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셀리그먼, 긍정 심리학
한동안 '시니컬'이라는 단어가 유행을 했다. '시크' 비슷한 어감의 '시니컬'은 대학 세미나에 자주 등장했다. 세미나에서 가장 똑똑한 선배는 항상 냉소적인 자세를 취했다. 그의 논리는 철옹성 같았고 그 어떤 사람도 말싸움으로 이길 수 없었다. 그 선배에는 '시니컬'이라는 칭호가 붙었다. 가장 똑똑하다는 명예로운 뜻이었다.
세미나 후 뒤풀이에서 한 선배는 귓속말로 "저 재수 없는 놈은 두고 우리들끼리 2차를 가자"고 속삭였다. 우리는 집에 가는 척하고는 다시 모여 2차를 즐겼다. 시니컬한 선배도 묘한 분위기를 눈치챈 듯했지만 별로 개의치 않은 표정으로 홀로 귀가했다. 역시 그는 시니컬하고 시크했다.
회사에 많은 비관주의자와 소수의 낙관주의자가 있다. 회의는 언제나 비관주의자들이 주목받는다. 주최자가 "문제는 알겠으니, 대안을 냅시다. 대안을!"하고 외쳐야 간신히 회의가 끝난다. 각자 아이디어를 가져오기로 한 다음 회의도 여전히 비관주의자들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그들은 보통 수려한 화술까지 갖춘다.
냉소적인 이들은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정확히 안다. 무슨 문제가 생길지 예측도 잘하고, 상황이 안 좋아지는 증거를 동물적인 감각으로 찾아낸다. 그에 비해 낙관주의자들은 비현실적인 기대를 파는 약장수 같다. 낙관주의자들은 매번 일을 당장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라고 외친다. 비관주의자들의 비웃음을 산다.
놀랍게도 직급이 올라가고 권력에 가까이 갈수록 낙관주의자들이 두각을 드러낸다. 비관주의자들은 일을 미루거나 못하게 만드는 반면 낙관주의자들을 일을 강행시키기 때문이다. 그들은 별 볼일 없는 성과를 게의치 않고 실패에도 금세 바보처럼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 다 잘 될 거라는 그들의 기대에 언젠가 확률의 신이 답한다. 주사위도 계속 던지면 언젠가 6이 나오는 법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회사에서는 낙관주의자 리더가 많다. 다수의 리더들은 부족한 자원으로도 일단 열심히 해보라고 한다. 지나친 리더의 긍정은 실무자에겐 스트레스 원인이다. 그래도 멍청하면서 비관주의 리더보다 멍청하고 낙관적인 리더가 낫긴 하다. 리더는 어찌 되었든 욕을 먹는 위치니 말이다.
긍정 심리학의 창시자인 마틴 셀리그만 교수는 저서와 강연을 통해 긍정적인 심리 주는 효과를 대중들에게 알렸다. 심리학과 정신의학은 지난 80년 간 크게 발전했다. 질병 모델을 기반으로 사람들에게 어떠한 정신 장애가 있는지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게 되었다. 과학과 의학의 발달은 약물 치료, 심리 치료를 가속화했다. 현재 많은 정신 질환은 문제없이 관리될 수 있으며 일부는 완치도 가능하다.
하지만 마틴 셀리그만 교수는 부정적인 문제점도 함께 있다고 지적한다. 심리학과 정신의학은 그동안 불행한 사람들을 덜 불행하게 했으나 반대의 경우는 미흡했다. 사람들이 더 행복해지고, 더 성취하고, 더 생산적으로 변하기 위한 연구가 부족했다. 이를 채우기 위해 시작한 연구가 바로 '긍정 심리학'이다.
긍정 심리학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단점'을 개선하는 행동은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간신히 문제점을 해결하거나 보완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장점'에 집중을 하면 이야기를 달라진다. 잘하는 것을 더 잘하게 되면 놀랍게도 전체 능력이 향상했다. '꼼꼼하지 못한' 단점을 고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비효율적이었고, 잘하는 능력에 집중하면 전체 능력이 상승할 뿐만 아니라 '꼼꼼함'이 평균 수준까지 개선되었다.
현대는 긍정 심리학의 효과를 인정하고 있다. 한국에서 유행하는 자기개발서도 대부분 긍정 심리학에 기반한다. 이제 회사에서도 사람을 채용할 때, 가장 못하는 것을 묻는 대신 가장 잘하는 것과 성과를 기술하라고 한다. 바야흐로 긍정 심리의 시대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긍정 심리학은 단순한 행복론이 아니다는 점이다. 긍정 심리학은 행복, 성취, 생산성을 올리는 의학이자 과학의 영역이다. 긍정적인 상태는 항상 더 생산적이다.
긍정적인 상태는 3가지 요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즐거운 감정', '몰입', '의미'다. 이 세 가지를 통해 우리는 낙관주의자 또는 보다 생산성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첫 번째, 즐거운 감정은 어렵지 않다. 아이스크림 하나에서도 우리는 이런 감정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즐거운 감정은 유전적이다. 타고나게 즐거운 감정을 잘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MBTI나 각종 심리진단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묘하게 리액션 좋고 에너지틱한 사람들이 있다. 타고난 성향은 쉽게 고칠 수없다.
두 번째, 몰입은 감정과 관계가 없다. 일이나 놀이를 하면서 순식간에 시간이 흐르는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몰입은 우리를 긍정적인 상태로 만든다. 몰입은 생산성과 성취뿐만 아니라 행복 수치에도 영향을 미친다. 몰입할 것이 없는 삶은 긍정적인 삶일 수 없다.
세 번째, 의미는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에게 무가치한 일을 잘할 수 없다. 성공한 많은 이들은 이타적인 결과물이 성공의 원천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사실이다. 돈이든 명예든 성공은 사회적인 결과물이고, 모두 다른 사람으로부터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2020년 블라인드에서 발표한 '직장 내 행복' 조사에서도 의미와 몰입은 가장 중요한 행복 요인으로 꼽혔다. 즐거움, 몰입, 의미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 모든 요인들은 회사 밖에서든 안에서든 삶이라는 바탕 아래 상관관계로 묶여있다. 긍정 상태가 잦을수록 삶의 모든 것이 변한다.
낙관주의는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정서다. 즉, 낙관주의자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긍정적인 상태가 되어야 한다. 회사에서는 날카로운 냉소주의자일지라도 회사 밖에서는 낙관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삶도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변화에는 시간이 걸린다. 시간이 걸린다는 것은 많은 노력과 지속적인 실패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수능 문제를 잘 풀기 위해서는 수많은 모의고사를 풀어야 한다. 퇴근 후에 무엇을 도전하듯 우리는 분명 모의고사 같은 실패를 맛볼 것이다.
낙관주의자가 되면 이러한 실패에 의연해질 수 있다. 낙관주의자는 하나가 잘못된다고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음을 알고 있다. 몇 달 동안 투자한 자금이 시답지 않은 수익을 거두고, 주말 동안 시도한 사업 아이디어가 모두 실패한다고 해도, 단순히 실패했을 뿐이지 인생이 망가진 것은 아니다. 비관주의자라면 새로 시도할 에너지조차 잃어버릴 것이다.
결국 변화를 위해서는 '긍정적 감정 갖기, 몰입을 경험하기, 도전하는 일에서 의미 찾기'가 큰 도움이 된다. 긍정적 감정은 둘째 치더라도 몰입과 의미를 습관화할 필요가 있다. 대충 해보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것에 몰입해야 한다. 몰입하면 몰입할수록, 의미를 곱씹을수록 우리는 더욱 생산적이고, 더욱 성취하며, 더욱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이다.
[블라인드 기획기사]
https://www.venturesquare.net/820247
[마틴 셀리그먼 TED, 중요 메시지가 거의 다 있는 좋은 강연입니다 ]
https://www.ted.com/talks/martin_seligman_the_new_era_of_positive_psychology?language=k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