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은 사라지고 세상이 초록 일색으로 변할 무렵 아파트 담장에서 능소화가 수줍게 꽃봉오리를 터뜨린다.
능소화(凌霄花)의 한자를 보면 '능(凌)'은 업신여기다, 능가하다의 뜻이고, '소(霄)'는 하늘을 뜻한다. 해석이 만만치 않다.
하늘을 능가하다, 하늘을 업신여기다, 하늘 높이 솟아오르다.
덩굴이 10여m 이상 감고 올라가 하늘을 온통 덮은 것처럼 핀다고 이 같은 이름이 생긴 것 같다. 중국 명대의 의약학자이자 <본초강목(本草綱目)>의 저자인 이시진은 나무를 감고 올라가는 능소화가 사람 키의 몇 배가 될 정도로 자라기 때문에 능소(凌霄)라고 명명했다고 설명한다.
능소화 꽃은 주둥이가 깔때기 모양으로 뜨거운 햇살 아래 피어나 눈부시다. 능소화는 한 번에 일시에 피는 게 아니고 피고 지기를 반복하여 여러 여름날 꽃을 피운다. 한창 꽃 필 때는 덩굴에 큼지막한 꽃이 수백 송이나 달려 그 기세가 하늘에 닿을 듯하다. 꽃잎은 동백꽃처럼 통꽃으로 툭 하고 떨어진다. 능소화는 송이째 통꽃으로 지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까지 지조와 기품을 잃지 않는 꽃이라며 양반가의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능소화에 얽힌 전설이 있다.
궁녀가 있었다. 궁녀는 임금에게 승은을 입어 빈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어이 된 일인지 임금은 그 이후 궁녀의 처소에 다시 찾아오질 않았다. 빈의 자리에 오른 이들이 여럿 있었기에 서로의 시샘 속에서 밀리고 밀려 궁궐의 가장 깊은 곳에 기거하게 되었는데 그런 줄도 모르고 마냥 임금이 다시 찾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궁녀는 임금이 자기 처소에 가까이 왔는데 자신이 몰라 돌아가진 않았을까 싶어 늘 담장을 서성이며 기다리고, 발자국 소리라도 들릴까, 그림자라도 비치지 않을까, 담장 너머로 하염없이 기다림의 세월로 보냈다.
어느 여름날 기다림에 지친 궁녀는 “내 죽거든 담장 가에 날 묻어, 혹 내일이라도 오실지 모르는 임금님을 기다리게 해다오.” 하는 유언을 남긴 채 생을 마쳤다.
궁녀는 유언대로 담장 가에 묻혔다.
다음 해가 되자 궁녀가 기거하던 처소의 담장에는 분홍빛 꽃이 넝쿨을 따라 주렁주렁 흐드러지게 피어났다. 조금이라도 더 멀리 밖을 보려고 높다랗게, 발자국 소리를 들으려 꽃잎을 더 넓게 벌린 꽃이 피어났으니, 능소화였다.
전설만 보면 가련한 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지 않는 님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능소화가 불쌍했다. 그러나 능소화는 가련하고 연약한 꽃이 아니다.
세상을 녹일 듯한 폭염에도 ‘더위 따위가 무슨 대수인가!’하고 말 그대로 하늘을 업신여기듯 꽃을 피웠다. 비가 며칠이나 계속되었다. 장마였다. 능소화는 장맛비 속에서도 피어 있었다. 태풍이 몰아쳤다. 폭우로 하천은 범람했고, 강풍으로 아파트 유리창이 깨지고 상가 간판이 날아갔다. 능소화는 굳건히 버티며 꽃을 피워냈다.
능소화는 연약한 꽃이 아니다. 어떠한 고난도 두려워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는 꽃이다.
아무래도 전설을 바꿔야겠다.
궁녀가 있었다. 궁녀는 임금에게 승은을 입어 빈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어이된 일인지 임금은 그 이후 궁녀의 처소에 다시 찾아오질 않았다. 임금의 사랑을 잃을 것을 두려워한 중전이 궁녀를 궁궐의 가장 깊은 곳에 기거하게 하였는데 그런 줄도 모르고 마냥 임금이 다시 찾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궁녀는 오랫동안 자신의 처소를 찾지 않자 임금을 직접 찾아가 묻고자 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게 된 중전이 궁녀를 처소에 가두고 위리안치(圍籬安置)를 시켰다. 궁녀는 억울한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하고자 매일 담장에 올라 임금이 있는 곳을 향하여 소리쳤다.
중전은 궁녀를 그냥 둘 수가 없어 밤에 몰래 자객을 보내어 궁녀를 죽었다. 다음 해가 되자 궁녀가 기거하던 처소의 담장에는 분홍빛 꽃이 넝쿨을 따라 주렁주렁 흐드러지게 피어났다. 하늘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히 제 목소리를 내던 능소화였다.
여름이 왔다. 능소화의 시간이다.
나는 피어날 것이다. 어떤 고난도 두렵지 않다. 내 길만을 갈 뿐이다.
땡볕과 폭우 속에서 능소화는 이렇게 외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