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치기, 생명 다듬기

by 마정열

가로수 가지치기 작업이 벌써 2주째다. 장톱을 든 조가 가지를 치면서 전진한다. 무성한 느티나무의 잔가지를 자르고 죽은 가지를 솎아낸다. 나를 포함한 정리조는 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주워 마대에 담는다. 망종을 넘긴 날씨에 땀이 등허리를 흥건히 적신다.

무성했던 나뭇가지가 핼쑥해진 느낌이 든다. 조금 심하게 가지치기한 것 같기도 하다. 보기가 약간 안쓰럽다. 나무가 불쌍해 뵌다. 아무래도 나는 좋은 조경사는 못 될 모양이다.

“너무 많이 자른 거 아니에요?”

장톱을 들고 열심히 가지를 자르고 있는 양 씨 곁으로 가서 슬그머니 한마디를 던졌다. 양 씨는 나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가지 자르기에 집중하며 대수롭지 않게 대꾸한다.

“잘라야 잘 자랍니다.”

나는 맥없이 물러나 하던 일을 계속했다.


쉬는 시간, 양 씨가 내 곁에 와 앉았다. 조금 전 내 물음에 답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린 모양이다. 물론 나는 그렇게 느낀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대답이 성의 없었다고 생각한 듯하다. 그는 조금 전 나의 물음에 구체적으로 답을 했다.

“나도 처음에 그랬어요. 왜 저렇게 자르는 거지? 이해가 잘 안 되었어요. 조금 지나니 알겠더라고요. 겉보기에 멀쩡한 가지들이 잘려 나가는 것이 참 잔인해 보일 수 있어요. 그런데 잘라 줘야 돼요. 그래야 싱싱한 가지에 집중이 돼서 더 잘 자라요. 그리고 나무가 가벼워야 여름의 폭풍우에도 쓰러지지 않고 잘 견뎌요.”


잔가지를 덜어낸 나무를 보았다. 다시 보니 날씬해진 것이 한층 깔끔해 보인다. 몇 해 전 집을 줄여 이사했던 일이 생각났다.

이사하기 전 많은 물건을 버렸다. 그러고도 이사를 해서도 물건을 둘 데가 없어 또 많이 버렸다. 전의 집에서는 빈 공간을 어떻게 채울까를 고민했는데 이사한 후에는 무엇을 덜어낼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버릴 때 많은 고민을 했다. 망설임도 많았다. 그리고 용기가 필요했다. 물건을 버릴 때는 아까웠는데 막상 살아보니 그 물건들이 생활에 그다지 소용이 없었고 물건이 없다고 불편하지도 않았다. 지금 생각하니 집을 줄이는 일이 인생의 가지치기였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인생의 가지치기는 물질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욕망을 버리는 일, 부질없는 자존심을 내려놓는 일, 인간관계에 집착하지 않는 일. 이것들이 물질을 버리는 것보다 더 중요함을 알았다. 가지치기는 과거의 나로부터 벗어나는 일이었다. 나를 짓누르는 무게에서 조금 가벼워질 때 나는 아프지만 조금씩 회복되었다.


가지를 치기 위해서는 어떤 가지가 죽은 나뭇가지이고 어떤 나뭇가지가 성장에 방해되는 나뭇가지인지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가지치기는 단순히 무언가를 버리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돌아보는 일이다.

지금 내 삶에서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덜어내야 하는지 나를 돌아봐야 한다. 덜어낸다는 건 고통을 수반한다. 손에 익은 관계를 내려놓는 일, 나를 지탱한다고 믿었던 무엇을 손에서 놓는 일. 그것은 마음의 살점을 도려내는 일과 다르지 않다. 그러기에 덜어냄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잠시 동안의 휴식을 끝내고 다시 작업이 시작되었다. 양 씨는 매의 눈으로 나무를 세심히 관찰하더니 덜어낼 가지를 선택하고 톱질을 시작한다.


가지치기는 생명을 다듬는 예술이다. 한 번의 손질이 나무를 더 푸르게 하듯, 인생의 가지치기는 우리를 더 깊고 풍요롭게 만들 것이다.


삶에서 어떤 가지를 정리할 것인가?

나는 오늘도 그 떨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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