서 꿈틀꿈틀 하루에도 열두 번씩 존재감을 알리는 아이 앞에 미안한 말이지만 아직 실감이 나지 않고 날로 부르는 배가 어색하고 불편하기만 하다. 조카들을 끔찍이 아끼던 난 엄마를 닮아 모성애를 천성처럼 가지고 태어난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스스로 죄스러워지는 요즘이다.

 ‘모성애’라는 단어 앞에서 늘 반성하던 내 동생의 지난 시간들이 떠올랐다. 아이를 보면서 행복해야 하는데 혼자 있는 시간이 행복하고,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기고 잠깐이라도 외출하는 날이면 그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다며 자신은 엄마로서는 영 꽝인 것 같다고 반성하던 내 동생에게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다독이던 난 무슨 생각으로 확신에 찬 위로를 했던 걸까. 학교에서 다 큰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느낀 얄팍한 깨달음이 그 원천이었을 것이다. 동생의 반성은 현재도 진행 중이지만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원초적 불안과 죄책감에 비하면 꽤나 진일보한 내 동생의 선 경험을 역으로 위안 삼아 순간을 버티고 하루하루를 기록하는 중이다.


서서히 불러오는 배에 익숙해지는 중


 앞으로도 계속될 내 모성 점검의 순간들 앞에 하나 분명히 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모성애의 사전적 의미는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본능적인 사랑’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본능은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생득적 행동능력이니 지나치게 노력하고 반성해서 자존감 자체를 뒤흔들 필요는 없다. 모성애가 발동하는 순간은 앞으로도 무궁무진할 거고, 차곡차곡 쌓여갈 모성의 순간들을 잊지 않고 아이를 사랑하면 된다. 아이를 믿고 나를 믿고 그렇게 순간에 충실하면 꽤 괜찮은 날들이 켜켜이 쌓여갈 것이다. 그 순간들을 기다리며 지금은 몸과 마음이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조금 불만해도 괜찮지 않나 나에게 여유를 주어야겠다. 엄마가 편안해야 아기도 편안하니까. 이 순간에도 꿀렁임을 멈추지 않는 아기에게 동조를 구해본다.


엄마가 편해야 우리 축복이도 편하지? 그치?


배꼽 근처로 툭툭 노크를 해댄다.
긍정의 끄덕임이라 여기며 무쓸모 상념을 가볍게 접었다. 닥치면 어떻게든 다 하게 되어 있다는 말의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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