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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pe diem Apr 03. 2021

EP12. 가족의 탄생

들숨과 날숨이 머무는 사이

들숨과 날숨이 머무는 사이 / carpediem


고나는 마음이라 쉬이 지쳐

 고를 사이 없이 돌아치다

로사 직전에야 백기를  순간


아드는 순풍에 온기가  끼쳐

 고를 여유마저 본디 너의 

지러진 마음에 생기가 돈다


저리의 지난했던  시간들

리수였음을  몰랐겠냐만은

질거리던 마음을 탓하랴


사로운 시선 끝에 머무는

로운 위로가 봄볕마냥 따사롭다



그와 나의 나란한 그림자


 집에서도 일을 놓을 수 없는 신랑의 피로도는 날로 쌓여가고 핸드폰을 보다 스르르 잠이 드는 손목에 힘이 풀리는 시간은 급격히 단축되었다. 눈을 반쯤 감은 채 고개를 돌려 입을 맞추고 “사랑해, 잘 자 여보.”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깊이 잠이 드는 신랑 옆에서 나는 어두운 천장만 멀뚱멀뚱 바라보다 겨우 선잠에 든다. 잠을 청하기 전, 혼자 자는 게 익숙하고 잠귀가 예민해 누군가와 동침하는 걸 힘들어하던 내가 어느새 신랑의 숨소리를 백색 소음 삼아 잠드는 날들이 쌓여가고 있단 사실이 신기해 쌔근쌔근 잠든 신랑에게 시선을 돌렸다. 블라인드 사이로 새어 나온 달빛에 어렴풋이 비친 신랑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길지 않은 시간에 이렇게까지 관계가 깊어질 수 있을까 묘하게 센티해지려는 순간, 신랑이 잠결에도 오른팔을 내준다. 팔베개에 기대어 그와 나의 들숨과 날숨이 머무는 순간에 대해 생각하다 잠이 들었다.


 지난날의 나는 약간의 과장을 보태 타인의 시선이 전부인 삶을 살았다고 해도 무방하다. 부모님에게 자랑스러운 딸이고 싶었고, 선생님에게 인정받는 모범적인 학생이고 싶었고, 남들 눈에 행복해 보이는 화목한 가정을 적절한 때에 꾸릴 줄 아는 아내이자 엄마이고 싶었다. 그래서 서툴렀지만 마음이 급했고 행동이 앞섰다. 주변을 의식하느라 나와 타인을 비교하며 끊임없이 채찍질하기에 급급했다. 결국 섣부른 판단은 잘못된 선택으로 이어졌고 마음을 돌보지 않은 대가는 혹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들을 담담하게 감내하려고 노력한 나는 처절하지만 수면 위에서는 한없이 우아한 백조 같았다. 수많은 기대와 시선에 치여 나자빠졌지만, 그 시선들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또한 내가 살아가는 힘이라는 것을 깨달은 아이러니한 순간이었다.


내년 봄에나 신길 수 있을 아이의 손바닥만한 운동화


 한동안 씻은 듯 나은 줄 알았던 나의 불면증은 불청객이 되어 봄과 함께 다시 찾아왔다. 배가 불러오는 요즘 쉬이 깊은 잠에 들지 못하는 데다 한 시간에 한 번씩 깨서 화장실에 드나드는데, 둔해진 내 움직임과 달리 더 활발해진 아이의 태동에 놀라 그나마 청한 잠은 또 달아나고 만다. 그렇게 뒤척이다 두어 시간을 뜬눈으로 보내는 날들이 이어진다. 누군가 그랬다. 결혼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가족이라고. 외로운 한숨만 가득했던 공간에 사랑하는 사람의 숨결이 공존하고, 곧 태어날 아이의 쌔근쌔근한 숨결이 더해질 것이다. 마음을 믿고 사람을 보고 선택한 내 판단이 지독한 낭만주의라고 한다면 할 말 없지만, 최소한 지금의 난 내 판단에 후회가 없고 내가 선택한 내 가족이라 만족스럽다.


 밤잠을 설치고 자연히 낮잠이 느는 악순환의 반복이지만 몸이 시키는 대로 본능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게 만삭 임산부의 숙명이라 그러려니 놓아버리는 중이다. 때론,


놓아버리는 것도 정답일 수 있다는 걸
천천히 체득하며 그렇게 나이를 먹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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