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 핀들 꽃이 아니랴

by 마정열

아침에 출근하여 일을 시작하고 첫 휴식 시간이면 어김없이 “오늘은 뭐 먹지?” 하는 말이 누군가의 입에서 튀어나온다. 점심 식사는 그만큼 우리의 주된 관심사다.


열 명의 동료 중 두 명은 알뜰하게 도시락을 준비해 오는 파였고, 나머지는 음식점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일을 하는 까닭에 점심을 먹는 음식점이 한 군데로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주 가는 음식점이 있었다. 산업단지 가운데 있는 간판도 없는 음식점으로 주변의 공장 근로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뷔페식 식당이었다.

우리가 그곳을 자주 이용하는 까닭은 저렴한 가격 때문이었다. 일반 식당의 반값 정도의 식대만 지불하면 되었기에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을 해도 우리는 차를 타고 그곳으로 가서 점심을 해결하곤 했다.


그 식당에 ‘안젤라’라는 필리핀 여성이 있었다. 식당의 여주인이 그녀를 부를 때 “안젤라”라고 하는 것을 들어 그녀의 이름이 ‘안젤라’인 줄 알았고, 그것이 그녀의 본명인지는 가명인지 그것은 모르겠다.

키는 작고, 피부는 조금 까무잡잡하여 한눈에도 외국인임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한국어 구사는 억양이 조금 어색할 뿐 제법 유창하였다. 우리의 실없는 농담에 옅은 미소까지 흘릴 정도였다.

“몇 년 됐어요?”

“한국에 온 지 오 년 됐어요.”

“왜 왔어요?”

이런 뻔하고도 조금은 실례가 되는 질문에도 그녀는 웃으며,

“한국이 좋아서 왔어요.”

하고 웃으며 답했다. 서글서글한 웃음이 예쁜 여인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안젤라가 보이지 않았다. 몇 차례의 방문에도 안젤라가 보이지 않자 궁금한 것은 못 참는 장 씨가 식사를 다한 식판을 반납하며 물었다.

“안젤라 어디 갔어요?”

“게들이야 그렇죠 뭐. 돈 조금 더 주는 곳이면 어디든 가는 애들이잖아요.”

개수대에서 반납된 식판을 씻던 여인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런 게 아니야. 모르면 가만히 있어요.”

반찬을 손질하고 있던 여주인이 여인의 말을 가로막고 나섰다. 여주인은 속사정을 조금 아는 모양이었다. 손님이 몰려드는 바람에 그날의 대화는 거기서 끝이었다.


몇 차례의 식당 방문 후, 그날의 오전 일과는 조금 늦게 끝났다. 식당을 찾았을 때는 피크 타임이 지나 식당은 한산하였다. 이 틈을 놓칠 리가 없는 장씨다.

식사를 하던 장씨가 별 할 일이 없는지 주방을 나와 홀 안에 앉아 있는 여주인에게 물었다.

“안젤라 어디 갔어요?”

“아휴 별 일이야. 안젤라한테 왜 그렇게 관심이 많아요?”

“보이던 사람이 안 보이니 궁금하잖아요. 어떻게 됐어요?”

여주인은 천천히 일어나 우리의 옆 테이블로 와서 앉았다.

“나도 자세한 건 모르는데 남편 때문인가 봐요.”

“남편이 왜요?”

“글쎄 손찌검을 하는 모양이더라구요. 자세한 이야기는 안 하는데 아이를 데리고 아는 언니네 집에 잠시 가 있겠다고 하네요. 얼마나 못났으면 여자한테 손을 대.”

여주인의 톤이 높아졌다. 말을 하다 보니 열이 받는 모양이었다.

“남편은 뭐 하는 사람인데요?”

“낸들 아나요.”

여주인이 일어나 주방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국제결혼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떠들며 식사를 마쳤다.


오후 작업은 공원이었다. 공원의 화원에는 잘 가꾸어진 꽃들이 피어 있었다. 그러나 꽃은 화원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공원 바닥에 깔아놓은 콘크리트 보도블럭 사이 작은 틈새에도 꽃은 피어 있었다. 그리고 공원과 차도의 경계인 철망을 두르고 있는 나팔꽃은 공원을 더욱 아름답게 꾸며주고 있었다.


화단을 벗어난 꽃은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될 것처럼 보였지만, 그곳에 있어 더욱 눈부셨다.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연약해 보였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강인한 생명이었다. 낯선 나라에 뿌리내린 이주여성들은 어쩌면 화단 밖의 꽃, 우리 사회의 경계선 어딘가에 조용히 피어 있는 꽃들이다. 울타리 밖이라고 해서 가치 없는 것이 아니며, 틈새에서 피었다고 해서 덜 아름다운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런 자리에서 피어난 꽃은, 인간의 삶이 얼마나 강하고도 고운지를 알려주는 증거였다.

이주민, 경계에 핀 꽃. 그래서 더욱 아름답고 강인한 꽃.


어디에 핀 들 꽃이 아니랴(문부식, 꽃들1).

문득 문부식의 시가 생각났다.


외딴 곳에 홀로 피었다고 소중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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