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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이고 싶지만, 혼자 있기 싫어

우리는 개인주의자로 만들어집니다.

by 잇문학도
내가 뚜렷해질수록, 남도 뚜렷해진다.

우리는 항상 어딘가에 속해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소속(가족)도 있고, 노력하거나 살다 보니 속하게 된 곳(회사..)도 있습니다. 별 노력없이 속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브런치?)도 포함해서요. 요즘은 자신이 노력해서 들어간 집단에서도 벗어나고 싶어 하는 개인들을 자주 모습을 목격합니다.


'같은 집단'에 속해 있다면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에 '같은 것'을 해야 하는 게 상식이었습니다. 상식을 지키지 않으면 아웃사이더가 되었어요. 하지만 이제 상식이 바뀌었습니다. 예전에는 같은 시간에 만나 같은 술과 같은 음식를 먹으며 같이 건배를 하는 이상한 문화가 절대적이었죠. 모두가 '짜장면'할 때, '울면'이요! 하면 곧 울 게 될 거라는 격언도 있었고요.


신입사원이 회식자리에서 소맥 대신 하이볼을 시키고, 비싸고 처음보는 안주를 시키고, 늦게 오거나 일찍 간다면.. 남은 사람들의 안줏거리가 되기 십상이었습니다. 흑..

술 판을 엎은 건 꿈은 아니었구나..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꼭 같이 밥을 먹어야 하는 시대가 끝났습니다. 다들 너무 바빠요. 이제는 모든 것이 개인화되고 있습니다. 카페에 혼자 방문하는 게 이상하지 않고, 혼자 여행도 흔한 일입니다. 사실 20년 전만해도 저는 혼자서는 카페에 들어가 앉아 있는 게 망설여졌어요. 커피를 다 마실 때까지 "나는 누구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어. 왜 안 오지?"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어요. 한 편의 연극이었죠.


요즘은 오히려 개인 활동을 더욱 장려합니다. 마케팅에서는 '초개인화' 매우 중요한데요. 한 사람의 행동과 선택이 휴대폰과 PC에 입력되면 이는 모두 데이터로 남습니다. 마케팅에서는 이 데이터로 알고리즘을 만들어 소비자를 분석하고요. 마침내 단 한 사람만을 위한 추천 콘텐츠와 추천 상품을 제공하죠.


내 취향으로 범벅이 된 '초개인화' 마케팅은 안하는 곳이 없을 정도로 효과적입니다. 하품하다가 입을 벌렸는데 누가 갑자기 숟가락을 입에 넣은 느낌. 그런데 그게 나쁘지만은 않은 느낌. 그렇게 씹다보면 결재를 하게 됩니다. 그게 바로 초개인화 마케팅의 비결이죠. 양말 사러 들어갔다가 신발 사고 나오게 되고요. 저처럼.


추천 시스템.. 왠지 거슬리지만 마냥 나쁘지 않아요


인간관계도 이제는 온라인이 실제 만남을 대체했습니다. 메신저 시대가 오면서 전화는 한 번도 하지 않아도 카톡이나 페북 메시지로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이제 인간관계는 온라인으로 관리하는 양이 압도적으로 많을 겁니다.


기술과 환경이 점점 개인화되면서, 한 명의 개인은 이전보다 더 독립성을 획득한 것 같습니다. AI의 도움을 받는다면 웬만한 일은 혼자서 다 할 수도 있는 세상이 오고 있죠.


제 도움 없이는 아무 것도 못합니까? 휴먼?


우리는 한층 더 자유로워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내가 더 뚜렷해질수록 다른 사람과의 경계도 뚜렷해지는 것 같아요. 나와 남이 점점 멀게 느껴집니다. 외롭다는 감정의 시작이기도 하고요.


물론 누군가와 가까워야 하는 건 아닙니다. 그렇다고 외로움이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몸은 사람들과 함께 있지만 마음은 고립감을 느끼는 현상을 누구나 느껴보셨을 겁니다. 하버드의 세리 터클 교수는따로 또 같이(Alone together)라는 개념으로 이를 정의합니다. 현대의 우리는 언제나 연결되어 있는 것 같지만, 사실 혼자이고 외롭다는 거죠. 여러분이 현대에 사는 사람이라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우리가 느끼는 외로움의 총량도 점점 커지는 것 같습니다. 2023년 문체부의 <국민 사회적 연결 실태조사> 응답자의 70.1%는 '평소 외로움을 느꼈다'고 답변했습니다. 2023년 행정연구원의 <사회통합실태조사>에서는 '외롭다'가 평균 18.5%,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한다'가 13%를 차지했습니다. 2024년 한국리서치가 발표한 <한국인의 외로움 인식 보고서>에서도 72% 응답자가 외로움을 경험했다고 답했습니다. 이 길고 지루한 숫자가 하는 말은 하나입니다. 외로움이 일상이 되었다, 는 거죠.


우리는 혼자 있는 자유와 독립을 갈망하지만 외롭습니다. 우리는 왜 외롭다고 느끼면서 다른 사람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동시에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을까요? 왜 이런 이중적인 마음을 가지게 된 걸까요? 인간의 본능일까요?


외로워 누군가 다가왔으며ㄴ..오지마!


코로나19 이후 환경은 우리를 더욱 고립시켰습니다. 사회, 경제, 문화 모든 면에서 우리는 더욱 철저한 개인주의자가 되기를 요구받습니다. 제가 앞으로 쓰고자 하는 글은 개인주의자가 되어야만 하는, 되어야 한다고 압박을 받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세대에 상관없이 개인주의자로 변한 우리는 이전과는 다른 선택을 하며 살아갑니다. 우리가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지 예측하기 위해 이전과 다른 변화를 세밀하게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경험을 외주하세요.

아웃소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내부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일을 외부에 있는 누군가에게 부탁해 해결하는 걸 말해요. 우리는 이제 경험도 이렇게 외주를 하고 있어요. '칸쵸 빠삐코맛' 드셔보셨나요? 겉도 초콜릿 과자로 변해 텁텁한 초코맛이 납니다. 맛있냐고요? 모르겠어요. 저도 호기심까까라는 인스타를 통해 대리 체험했거든요. 안 사먹을 예정입니다.


여러분은 여행 가기 전에 가장 먼저 무엇을 하시나요? 저는 유튜브에서 여행지를 검색합니다. 크리에이터가 가격부터 랜드마크까지 모두 알려주죠. 한참 보다 보면 때로는 그곳에 다녀온 기분이 들 때도 있답니다. 종종 여행병이 도지는데 아주 특효약입니다. 여행을 가기 위해 본 영상 덕분에 여행을 안가게 됩니다.


인생은 모순 투성이죠..

경험은 이제 콘텐츠가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특정한 경험을 얻기 위해서 많은 노력이 필요했죠. 여행의 시작은 저렴하면서 알맞은 시간대의 비행기표를 알아보는 골치 아픈 일에서 시작하니까요. 반면 가상 경험은 때로는 진짜 경험보다 더 강렬합니다. 몽골에 가보고 싶다고요? 몽골 여행을 검색하면 바로 생생한 4K 여행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배가 고프면 먹방을 보고 여행을 지르고 싶으면 고개를 들어 유튜브를 보라." 진리의 말입니다.


콘텐츠화된 경험 말고 친구들과의 교류를 어떤가요? 실제로 자주 만나고 계신가요? SNS로 소식을 접하거나 메신저로 이야기를 나누면 이미 만난 것 같지 않나요? 아 애초에 만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라고요? 저에게도 매일 말 없이 자신의 점심 식사 사진만 올리는 친구가 있는데요. 그는 이미 죽었고, 그가 만든 봇이 사진을 올리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카카오톡이나 페북 메시지, DM과 같은 소통 수단을 통해 우리는 항상 연결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지인들의 일상도 인스타도 매일 볼 수 있죠. 그러니 종종 실제로 만나기가 귀찮아집니다. "이미 근황은 다 알고 있는데,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또 하냐." 싶은 거죠. 인류 역사상 이렇게 주변 사람들의 일상을 다 알고 있는 시대는 없을 겁니다. 친구의 친구의 강아지의 애인까지도 알 게 되는 수준이니까요.


아,아니..오ㅓㅐ 둘이 아는 사이야??


실제 만남이 줄어드니 외식도 안합니다. 코로나19 이후 식품산업 경기는 점점 증가하는 반면 외식산업은 하락에 하락이죠. 성인의 50%는 하루 한 끼 '혼밥'을 한다는 조사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 성인들도 지난 20년간 저녁식사나 음주를 하는 비율이 30% 이상 감소했다고 합니다. 몸과 간이 더 튼튼해졌네요.


외주해서 얻게 된 우리의 가상 경험은 직접 경험했다는 착각을 일으켜 실제로 무엇인가를 해볼 의지를 줄입니다. 하지 않으니 누군가와 연결되고자 하는 갈증은 더욱 커집니다. 장담하지만 SNS를 가장 많이 한 날이 가장 외로운 날일 걸요? '우울해서 인스타그램을 지웠습니다'는 슬픈 현대인의 유행가니까요.


나만의 것이, 모두의 것이 되다니

여러분은 '나만 아는 맛집'이 있나요? 그리고 그 맛집은 지금도 나만 알고 계신가요?

성시경이 [먹을텐데]라는 유튜브 채널에서 맛집을 소개하면 맛집 단골들이 나타나 댓글을 답니다. '제발 저의 맛집을 빼앗아가지 말아 주세요.'라고 말이죠. 억지스럽지만 공감가는 구슬픈 댓글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제가 아는 맛집도 이제 줄을 서서 가기 어려워졌습니다. 주인아주머니의 행복을 빌어줄 뿐이죠.


우리는 예전보다 정보도 손쉽게 얻고, 다른 사람의 영상과 글을 통해 가상 체험도 할 수 있습니다. 특히 SNS에서 바이럴이 되는 공간은 더 이상 나만의 공간이 아니게 되는데요. 그럴 때면 종종 서운하죠. '희소성의 상실'인데요. 설득의 심리학으로 오명한 로버트 치알디니 교수는 희소성의 법칙을 이야기하며 특별한 경험이나 제품도 흔해지면 가치가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나의 리미티드 에디션의 물량이 풀려버리는 거죠.


흔해질 수 있으니 아예 안 주는 수 밖에...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의 맛집'이 우리에게 더 만족감을 주는 것도 아닙니다. SNS를 통해 추천받은 맛집은 우리가 직접 찾은 맛집에 비해 큰 만족감을 줄 수 없어요. 그래서 항상 "맛은 나쁘지 않은데, 이렇게 줄 서서까지 먹어야 할 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드는 거고요. 나에게 의미가 있는 경험만이 큰 만족감을 줍니다. '나만의 맛집'을 가는 것은 축적된 감정과 기억을 즐기는 거고요. 그러니 여전히 나의 맛집 리스트를 의미를 가집니다.


그러니 남의 맛집, 나아가 남의 경험은 아무리 댓글에 '좋아요'와 '공감'을 눌러도 묘한 갈증이 남습니다. 감정과 기억은 없고 정보만 있으니까요. 친구가 갈비찜 고기는 다 건져먹고 나는 당근과 무만 찔러보는 허무함이 남죠. 우리는 결국 직접 경험하고, 나누고, 연결되는 경험을 버릴 수 없습니다.


우리의 생각도 행동도 변하고 있을까?

언어는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다고 하죠. 최근에는 개인의 성취와 특별함, 소유를 강조하는 언어가 중심에 있는 것 같습니다.


2010년부터 지금까지의 구글 트렌드를 보면, '혼자'라는 단어의 언급량은 2024년 약 3배 증가했습니다. '자기계발'의 언급량은 3.5배 정도 증가했고요. '우리'와 '나'의 언급량 비교도 재미있는 결과가 나왔는데요. 2016년 정도까지 우리의 언급량이 항상 많다가, 2018년도쯤 폭등합니다. 코로나 이후에는 점차 줄고 '나'의 언급량이 '우리'의 언급량을 지속적으로 넘어섭니다.


물론 이러한 단편적인 것만 봐서는 안 되겠죠. 2010년 트렌드 코리아의 두 번째 트렌드는 <떴다! 우리 동네>입니다.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커뮤니티를 이룬다는 건데요. 2025년 트렌드 코리아 두 번째 트렌드는 <아보하>입니다. 한 명의 개인이 지내는 아주 보통의 하루를 이야기하죠. 우리는 사실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점점 지역보다는 내가 사는 공간, 우리보다는 나를 더 언급하며 산다는 걸요.


저는 인기 드라마의 주인공도 의미 있게 보았습니다. 2000년대 인기 드라마는 시청률순대로 대장금(MBC, 2003-2004), 파리의 연인(SBS, 2004), 주몽(MBC, 2006-2007)입니다. 어떤 주인공들이었나요? 2020년은 부부의 세계(JTBC, 2020), 재벌집 막내아들(JTBC, 2022), 사랑의 불시착(tvN, 2020)입니다. 2000년대 주인공이랑 비슷한가요? 저는 전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2020년의 주인공들은 모두 개인의 판단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기존의 통념이나 시스템에 저항하는 사람들인데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난 여기 있는 이 드라마를 모두 봤어요!


걸음걸이까지 변했다고 하면 좀 과언일까요?

2007년에 발표된 영국 하트퍼드셔 대학교의 리처드 와이즈먼 교수 연구팀의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주요 도시의 보행 속도가 1990년대에 비해 약 1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중 아시아권 사람들의 걸음이 가장 빨랐는데요. 우리나라가 조사에 있었다면 속도가 얼마나 됐을까요? 여러분은 예전보다 더 빨리 걷으시나요? 아니면 더 느긋하고 걷고 계신가요?


사람은 함께 걸으면 걸음걸이 속도가 서로 비슷해진다고 합니다. 보폭을 맞추려는 심리적 요인이 있기 때문인데요. 상대적으로 더 느린 사람의 속도에 맞춰 걷게 됩니다. 모두들 각자의 속도로 혼자 걸을 때 가장 빨리 걷는 셈이죠. 우리 점점 더 빠르게, 목적지를 향해, 혼자 걷고 있습니다.


아주 미세한 상호작용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바쁜 도시에서는 서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예의일까요?

엘리베이터에서 누군가 버튼을 눌러주는 순간, 카페 종업원과 나누는 짧은 대화, 눈이 마주쳐서 무심코 던지는 인사도 모두 우리의 단절감을 없애줍니다. 심지어 자신이 쓴 글의 댓글도 이러한 효과가 있습니다. 부담스러운 관계없이도 작은 상호작용은 위안과 웰빙을 줍니다.


에서 빠져나와 사람들을 만나보자


상호작용은 티타임이나 저녁 술자리처럼 거대할 필요가 없습니다. 일상적인 사회적 상호작용이나 누군가에게 지지받고 있다는 느낌이나 생각으로도 충분합니다. 반드시 아는 사람일 필요도 없습니다. 처음 만나는 이들과 달리는 러닝크루나 온라인 토론도 충분합니다. 우리가 단절되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이면 됩니다. 가족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말할 것도 없죠. 너무나 독립적으로 살게 만드는 환경이, 도리어 느슨한 연대를 만들 기회가 됩니다.


결국 우리는 개별적 존재이지만, 완전히 단절될 수는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기를 바라는 존재고요. 강하고 독립적인 개인주의자를 요구하는 환경에서도 우리는 함께 할 수 있습니다. 혼자 있지만 혼자 있고 싶지 않은 마음은 외향형인 사람이 내향적인 순간을 편안하게 느끼는 것과 같습니다. 균형을 위해서는 항상 반대의 것이 필요합니다. 양쪽 끝을 끊임없이 진자운동하는 우리의 마음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죠.


코로나19 이후 우리는 이전보다 더 실체 경험에서 멀어지고 있고, 서로 다른 형태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속적으로 동기화되어 있다는 환상도 생겼고요. 실제로는 단절되어 있음에도요. 한편으로 미세한 상호작용을 찾고자 하는 행동들이 생겨납니다. 결국 우리는 가벼운 연결 속 존재하는 ‘유동적 개인’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슨 말인데요? 3줄 요약


코로나19 이후에도 사람들은 점점 개인화되고 있으며, 혼자만의 활동과 경험을 자연스럽게 생각합니다.

실제 경험이 온라인 가상 경험으로 대체되면서 사람들은 경험도 풍부해지고 항상 연결된 것 같지만 실제로는 더 고립되고 외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완전하게 단절될 수 없는 존재이고 작은 상호작용만으로도 다시 연결감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외로움 행동 기사 / 한국일보]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21418060002014[

[혼밥]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62209390003667

[SNS와 외로움 연구] 지각된 외로움과 일상적 SNS 활동, 사회적 고립감 간 관계 연구

[보폭 연구]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7984988

[미세 상호작용] https://www.bbc.com/korean/international-63436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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