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눈깨비, <기형도>
때마침 진눈깨비 흩날린다
코트 주머니 속에서는 딱딱한 손이 들어 있다
저 눈발은 내가 모르는 거리를 저벅거리며
여태껏 내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사내들과 건물들 사이를 헤맬 것이다
눈길 위로 사각의 서류 봉투가 떨어진다, 허리를 나는 굽히다 말고
생각한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참 많은 각오를 했었다
내린다 진눈깨비, 놀랄 것 없다, 변덕이 심한 다리여
이런 귀가길은 어떤 소설에선가 읽은 적이 있다
구두 밑창으로 여러 번 불러낸 추억들이 밟히고
어두운 골목길엔 불켜진 빈 트럭이 정거해 있다
취한 사내들이 쓰러진다, 생각난다 진눈깨비 뿌리던 날
하루종일 버스를 탔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낡고 흰 담벼락 근처에 모여 사람들이 눈을 턴다
진눈깨비 쏟아진다, 갑자기 눈물이 흐른다, 나는 불행하다
이런 것은 아니었다, 나의 일생 몫의 경험을 다했다, 진눈깨비
눈이 내리고 있었다. 싸락눈이었다. 눈은 지상에 닿자마자 사람들의 발길에 차여 사라졌다. 눈이 녹은 거리는 사람들의 발자국으로 어지러웠다.
나는 우산을 접고 식당 안을 돌아보았다. 식당의 한구석에서 누군가가 나를 향해 손을 들었다. 나는 그 자리로 걸어갔다.
“오랜만이야.”
“그래, 잘 지냈나?”
우리는 서로 손을 잡고 그간의 안부를 물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
조금 야윈 그의 모습에 내가 물었다.
“똑같지 뭐. 시간 나면 등산가고, 기원에도 나가고.”
그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자네는 어때?”
“나? 별거 없어. 기간제 일 끝나서 집에서 놀아.”
“좋네. 놀아도 실업급여 나올 거 아냐?”
“실업급여? 그래, 그거 좋더라.”
가벼운 웃음이 테이블 위에 잔잔히 퍼졌다.
종업원이 술을 가져다주었고 뒤이어 안주거리가 상에 차려졌다. 조촐한 빈대떡이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이제야 하네. 미안하이.”
“무슨 그런 말을 하나. 경황도 없었을 텐데.”
우리는 서로의 잔에 술을 따르며 뒷이야기를 이어갔다.
육 개월 전에 그를 만났다. 그의 아내의 장례식장에서. 그의 아내는 암 투병 끝에 지상에서의 삶을 마감했다.
나는 그 소식을 그에게서 직접 듣지 못했고 주위의 친구로부터 들었다.
그와 나는 십여 년 전에 같은 학교에서 근무했고, 그 이후 다른 학교에서 근무를 했다. 같은 학교에서 근무할 때는 나이도 비슷하고, 성향도 비슷했기에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내가 정년퇴직하기 이 년 전, 그가 명예퇴직했다는 소식을 듣고 전화 통화를 하였다.
그는 귀촌한다고 하였다.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냐고 물으니 그는 우물쭈물하다가 아내가 건강이 안 좋다고 하였다.
나는 아내의 쾌유를 빌어주며 전화를 끊었다.
빈소에서 나는 그의 손을 잡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식당에서 멀건 국을 휘휘 젓고 있던 내 앞에 그가 와 앉았다. 연락을 못 해 미안하다고 했다. 그럴 경황이 어디 있냐고 내가 말했다. 술잔을 주고받으며 우리는 묵언의 대화를 나누었다.
발인날 새벽, 나는 화장실 앞에서 눈이 시뻘건 채 화장실에서 나오는 그와 마주쳤다. 지금까지 울음을 삼키며 빈소를 지키고 있었던 그가 안쓰러웠다.
우리는 술집을 나왔다. 눈의 반쯤은 비로 변했다. 진눈깨비였다. 우리는 진눈깨비 사이를 헤치고 질척거리는 거리를 걸어 카페로 들어갔다. 그리고 따뜻한 커피잔을 양손으로 쥐고 남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때마침 카페의 스피커에서 이런 날의 분위기에 맞춘 듯 조동진의 ‘진눈깨비’가 흘러나왔다.
얼마나 오랫동안 이렇게 서 있었는지
나는 유리창에 머리 기대고
젖은 도시의 불빛 본다
얼마나 오랫동안 이렇게 서 있었는지
나는 구름처럼 낮은 소리로
이 노래 불러본다
너는 이 거리를 그토록 사랑했는데
너는 끝도 없이 그렇게 멀리 있는지
너의 서글픈 편지처럼
거리엔 종일토록 진눈깨비
오랜만에 듣는 노래였다.
그도 노래에 귀를 기울이다가 불쑥 한마디 던졌다.
“참 그런 것 같아. 나는 진눈깨비 같은 인생을 살았나 봐.”
“무슨 말이야?”
“비가 되려다가 비도 되지 못하고 그렇다고 온전한 눈으로도 남아있지 못하고...”
“자네만 그런가, 다들 그렇게 살고 있지 않겠나?”
“그런가? 그렇겠지. 제 꿈을 완벽히 이룬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그의 꿈은 법조계에 종사하는 것이었다. 예전에 그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몇 차례 시험에 실패하고 가정 형편상 더 지속할 수 없어 교사임용시험을 치르고 교직에 들어왔다. 그는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꿈을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보다 쭈빗거리고 우왕좌왕했던 순간에 대한 후회가 더 많아.”
그가 말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교직은 내가 사명감을 가지고 절실히 원한 길은 아니었다. 대학 시절 나는 무엇이 되고 싶다는 꿈보다는 그저 취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더 앞섰다. 비겁한 변명이지만 가정 형편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여러 직장을 전전했고, 그중 하나가 교직이었다.
“선택의 순간은 망설였겠지만, 선택한 삶을 충실히 살았으면 그걸로 족하지 않은가? 후회로 삶을 망가뜨려서는 안 되니 말이야."
"내가 충실히 살아왔나? 그것도 의심스러워."
"아니 이 나이에 무슨 허무주의자가 되려고 그러나. 지금까지 버티고 살아왔으면 충실히 산 게 아니겠나?"
“그래, 힘들었지. 버틴 게 용한 게야. 그러니 눈도 되지 못하고 비도 되지 못했지만 그래도 살아남으려는 발버둥 치는 진눈깨비를 애틋한 마음으로 긍정해야겠네. 질척거리는 진눈깨비가 싫고 못 낫다고 원망하면 우리의 인생이 너무 슬퍼지지 않겠나.”
“그럼 가슴 활짝 열고 저 진눈깨비를 온몸에 가득 안으며 한번 걸어가 볼까?”
“그건 자네나 하세.”
우리는 유쾌하게 웃으며 커피잔을 들었다. 웃음의 파동이 갈색의 커피 위에 새겨져 일렁거렸다.
거리에는 여전히 진눈깨비가 흩날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