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같지 않아도 돼. 변하는 것도 삶의 일부야.

by 마정열

한 해의 반이 지났다. 7월도 중순이다. 중부지방을 강타한 호우로 인해 이틀 연속 일을 나가지 못했다. 비 내리는 풍경을 보며 지난 반년 동안 뭘 했는지, 다가올 반년 동안 뭘 할 건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시행착오의 세월이었다. 그렇다고 뭐 고상한 반성이나 그럴듯한 계획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반추의 시간을 멈추고 뒹굴거리다 무료한 시간을 견디기 위해 우산을 받쳐 들고 거리로 나선다. 천변에 비에 젖은 수국이 싱그러운 모습으로 나를 반긴다.


수국(水菊). 물에 살지도 않고 국화도 아니다. 그렇지만 명칭에 물 수(水) 자가 있는 수국은 ‘물을 품은 꽃’이기에 매우 많은 양의 물을 필요로 한다. 그렇기에 수국은 초여름의 장마철부터 피어나기 시작한다.


비에 젖은 수국의 모습은 우아하면서도 아련하다. 가까이 다가가 다닥다닥 붙어서 뭉치를 이룬 꽃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꽃 속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암술과 수술이 보이지 않아 마치 조화(造花)처럼 보인다. 냄새를 맡아보아도 향기가 거의 없다. 수국의 꽃은 암술과 수술이 퇴화해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성화(無性花)이다. 헛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꽃잎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은 꽃받침이다. 야생에서 유성화(有性花)였지만 정원식물로 개량하면서 대부분 무성화가 되었다 한다.


수국은 꽃 색깔도 변한다. 처음엔 녹색이 약간 들어간 노란색 또는 흰색으로 피어난 꽃이 청색으로 변하고 붉은 기운이 도는 자색으로 변한다. 이러한 색의 변화는 토양의 성분 때문이다. 땅이 강한 산성일 때는 청색을 띠고, 알칼리 성분이 강하면 붉은색을 띠다가 나중에 자색으로 바뀐다. 이것은 흙과 꽃 속의 안토시아닌의 결합해서 생기는 현상으로 이 성질을 이용하여 토양에 첨가제를 넣어 꽃의 색깔도 바꿀 수 있다. 하지만 흰 수국은 꽃에 안토시아닌 성분이 없어서 색깔이 변하지 않고 항상 흰색을 유지한다. 그래서 제주도에서는 수국을 ‘도깨비 꽃’이라 부른다고 한다. 수국은 꽃의 색이 다양하고 예측하기 어려운데, 마치 이것이 변덕스러운 도깨비의 마음을 닮았다는 데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


그래서 수국의 꽃말이 ‘변덕’, ‘변심’과 같은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 수국이 선물로 인기가 많다. 사랑은 작은 갈등, 많은 변심 끝에 이루어내는 싱그런 아름다움이 아닐까? 그래서 수국은 ‘진실된 마음’이라는 꽃말도 가지고 있다.


나이가 들어 삶의 굴곡을 몇 번 겪고 나서야 깨달았다. 변한다는 건 약함이 아니라 어쩌면 살아 있다는 증거라는 것을. 수국은 스스로 빛깔을 바꾸며 토양에 적응하고 그렇게 또 다른 아름다움을 피워낸다. 사람도 그러했으면 좋겠다. 변하는 마음 때문에 상처받고 아파하기보다 그 변덕마저 품을 수 있다면 인생은 조금 더 너그러워질지도 모른다.


수국은 말하고 있다.

한결같지 않아도 괜찮다고. 변하는 마음도 결국 삶의 일부라고.


비 오는 날, 수국을 그저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평안해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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