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학교 활극

by 마정열

우리들의 작업은 오전 8시에서 8시 30분 사이에 시작된다. 그러나 작업지가 학교 근처면 작업 시간은 학생들 등교 이후로 늦춰진다. 작업이 엔진톱과 예초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돌이나 나뭇가지 따위가 많이 튀어 등교하는 학생들이 다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도로 한구석에 앉아 등교하는 학생들을 보고 있으면 교직에 몸담고 있을 때의 생각이 많이 난다.


새로운 세계로 발을 들여놓는다는 것은 언제나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한다. 지금의 내가 그렇고, 교사 생활을 시작할 때도 그러했다. 신입 교사 환영회 때의 어색함, 첫 출근, 아이들과의 첫 대면의 설렘. 모든 게 빛나는 순간이 되어 뇌리에서 반짝인다. 언제 다시 이런 반짝이는 경험을 할 수 있을까? 지나간 시절은 언제나 그립다.


이 글은 교직 생활의 경험을 토대로 허구적 인물을 설정하여 가공으로 꾸며낸 이야기이다. 그때와 지금의 교육환경은 너무 다르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였는데 어찌 교육만이 옛것을 고수하겠는가? 예전이 좋았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모순된 것은 바로 잡아가는 것이 인간사의 순리일 것이다.


그 시절을 추억하며 글을 쓰다 보니 요즘과는 동떨어진 이야기가 많았다. 존재하는 것은 변한다. 한때 그런 일도 있었겠구나, 하고 재미로 읽어주시길 바란다. 그리고 한자의 음을 이용한 언어유희가 불편하게 느껴진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기를 바란다.


1. 유체이탈 수업

수업이 시작된 지 30여 분이 지났다.

뒷좌석의 재민은 교실을 한번 훑어보았다.

칠판 앞의 선생님은 방언이 터졌다. 알 수 없는 외계어가 폭포처럼 쏟아졌다. 교탁 앞의 몇몇 아이들은 신앙 간증회에 온 열혈 신도 마냥 선생님을 우러르고 있고, 교실 중간의 아이들은 꿈과 현실 사이에서 힘겨운 줄타기를 하고 있고, 뒷줄의 아이들은 이미 시체가 되어 있었다.


아, 위대하신 선생님의 능력이여!

단 몇 마디의 말로 학생들의 기(氣)를 단박에 뽑아내어 그들을 좀비로 만들어 버리다니.


이때, 재민의 눈을 의심하게 하는 장면이 목격되었다.

창가 가장 뒷줄의 민우가 아직도 눈을 뜬 채 선생님을 응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민우의 그 자세는 수업이 끝날 때까지 흐트러짐이 없었다.


수업 끝종이 울리자마자 재민은 민우에게 달려갔다.

“민우야.”

재민의 손끝이 스치자 책상 위로 쓰러지는 민우. 마치 40여 년 신랑을 기다린 신부가 신랑의 손끝이 스치자 한 줌 재로 내려앉듯이.


점심시간 때 재민은 민우에게 물었다. 어떻게 그 자세를 유지할 수 있냐고.

민우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건 고도의 수련이 필요해. 우선 머리를 비운 상태에서 선생님을 응시하지. 그 자세를 5분 정도 지속하면 마치 매직아이 보듯이 환상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 거기서 멈추면 안 돼. 그 단계를 넘어서면 드디어 유체이탈의 경지에 이르지. 무념무상의 세계로 들어간 거야. 거기는 선생님도 없고, 나도 없는 진정한 무아(無我)의 경지지.”

민우는 진정한 도인이었다.


교실을 도인 수련장으로 만드는 아, 우리 교육의 위대한 힘이여!


신부, 서정주

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당기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고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 버렸습니다. 문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40년인가 50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 방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 재가 되어 폭삭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2. 공부한 보람

“에에 수업 중에 죄송합니다.”

교실 스피커에서 울리는 교감의 목소리가 아이들의 잠을 깨웠다. 이어지는 전달 사항.

“죄송한 줄 알면 안 하면 될 거 아냐.”

김 선생의 입에서 무의식 중에 한마디가 툭 튀어나왔다.

이 순간을 놓칠 리 없는 아이들.

“선생님, 교감선생님이랑 안 친하세요?”

이런 앙증맞은 것들. 양심껏 답할 것인가, 학교 조직의 일원으로 답할 것인가?

아이들은 김 선생의 입을 주목했다.

“친하고 안 친하고가 어디 있냐, 각자 일 하는 거지.”

아, 이 상투적인 대답.

“우리는 교감선생님 되게 싫어요. 괜히 소리만 지르고 다니구...”

아이들의 말을 받아 김 선생이 말했다.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


아이들은 뭔 말인가 눈만 때굴때굴 굴리고 있다.

순간 김 선생은 자신을 대학까지 공부시켜 준 부모님께 감사했다.


吾心卽汝心 : 내 마음이 곧 네 마음이라는 뜻으로, 천도교의 교조 최제우가 한울님과의 대화에서 인간은 근본이 같다고 하는 말.


3. 공부의 자세

6교시다. 학생들은 졸도 일보 직전이다. 앞, 뒤로 꺾이는 목이 마치 연체동물 같다.

김 선생은 책으로 교탁을 내리치며 소리쳤다.


할(喝)!

옛날에 한 젊은이가 있었다. 이 젊은이는 학문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 그는 공부를 하려고 자리에 앉으면 식음을 전폐하고 그 자세 그대로 앉아 몇 날 밤을 그대로 지새우곤 했다. 그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서안 위에 책을 펴고 책상다리로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 자세로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몰랐다. 저릿저릿하던 다리가 이제는 아무 감각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개의치 않고 손으로는 계속 글을 써 나갔다. 얼마나 글을 썼는지 이제 손마저 마비되어 단 한 글자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공부는 포기할 수 없는 일. 눈은 여전히 글을 따라가고 있었다. 몇 끼의 식사 때가 지나고 아들이 나오지 않자 그 어미는 아들이 궁금해서 그 젊은이의 공부방 문을 살며시 열었다. 아들의 자세는 미동이 없었다.

“얘야, 밥 먹고 하자.”

어미의 목소리에 아들은 대답했다.

“어머니, 저는 지금 일어날 수가 없어요. 저 좀 도와주세요.”

“그게 무슨 말이니?”

어미는 놀라 젊은이에게로 다가갔다. 그는 다리와 손이 굳어 꼼짝도 못 하고 그 자리에 굳어 있었던 것이었다.


할(喝)!

여기에서 그 유명한 한자성어가 유래됐다.


족가지마(足加指痲)!

발 족, 더할 가, 손가락 지, 마비될 마. 발에다 손가락까지 마비되었다.


이것이 공부의 자세다. 공부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공부는 자신을 학대하면서 하는 것이다. 어찌 제 몸 편하면서 공부를 하겠는가? 우리도 족가지마의 자세로 공부를 해야 한다. 제군들은 이 점을 명심하여 주길 바란다.


4. 위인

광룡 : 선생님, 족가지마(足加指痲)의 자세, 너무 감명 깊었어요. 그런데 그 사람 이름이 뭐예요?

김 선생 : (저런 순진한 것!) 이런 자세로 공부를 했으니 역사에 당연히 그 이름을 남겠지. 우리나라 위인 중에 아마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사람일 거야.

김 선생은 백묵을 들어 칠판에 큰 글씨로 한자를 썼다.


朴圭(박규)


김 선생 :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신 분이시다. 미국인들도 그를 존경하여 말끝마다 그의 이름을 되뇌이지. 박규. 박규. 우리 귀에는 뻑뀨로 간혹 들리기도 할 거다.

학생들 : (한쪽은 웃음으로 쓰러지고, 또 한쪽은 저거 또라이아냐라는 이상한 눈빛)

김 선생 : (개의치 않고 계속 말을 이어 나간다.) 그가 쓴 유명한 시 한 구절을 알려주지.

김 선생, 다시 백묵을 들어 칠판에 한자를 쓴다.


存萬漢色基(존만한색기) : 만 명의 사나이가 물질의 기초를 세우다.


김 선생 : 철학적인 시야. 너희들도 족가지마의 자세를 잊지 않고 공부한다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물이 될 수 있다. 항상 기억하자. 몸의 편안함을 추구하면 결코 공부를 할 수 없다는 것을.


5. 바람에 날려

2학년 작문, 재시험이다.

전말을 밝힌다.


1학기 중간고사가 끝났다. 김 선생은 마음이 급했다. 주말에 등산 약속이 잡혀 있기 때문에 내일까지 채점을 끝내야 했다. 주관식 서술형 채점에 손이 많이 갔다. OMR카드 뒷면에 쓴 답을 채점하여 점수를 앞면에 직접 표시를 해야 했다.

시간 외 근무까지 신청하여 답지를 채점했다.

“썩을 놈들, 공부하다 죽은 귀신이 붙었나, 왜 점수가 이 모양이야.”

투덜거리며 채점을 하다 보니 시간이 어느새 밤 9시를 넘겼다. 이제 조금만 더 하면 된다.

김 선생은 집에서 일을 마무리 지을 요량으로 OMR답지를 주섬주섬 챙겨 서류봉투에 넣었다.

김 선생은 서류봉투를 옆구리에 낀 채 잰걸음으로 주차장으로 갔다. 오랜만에 만나는 동창들과 가는 등산에 마음이 벌써 설렌다.

차키를 찾기 위해 서류봉투를 차 지붕에 잠깐 올려놓고 이 주머니, 저 주머니를 뒤적여 찾아낸 차키로 시동을 걸었다. 경쾌한 시동음이 들린다.

차창을 내려 시원한 5월의 밤공기를 들여 마셨다. 액셀을 밟자 차는 가속을 내며 밤거리를 질주했다.

그 시간 차 지붕 위의 답지는 바람에 날려 밤하늘을 자유비행하고 있었다.

집에 도착해서 김 선생은 답지의 행방을 찾다 기절초풍. 넋이 나간 표정으로 밤하늘의 별을 헤아리다 잠도 못 자고....


다음 날 교감에게 신나게 깨지고, 시험 출제 하느라고 토요일, 일요일 온종일 낑낑거리고...

등산은 개뿔.

자신의 건망증을 한없이 원망하며...


6. 눈물의 리포트

김 선생의 반에는 자폐성 장애를 가진 친구가 있다. 어느 날 그 학생의 걸상 뒷면에 이렇게 쓰여 있는 것을 보았다.


‘세금 축내는 인간’


김 선생은 즉시 글을 쓴 인간이 누군지 탐문에 들어갔다. 쉬는 시간에 반 아이들을 호출해 글을 쓴 주인공을 물어보았다. 탐문은 의외로 쉽게 끝났다. 한결같이 ‘박동민’을 지목했다.

동민이가 교무실로 호출되었다. 사소한 폭력, 몽둥이로 엉덩이 몇 대 퍽, 퍽, 퍽. 김 선생의 훈계는 항상 사소한 폭력으로 시작된다.

이어지는 주옥같은 훈화의 말씀.

장애인도 우리와 같이 살아가야 하는 소중한 이웃이다. 사회적 약자를 멸시하는 행위는 개쓰레기들이나 하는 짓이다.

동민이는 눈만 껌벅거린다. 씨알도 안 먹히는 눈치다.

교과선생님의 양해를 얻어 동민을 수업에서 뺀 다음 컴퓨터실로 데려갔다.

1시간의 여유를 주고 과제를 내주었다.


‘우리나라 장애인 관련 예산과 OECD국가 장애인 예산을 비교하라’


만약 시간 내에 제출을 못하면 다시 사소한 폭력이 이어진다는 협박과 함께.

공부하고는 담을 쌓았지만 게임전문가인 동민은 의기양양하게 인터넷에 접속했다. 김 선생은 멀찍이 떨어져 앉아 교재연구를 하였다. 간혹 곁눈으로 동민을 살펴보니 표정이 꽤나 진지하다.

수업 끝종이 울렸다. 동민은 여전히 쩔쩔매고 있다.

“다했냐?”

“죄송합니다, 선생님.”

“뭐가 죄송해, 했어 못했어?”

“못 했습니다.”

다시 사소한 폭력, 퍽, 퍽, 퍽.

“내일 조회 시간 때까지 해와.”

“네”

풀 죽은 목소리.

다음 날 조회시간.

“동민이 숙제!”

“......”

“박동민 교무실로 가 있어.”

교실문을 나서는 동민이의 뒷모습이 애잔하다.

그날 동민은 하루 종일 수업에 못 들어갔다. 대신 컴퓨터실에서 주옥같은 리포트를 만들어 냈다.


‘우리나라의 장애인 예산과 OECD 장애인 예산의 비교’


종례 시간 때 동민은 눈물의 리포트를 제출했다.


7. 사육장 탈출사건

우리는 대한민국의 고3이다. 학교는 거대한 사육장이고, 우리는 교사라고 불리는 조련사에 의해 감시받고 사육당하는 우리 속의 동물이다.


지금은 방학이다. 그러나 고3은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사육장에 갇혀 더욱 혹독한 조련을 받고 있다. 수능이라는 계급 시험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상에 대한민국이라는 희한한 나라가 있다. 이 나라는 철저한 계급사회이다. 이 나라의 계급은 어느 대학 출신인가에 의해 결정된다. 가령 이런 식이다.


S대 : 성스러운 뼈다귀

Y대, K대 : 진짜 뼈다귀

서울 소재 대학 : 6두품

지방대 : 평민

고졸 : 천민


대학에서 어떻게 공부했느냐는 전혀 관계없다. 오직 어느 대학 출신인가만이 중요하다. 그러니 신분이 결정되는 수능 시험의 압박이 어떠하리라는 것은 짐작이 갈 것이다.


수능 백일 전.

우리는 사육장 탈출 계획을 세웠다. 각반 대표들이 은밀히 모여 계획을 세웠다. 탈출 시점은 저녁식사 후 야간자율학습 1교시로 정해졌다. 거사의 성공 여부는 조련사인 감독 선생님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어떻게 돌리느냐는 데에 있다. 반의 학생들 중에 붙임성이 좋은 아이들이 희생양이 되어 선생님께 질문을 하던지 상담을 하는 것으로 했다.


밖에는 어둠이 내렸다. 김 선생은 영신의 성적 고민 넋두리를 심각하게 듣고 있었다. 성적과는 상관없는 아이이겠거니 생각했는데 꽤 진지하다. 학생 파악이 너무 부족했다는 자괴감까지 들 정도였다.

“와아아~~~”

갑자기 학교 전체를 뒤흔드는 고함 소리가 들렸다. 교무실에 있는 선생님들이 놀라서 창가로 뛰어갔다.

어두워진 운동장에는 한 무리의 아이들이 교문을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소리를 지르고, 가방을 흔들며 자유인임을 온몸으로 증명하듯 뛰고 있었다.

“아니 저것들이 미쳤나!”

연구부장이 눈이 휘둥그레진 채 교무실 밖으로 뛰어 나갔다.

김 선생은 입가에 미소를 흘리며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내일 비록 잡혀 들어올지라도 이 시간은 너희들의 시간이다. 탈출을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