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 때 일이다.
옆자리에 앉은 동료의 표정이 어두웠다. 술이 몇 순배 돌고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도 그의 얼굴은 펴지지 않았다. 무슨 일이냐고 먼저 묻기가 어려웠다.
술을 서너 잔 기울이자 그가 긴 한숨을 토하며 말했다.
“인생이 생각처럼 쉽지 않아.”
“당연하지 않은가? 인생이 생각처럼 술술 풀리면 무슨 걱정이 있겠나.”
“그러게나 말야.”
나의 말에 동료는 술을 단숨에 비우며 말을 받았다. 나는 그의 잔에 술을 채우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가 술잔을 응시하며 말했다.
“아들놈이 구강암이라는구만.”
그의 목소리는 흔들렸다.
“젊은 놈이 무슨 변이여. 암에 걸려도 살 만큼 산 내가 걸려야지, 한창나이에 무슨...”
물기가 축축이 배인 그의 말은 끝을 맺지 못했다.
그는 자식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며칠 전에도 그는 만면에 웃음 띤 채 승진한 아들 이야기를 흘리고 다녔다. 잘 자라준 자식은 인생의 성과처럼 생각되어 남에게 드러내 보이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인지라 그것은 그럴만한 일이라 여겼다.
울먹이는 그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나는 어떤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대신 작년에 구강암 수술을 받은 누나의 얼굴이 떠올랐다.
해바라기 얼굴, <윤동주>
누나의 얼굴은
해바라기 얼굴
해가 금방 뜨자
일터에 간다.
해바라기 얼굴은
누나의 얼굴
얼굴이 숙어 들어
집으로 온다.
윤동주는 해가 뜨면 일터로 나가고 해가 다 진 저녁에 지친 몸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누나의 고단한 삶을 해바라기에 견주어 노래했다.
내가 기억하는 젊은 시절 누나의 얼굴은 윤동주의 고단함에 지쳐 고개 숙인 해바라기 얼굴과는 거리가 있는 진짜로 태양을 향해 서 있는 화사한 해바라기 얼굴이었다. 태양을 좇는 해바라기처럼 꿈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결혼 후 누나의 삶은 해진 뒤 해바라기처럼 고단한 날의 연속이었다. 사랑 하나 믿고 결혼한 누나는 거듭된 매형의 사업 실패로 인해 서울 홍제동 셋방에서 나주 남평으로, 다시 응암동 옥탑방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며 그야말로 신산(辛酸)스런 삶을 이어갔다.
시련은 파도처럼 밀려왔다. 매형은 암으로 세상을 먼저 등졌고, 남은 자식은 누나의 몫으로 남겨졌다. 매형이 없는 세상에서도 누나의 삶은 이어져야 했다. 누나는 예순다섯 살까지 호텔 청소원으로 일했다.
그러다가 유방암 진단을 받았고, 수술 그리고 방사선 치료를 끝내고 평온을 되찾을 즈음, 다시 구강암 진단을 받았다.
하늘을 많이 원망했다. 운명을 탓하기도 했다.
속마음은 어떠했을지 모르지만, 누나는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한 모양이었다. 수술대에 오르고 이후의 항암 치료도 씩씩하게 받았다.
수술 후 누나의 얼굴은 조금 변했다. 수술의 흔적으로 볼이 움푹 파였다. 음식을 먹을 때면 입가로 음식물을 흘렸다.
이제 누나의 얼굴은 해를 좇는 해바라기 얼굴이 아니다. 누나의 얼굴은 눈 속에서도 꽃을 피우고 마는 ‘눈풀꽃’ 같았다.
눈풀꽃, <루이스 글릭(2020년 노벨 문학상 수상) / 류시화 옮김>
내가 어떠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아는가.
절망이 무엇인지 안다면 당신은
분명 겨울의 의미를 이해할 것이다.
나 자신이 살아남으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대지가 나를 내리눌렀기에.
내가 다시 깨어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축축한 흙 속에서 내 몸이
다시 반응하는 걸 느끼리라고는.
그토록 긴 시간이 흐른 후
가장 이른 봄의
차가운 빛 속에서
다시 자신을 여는 법을
기억해 내면서.
나는 지금 두려운가.
그렇다, 하지만
당신과 함께 다시 외친다.
‘좋아, 기쁨에 모험을 걸자.’
새로운 세상의 살을 에는 바람 속에서.
눈풀꽃, 겨울이 채 끝나기도 전 아주 이른 봄, 땅속 구근에서 피어 올라오는 작은 수선화처럼 생긴 흰 꽃이다. 설강화(雪降花)라고도 한다.
누나는 눈풀꽃과 같은 삶을 살아왔을 것이다. 절망의 순간에도 차가운 빛 하나를 발견하고 굳세게 버텼을 것이다. 어둠의 순간에도 좌절하지 않고 온몸으로 발버둥 치며 꽃을 피우려 했을 것이다. 그렇게 삶을 지속했을 것이다.
“어때?”
“좋아.”
우리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고, 누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심심해. 어디 일거리라도 있었으면 좋겠어.”
“엄마, 이제 제발 좀 쉬어.”
누나의 말에 조카는 조금 짜증 섞인 목소리로 누나를 타박한다.
어둠은 두렵다. 두려움은 극복되는 것이 아니다. 참고 견디는 것이다. 어둠을 견뎌내고 다시 세상에 나설 준비를 하는 누나가 고맙다.
“너무 걱정 말게. 요즘 의술이 좋아 예후가 좋아.”
조금의 위로도 안 되겠지만 나는 동료의 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그래야겠지.”
“그리고 말야. 기쁨에 모험을 한번 걸어봐.”
무슨 말인가 하고 동료가 취기로 조금 풀린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리고 잠시 후 그가 말했다.
“그래, 기왕 벌어진 일이니 기쁨에 배팅해야겠지.”
우리는 잔을 가볍게 부딪쳤다. 술잔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술 몇 방울을 떨어뜨렸다. 그 몇 방울이 슬픔의 눈물이 안 되기를 간절히 빌며 식도로 술을 천천히 내려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