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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잇문학도 Jan 10. 2022

자율주행모드로 사는 완벽한 방법

넛지, 행동 경제학

 처음 영업사원을 시작했을 때, 회사 법인 차량은 검은색 소나타였다. 시트에서는 은근한 담배냄새가 났다. 나의 멘토였던 선배는 선심을 쓰듯 "도로로 나가면 한 대 펴도 돼."라고 말했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멘토 선배는 굴러다니는 여명808을 치우고 내 옆에 앉았다. 영업사원 도로연수의 시작이었다.


 B2B 영업의 꽃은 지방에 있는 사장님들을 만나러 가는 순간이다. 검은 소나타와 함께, 그만큼 얼굴은 검은 선배를 태우고 나는 충청도와 경상도, 전라도 삼각지대를 돌아다녔다. 서툰 운전 실력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내가 길치라는 사실이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실시간 내비게이션이 여의치 않았고, 업데이트가 된 지 오래된 비는 나를 엄한 곳으로 이끌었다.


 시골길을 잘못 드는 거라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고속도로가 두세 갈래로 나뉘는 순간은 입사 면접보다 더욱 긴장되었다. 옆에 탄 선배도 마찬가지였다. "오른쪽으로 빠진 후에.. 바로 왼쪽.. 아니다! 오른쪽!!" 소리치는 선배는 정신 사나웠다.


 고속도로 미궁에서 우리를 살린 것은 노변에 있는 색깔 유도선이었다. 초록색과 분홍색 유도선에 익숙해지자 우리는 실패 없이 고속도로를 빠져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넛지'였다는 걸 나는 몇 년 후 알게 되었다.



회사원이여. 잠들어 있으라


 내 유튜브에는 지금도 온갖 자기개발, 교육, 커리어에 대한 채널들이 구독되어 있다. 서재에는 읽지 않은 책이 가득하다. 읽는 속도보다 사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다행히 김영하 작가님은 책은 사둔 것 중에 읽는 법이라고 말해 위안을 주었다.



 어떤 날은 깊은 영감에 빠져 하루 종일 양질의 영상이나 글을 찾아보기도 한다. 하루에 책 한 권을 다 읽고 리뷰를 쓸 정도로 집중력을 발휘하는 날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내 상태가 매일 이러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런 일은 잦지 않다. 매번 계획한 것을 반도 못하거나, 초과 달성 하기를 반복한다. 결국 전체 성과는 그저 그렇다.


 반면 회사에서의 성과는 전혀 다른 형태였다. 시간이 흐르고 나면 꽤 많을 일을 해냈다. 회사에서 하는 대부분의 일은 기록으로 남는다. 일 년이 지나면 "내가 이런 일을 다 했었나?" 의문이 들 지경이다. 성과 차이가 왜 있을까? 자기개발도 회사일처럼 했다면 지금쯤 3개 국어를 하는 코딩 천재가 되었을 텐데 말이다.


 성경에는 깨어있으라!라고 했지만, 우리는 매일 깨어있을 수 없다. 좋은 글도 매일 읽으며 영감을 얻을 수 없고, 매일 아이디어를 낼 수도 없다. 매일 영감을 얻고 아이디어를 내고 싶어도 의식의 영역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지속하기 위해서는 의식 밖의 영역에 있어한다. 즉, 의식 없이 몸을 출근시키는 것처럼 자율주행 모드여야 한다. 우리는 '넛지'를 통해 자율주행을 배울 수 있다.


그래, 출근도 자율주행이다.



인간은 귀차니즘 동물이다


 노벨 경제학 수상자이자 행동경제학을 대중화시킨 리처드 탈러와 오바마 정부 법률 전문가 캐스 선스타인은 '넛지'라는 책으로 전 세계 출판시장을 석권했다. 행동 경제학은 생소한 개념이 아니다. 사회 심리학에서 행동 심리학으로, 심리학에서 경제학으로 발전해온 인간 행동에 대한 이야기다. 책은 선택을 유도하는 프로세스와 여러 가지 개입 소를 소개한다.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인간은 현상 유지를 좋아하며 기본 옵션을 따르는 성향이 매우 강하다는 점'이다. 자동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공장과 같다. 한 예로, 사람들은 휴대폰을 구입한 후에 대부분 휴대폰 디폴트 옵션을 그대로 사용한다. 벨소리도 디폴트를 쓰고, 각종 기능도 그대로 쓰며, 심지어 배경화면조차 바꾸지 않는 이들이 많다.


 사람들은 결정을 내릴 때 '정황 또는 맥락'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원래 그래 왔던 것', '원래 그렇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는 전문 용어로 '동태적 비일관성'이라고 하는데, 쉬운 말로는 '귀차니즘'이다. 인간은 귀차니즘이 기본으로 설정되어 있다. '넛지'는 이러한 설정을 조금 건드려서 사람들의 행동을 바꾸는 방법이다.


 맨 앞에 가고 있는 양의 방향을 바꾸면 양 떼 역시 방향을 바꾼다. 양떼몰이처럼 행동을 바꾸는 이를 '선택 설계자'라고 한다. 지하철 두 줄 서기를 하게끔 바닥에 발자국 그림을 그려 넣거나, 휴대폰 요금제 가입 시 해지 가능한 부가 서비스를 넣는 것도 모두 '선택 설계자'가 하는 일이다.



스스로의 선택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매번 결정내릴 필요 없이 정황이나 맥락에 따라 멍하니 할 수 있도록 일상을 설계하는 것은 성과를 거두는데 매우 중요하다. 나 역시 브런치에 글을 쓰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그렇지 않으면 꾸준하게 무엇인가를 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


 생활양식이 정해지지 않으면, 체력과 정신적인 에너지에 따라 매번 다른 결정을 하게 되고 행동이 달라진다. '넛지'에 따르면 계획을 하는 자아와 행동을 하는 자아가 다르다. 그리고 행동하는 자아는 항상 계획하는 자아를 이긴다. 체력과 에너지까지 부족하면 행동하는 자아가 완승한다.

 

 이는 일상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회사에서 잔뜩 시달린 날, 에너지 상태를 생각해보자. 그런 상태로 집에 돌아와, 공부를 할지 책을 읽을지 운동을 할지 생각하는 것은 또 다른 에너지 사용이다. 그럼 어떻게 되겠는가? 일단 집에 돌아왔으니 평소처럼 바닥에 눕게 된다. 누워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계획한 것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삼만 개 정도 떠오른다. 그리고 안 한다.


회사는 늘 우리를 지치게 만든다


 새로운 것을 계획하고 미래를 짜는 자아가 이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평소에 하던 걸 하라고 귓속말 하는 자아가 승리한다. 만약 집에 가는 길에 자연스레 필라테스를 가도록 동선을 짜거나, 저녁은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샌드위치를 먹거나, 매일 영어 팟캐스트를 들으며 잠을 자는 것처럼 생활양식이 정해졌다면 어땠을까? 에너지 상태와 상관없이 예약 시간에 맞춰 퇴근길에 필라테스를 가고, 저녁을 먹기 위해 카페로 갈 것이며, 잠을 자기 위해 팟캐스트를 들을 것이다. 출근해서 일하듯 말이다.



에너지가 빨간색이어도 자율주행은 돈다


 매번 자율주행이 성공할 수는 없다. 내비게이션이 잘못된 길을 알려주듯 몸과 마음이 지쳐 부정적인 생각에 빠질 수도 있다. 우리가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이유는 에너지 탓도 있지만, 부정적인 생각이 우리 인생에 도움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유독 남들보다 걱정이 많은 사람들이 있다. 항상 최악의 시나리오를 그리고 스트레스를 받는 이들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이들은 걱정을 즐기고 있다. 걱정을 해야 미래를 예측하고 준비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빠르게 지워야 한다. 잘못된 판단이기 때문이다.


 에너지가 부족할 때 떠오르는 걱정은 전략보다는 망상에 가깝다. 사람은 편향적이다. '넛지'에서 말하듯 우리는 대부분의 것을 어림잡고, 무엇이 기준이냐에 따라 다른 판단을 내린다. 이득이 큰 것은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따뜻한 음료 하나에 공격성이 줄어들기도 하며, 질문 형태에 따라 긍정을 부정으로 답한다. 우리의 걱정도 근거 없이 내리는 어림짐작일 확률이 매우 높다.


 회사원일수록 부정적인 헛똑똑이가 되기 쉽다. 에너지가 항상 넉넉하니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각이 합리적인 판단에서 나온 결과라고 믿겠지만, 그냥 에너지 부족인 경우가 많다.


 많은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면서도 새로운 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이유는 대부분 에너지 문제다. 그래서 사람은 현상을 유지하거나 몸이 가는 데로 움직이고 싶어 한다.


 에너지가 부족해도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은 자율주행 밖에 없다. 불안한 상상과 부정적인 감정과 상관없이 우리에게는 습관이 필요하다. 최소한으로 정해놓은 것들 몇 개도 충분하다. 그 정도로는 여가생활을 모두 빼앗기지 않는다.


 주말만이라도 자신의 선택 설계자가 되어 자율주행 코스를 짜보자. 최소한의 것들은 할 수 있도록 하루를 설계하자. 자율주행은 에너지가 없어도 충분하다. 언제는 에너지가 넘쳐서 우리가 출근을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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