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나를 찾는 떨림이 가슴으로 전해 왔다. 휴대폰의 창에는 옛 동료로부터 온 문자가 아로새겨져 있었다.
....이제 이 세상에서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먹여주는 대로 받아먹고 피둥피둥 살을 찌워 때깔이라도 보기 좋게 만들어 조상신을 뵐 준비를 하는 거네. 삐쩍 마르고 꾀죄죄한 몰골로 뵐 수는 없으니까.....
읽는 동안 가슴이 먹먹해진다. 서늘하고 아픈 문장이었다. 그는 메마른 음성으로 말하고 있었으나, 나의 귀에는 축축한 공명이 되어 울렸다. 그는 모든 것을 털고 떠날 준비를 하는 듯했다.
세월이 쌓이는 만큼 한 사람, 두 사람, 많은 사람을 떠나보내 이별에 익숙해질 법도 하건마는 생을 달리하는 이별에는 영 익숙해지지 않고 늘 마음이 아프다.
그는 지금 요양병원에 있다. 파킨슨병으로 몇 해째 투병 중이다. 선한 웃음이 떠오른다. 늦은 나이에 길지 않은 인연을 맺었지만 고마운 사람이다.
나이 쉰 살에 교사 임용시험에 합격했다. 무척 기뻤다. 학원 강사 생활과 학원 운영으로 나나 아내나 많이 지쳐 있었다. 아내가 학원을 접자고 하였다. 많은 밤을 고민한 끝에 아내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교사 임용시험을 준비했다. 운 좋게 통과했다.
2월, 전입교사 환영식 날이었다. 설렘보다는 긴장감으로 온몸의 신경이 곤두선 채로 발령받은 학교로 갔다. 전입교사에 대한 소개와 인사 시간을 가졌다. 교감 선생이 한 사람, 한 사람씩 소개하였고 선생님들은 따뜻한 박수로 환영의 예를 갖췄다.
“..... 선생님은 쉰 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교직에 뜻을 두고 임용시험을 통과하여 이번에 우리 학교에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우와!”
선생님들 사이에 짧은 환호가 터져 나왔고, 나는 자랑스럽지도 못한 나이가 부끄러워,
“모르는 게 많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간단하게 인사를 했다.
모임은 장소를 옮겨 인근 식당에서 저녁 식사 자리가 마련되었다. 숫기도 없고 남 앞에 서기를 주저하기는 지금이나 그때나 마찬가지여서 나는 전입 선생님들 사이에 끼어 말없이 음식이나 뒤적이고 있었다. 어색하고 멋쩍은 시간이었다.
누가 술병을 들고 내 앞으로 왔다.
“반갑습니다. 술 한 잔 받으세요.”
“아, 네.”
그가 따르는 술을 받고 나도 그의 잔에 술을 채웠다. 우리의 술잔은 맑은 소리를 내고 부딪혔고, 술은 목줄기에 가벼운 자극을 남기며 흘러내려갔다.
“몇 년 생이세요?”
“61년생입니다. 1월생.”
“아이고, 나도 빠른 61년생인데. 우리 친구네요. 어쨌든 반갑습니다.”
내 또래의 사람들은 만나면 나이부터 확인한다. 나이가 확인되면 관계가 결정된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참으로 희한한 ‘빠른’이라는 나이가 존재한다.
그가 나와 술을 나누자 또래의 선생님들도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는 젊은 선생들을 한 명씩 불러와 나에게 인사를 시켰다. 지금 생각하면 흔히 젊은 친구들이 이야기하는 꼰대질이었으나, 그때는 나의 어색함을 풀어주려는 그가 고마웠다.
그는 내가 학교에 적응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덩치는 나보다 한참 적은 사람이 마치 형과 같았다. 그 덕분에 낯을 가리는 성격이지만 소외되지 않고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와 나는 3년을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고 헤어졌다. 그러나 인연을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2년 후 나는 그가 있는 학교로 부임하게 되었고, 우리는 전보다 더욱 돈독한 친구, 그리고 술동무가 되었다.
어느 날, 술자리에서 그의 손이 가볍게 떨리는 것을 보았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가 먼저 농담처럼 말했다.
“요즘 손이 떨려, 술을 안 마셔서 그런가?”
“그러게 말이야. 술로 진정시켜야겠어.”
나도 가벼운 농담으로 말을 받았으나, 지금 생각하면 하지 말았어야 할 농담이었다.
손떨림 증상은 갈수록 심해져 몇 달 후 그는 떨리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감싸 쥐고 술잔을 받았다.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그는 휴직을 했다. 휴직하는 날 나에게 건강하게 다시 돌아오겠다고 말했으나 그 말은 지켜지지 않았고, 1년 후 그는 명예퇴직을 하였다.
퇴직 후 두어 차례 그를 만났다. 볼 때마다 야위어가는 그의 모습이 나를 슬프게 했다.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그는 혼자 외출도 힘들어 아내와 같이 다닌다고 했다.
“어떻게 지내?”
“어떻게? 매일 행복하게 지내고 있지.”
“다행이야.”
“그럼 이렇게 수행비서까지 있고. 좋아.”
그는 옆에 앉아있는 아내의 손을 잡고 웃으며 말했다.
“아쉽지 않아?”
“뭐가?”
“그냥, 모든 게.”
내가 그를 보며 느끼는 감정은..., 그래 솔직히 말하면 허무함이었다. 열심히 살아왔는데 기껏 남은 것이 혼자 버티기도 힘든 몸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살아온 세월의 덧없음에 마음이 아팠다.
“아니, 아쉽지 않아. 부모님 편히 모셔 드렸고, 자식들 무탈하게 성장했으니 이제 내 차례가 순리인데 뭐가 아쉽겠나. 그리고 교직에 있을 때도 내 일에 충실했으니 지난 세월도 아쉽지 않아. 정말이야.”
몸과는 달리 그의 목소리는 건강했다. 연민의 시선으로 그를 바라본 내가 도리어 미안했다. 헤어질 때 나는 힘을 주어 그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밝은 웃음을 그에게 보였다. 그도 흰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행복이 별거 아닌 거 같아. 아름다운 추억이 있고 지금 좋은 사람이 옆에 있으면 되는 거지.”
그날 도심의 불빛은 빛났으며, 아마 별빛도 어둠을 뚫고 우리가 발 디딘 세상을 밝히려 내려왔을 것이다.
한번 가봐야겠다. 행복에 대한 소박한 믿음을 준 그를 만나야겠다. 그리고 그에게 전할 말이 있다.
교직 생활을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게 해 주어 정말로 고마웠다고.
휴대폰의 창에서 그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