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부는 추운 날씨였다. 짧은 겨울 해는 기울어 거리는 어둑어둑했다.
빨리 집에 들어가 언 몸을 녹여야겠다는 생각에 옷깃을 세우고 종종걸음으로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마침 꼭대기 층까지 올라가 엘리베이터가 이제 내려가겠다고 화살표로 나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런데 젠장! 엘리베이터는 거의 매 층 마다 서며 더디게 더디게 내려왔다.
함께 기다리던 사람도 짜증이 조금 났는지 “꼬마 녀석들이 장난을 치나?”하고 나즉히 혼잣말을 토해냈다.
내려오다, 서다를 반복한 엘리베이터가 드디어 1층에 도착하고 열리는 엘리베이터의 문.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택배 기사가 택배 카트를 끌고 내리며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미안합니다.”하며 고개를 숙이고 바쁜 걸음으로 아파트 문으로 달려갔다.
택배 기사가 사라진 문을 보며 몇 해 전 겪었던 일을 떠올렸다.
철원에서 친구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집에 가기 위해 시외버스를 탔다. 신철원터미널에서 20:35분 발. 3002번. 신철원에서 코 앞인 운천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혹시 영화 ‘개들의 전쟁’을 보셨는가?
오래 전 영화인데 내용은 동네 양형(혹은 아치)들이 똥폼 잡느라고 벌이는 진흙탕 싸움. 저예산영화인데 나는 재미있게 봤다. 김무열도 나오고, 김대명도 나오고.
웬 영화 이야기?
‘개들의 전쟁’ 촬영지가 운천터미널이다. 1층은 대합실이고 2층은 다방인데 거기서 죽 때리는 양아치들의 넘버1 사수 전쟁. 지금은 1층에는 대합실과 편의점이 있고 2층은 비었다. 한밤중 불 꺼진 터미널 2층이 을씨년스럽다.
운천시외버스터미널은 터미널 건물을 끼고 ∩자형의 도로가 있어 도로에 차가 주차되어 있으면 시외버스가 코너를 돌지 못한다. 시외버스가 코너를 돌 때 마침 도로 한쪽에 택배차가 주차되어 있었고, 운전기사는 보이지 않았다.
시외버스 기사가 클랙슨을 울려댔다. 그래도 택배차 기사는 나오지 않았다. 버스기사가 약간 짜증이 났는지 좀전보다 조금 길게 클랙슨을 울렸다.
그때 황급히 편의점에서 머리가 희끗한 초로의 사내가 뛰어나왔다. 손에 삼각김밥과 우유를 들고서. 사내는 손을 들어 미안하다는 표시를 시외버스 기사에게 보내고 차를 몰고 자리를 떴다. 밤 9시가 가까운 시간. 저녁식사 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삶의 처절함인가, 삶의 치열함인가?
버스는 손님 몇을 태우고 또 밤길을 나셨다. 택배 기사의 흰 머리가 눈에 어렸다. 택배 기사 아저씨는 어느 어둠 속에서 주린 배를 채우고 있을까?
밖은 이미 어두워졌다.
어둠 속에서도 삶은 이어가야 한다.
좀 전의 택배 기사는 어떤 아파트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삶을 이어가고 있을까?
말로는 공존과 배려를 들먹이지만 실제로는 조금의 손해도 감수하지 않으려는 나의 이기심을 다시 한번 반성한다. 단 몇십 초를 참지 못하는 나의 옹졸함을 처절하게 반성한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치열하게 삶을 이어가는 모든 이에게 무한한 경외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