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도시 생활
누군가에게는 집이 안식처이고 좋아하는 공간일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닐 수도 있다. 사실 수민의 사전 인터뷰 답변을 받고 살짝 당황스러웠다. 내가 생각하던 시나리오에서 완전히 비껴간 답변이었다. 집에 관한 인터뷰인데 집에 있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니.
그러나 수민의 집에 방문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 또한 1인 청년 가구의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한된 주거 환경에서도 부족한 부분을 채우며 하루하루를 꾸려나가는 사회 초년생의 성장 소설 같았다.
강수민
오브젝트라는 소품샵 홍대점에서 매달 새로운 전시와 스토리가 담긴 물건 판매를 돕는 일을 하는 사회 초년생.
ʻ강길동ʼ이라는 별명답게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하고 블로그에 기록하며 에디터라는 꿈을 향해 차근차근 나아가는 중.
거주지 망원동
거주기간 2년 차
구조 원룸
면적 12.7㎡
서울에서 지낸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현재 사는 집이 서울에서의 첫 번째 집이지요?
와, 벌써 2년이 다 되었네요. 시간이 진짜 빨라요. 저는 마냥 서울이 좋아서 덜컥 집부터 구한 시골 쥐에요. 제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전라남도 광양이란 곳인데 문화생활을 누린다든지 제 꿈을 펼치기에는 너무 좁은 곳이었어요. 우물 안 개구리가 되기 싫어서 항상 서울을 동경했죠. 대학 생활을 천안에서 했는데 제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서울을 왕래했어요. 원래 기숙사 생활을 하다가 휴학을 하면서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주변에서는 본가에 안 내려가는 저를 의아하게 보더라고요. 저는 이렇게라도 꼭 서울 가까이 붙어 있고 싶었어요.
서울에 왜 그렇게 오고 싶었던 거예요?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하고 싶은 게 많은 편인데 ʻ안 하고 후회하느니 해보고 후회하자ʼ는 주의여서 일단 부딪혀보고 있어요. 실패도 다 경험이 돼서 언젠간 쓸모가 있더라고요. 주로 지방에 살 때 누리지 못했던 문화생활을 하고 있어요. 쉬는 날마다 쉬지 않고 전시가 됐든, 영화가 됐든 두 눈을 크게 뜨고 그때만 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놓치지 않으려고 해요. 지나간 건 돌아오지 않잖아요. 그래서 현재 서울 생활에 무척 만족해요. 코로나가 좀 잠잠해져서 하루빨리 푸른 잔디 위에서 뮤직 페스티벌을 즐기고, 영화제도 다니고 더욱더 자유로워지고 싶어요.
서울 안에서도 어떻게 마포구에 살게 된 거예요?
천안에 있을 때도 서울을 자주 오가며 여러 동네를 다녔는데 그중에서도 제 마음을 사로잡은 게 망원동이었어요. 한창 소품샵에 빠져 있을 때라 구경거리가 많기도 했고, 대체로 건물이 낮은 것도 마음에 들었어요. 저마다 조용하고 자기만의 고유한 느낌이 깃든 카페들도요. 그래서 친구들과 망원동을 갈 때면 어느새 제가 대장이 되어있더라고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집을 구할 때도 1순위가 망원·합정 쪽이었어요. 여기가 주소는 합정동이지만 오른쪽으로는 합정역이, 왼쪽으로는 망원동이 ʻ3분 컷ʼ입니다. 오른쪽으로 가면 영화관, 홈플러스 등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고요, 왼쪽으로 가면 제가 좋아하는 카페와 소품샵들이 저마다 개성을 가지고 즐비해 있죠. 저에게 더할 나위 없는 곳 같아요. 부지런히 걸어가면 한강도 나와서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저에게는 최적의 위치이죠.
정말 부지런히 다니시는 것 같아요. 본인에게 큰 영감을 주었거나 의미 있었던 경험이 있나요?
가장 좋았던 활동은 '크리에이터 클럽'이었어요. 나이와 직업을 밝히지 않고 선입견 없이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소셜 살롱이에요. 웨딩 플래너, 비서, 유튜브 PD, 가수 등 정말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한자리에서 만나 이야기할 수 있어서 엄청 재미있었어요. 새로운 사람 사귀기를 좋아하는 저에게는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고 덕분에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인연들이 많이 생겼어요.
이렇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공간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데 코로나 때문에 아주 답답하겠어요.
네, 저는 별명이 강길동일 정도로 전국 방방곡곡을 쏘다녔는데 여행 빈도가 확실히 줄어들었어요. 그렇지만 코로나 이후로 여행을 덜 다니니 자연스럽게 돈을 덜 쓸 거로 생각한다면 그건 완전히 오산이에요. ʻ코로나 때문에 해외여행도 못 가는데 내가 이것도 못 사? 이 정도 밥도 못 먹어?ʼ라고 합리화하며 더 씀씀이가 헤퍼지더라고요.
맞아요, 코로나19 속에서 억눌린 욕구와 우울감으로 보복 소비가 늘었다고 하더라고요. 수민 씨는 매일 새롭고 예쁜 소품들을 보니까 더 그럴 수 있을 것 같은데 집에 새로 산 소품이나 기기가 있어요?
가장 최근에 CD플레이어를 샀어요. 집에서 가장 애정 하는 물건이 되었지요. 근 몇 년간 비싸서 벼르던 아이인데 이번에 안 사면 영영 못 살 것 같아서 큰맘 먹고 샀어요. 덕분에 하루의 마무리와 시작이 더욱더 풍요롭고 행복해졌어요.
그동안 플레이어도 없이 CD만 모아 왔던 거예요?
CD는 아예 못 듣다가 요즘 완전 뽕빼고 있어요. 한 2년 전부터 소장용으로 조금씩 사 모으기 시작하면서 이렇게 컬렉션을 하고 싶은 로망이 있었거든요. 당장 다음 주에 또 음반샵에 가서 더 사고 싶어요.
좋아하시는 음악 한 곡 들어볼 수 있을까요?
저는 인디 음악을 가장 좋아해요. 좋아하는 팀만 스무 팀 정도 될 정도로 인디에 진심이에요!!! 가장 좋아하는 가수는 ʻ검정치마ʼ와 ʻ최유리ʼ예요. 보라색으로 된 앨범이 최유리라는 가수인데 통틀어 저 앨범을 제일 좋아요. 왜냐면은 수록곡까지 다 너무 명곡이거든요. 이 친구가 저보다 어린데 유재하 경연대회에서 1등 했어요. 괜히 울적해지고 마음을 가다듬고 싶을 땐 최유리의 '동그라미'앨범을, 자장가처럼 잔잔한 걸 원한다면 9와 숫자들의 '고고학자'를 추천해요. 그중에서도 «푸념»과 «평정심»이란 곡을 가장 좋아해요. 하루 마무리하며 듣곤 하죠.
빗소리랑 잘 어울리는 곡이네요.(이날도 인터뷰 가는 길에 어김없이 비가 내렸다)
수민 씨가 집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작년 생일 선물로 엄마께 새 이불을 선물 받았어요. GATA라는 신규 브랜드인데 감각적인 디자인과 그린·아이보리색 조합이 예쁘고, 아이들의 명랑함을 표현한 제품 스토리가 마음에 들어서 찜해두었던 이불이거든요. 친구에게 선물 받은 탬버린즈 핸드크림을 바르고 이불을 덮은 순간 황홀함을 느꼈어요. 집에 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던 제가 유난히 집을 좋아하던 때였어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지는 않을 것 같은데 수민 씨에게 집은 어떤 의미일까요?
저에게 집은 여관 같은 존재예요. 잠을 자고, 씻는 공간일 뿐 먹거나 다른 행위를 하는 시간은 극히 일부예요. 쉬는 날이면 밖으로 나돌아 다니기 바빠서 집에 붙어 있는 시간이 적거든요. 그래서인지 더 관심을 안 가지게 되고, 애정도 떨어지게 돼서 미안한 마음이 커요. 제가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이면은 더 잘 꾸미고 관리할 수 있을 텐데 마음먹는 게 잘 안 돼요. 책을 읽더라도 카페나 서점에서 읽는 게 집중이 잘 되고, 귀찮다는 핑계로 남이 해 준 음식을 찾게 되더라고요.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김혜자 배우가 ʻ새처럼 훨훨 날아서 죽더라도 길 위에서 죽을 거라ʼ는 대사를 하는데 저도 그러지 않을까 싶어요. 그만큼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인생의 9할은 되는 것 같아요. 제가 집에서 버틸 수 있는 건 딱 단 하루예요.
자유와 방랑에 대한 갈망이 되게 큰 것 같아요.
저랑 여동생이 가부장적인 아빠 밑에서 엄청 힘들게 자랐어요. 고등학생 때 제가 새끼손톱에 매니큐어 하나 발랐다가 아빠한테 혼났다니까요. 영화 «델마와 루이스» 아세요? 제가 좋아하는 영화라 직접 영화 속 장면 그림도 그렸어요. 엄청 가부장적인 남편을 둔 델마와 반복되는 일상이 지겨운 루이스가 멀리 떠나거든요. 둘이 멋있는 초록색 올드카를 타고 달리는데 그 쾌감이 장난 아니었어요. 저도 이제 성인이니 내가 하고 싶은 거 다 하며 살고 싶습니다.
ʻ컨셉진ʼ 매거진도 많이 보이네요, 오랫동안 구독하셨나 봐요?
4년 전에 망원동에 있는 ʻ어쩌다 책방ʼ에 갔었는데 수많은 책 가운데서 «당신의 삶엔 낭만이 있나요?»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어요. 당시에 저는 낭만과 현실 사이에서 많이 고민을 하고 있었을 때였고 저 자신이 꽤 낭만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기에 그 책을 구입하기로 했죠.
크기는 손바닥만 한데 한 가지 주제에 대해서 백과사전처럼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다룬 점이 대단하면서도 마음에 들었어요. 그렇게 저는 자연스럽게 잡지 에디터라는 직업이 궁금해지고 관심을 두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정기구독을 시작하고 에디터 스쿨도 신청해 수업을 듣고, 웬만한 모든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죠.
수민 씨가 에디터를 꿈꾸게 되는 데 컨셉진이 큰 역할을 했네요. 트렌드에 민감하고 호기심 많은 수민 씨에게 정말 잘 어울리는 직업일 것 같아요.
개인 인스타그램에서 제가 팔로우하는 계정 수가 저를 팔로잉하는 계정 수의 두배나 되거든요. 그만큼 관심 있는 브랜드나 분야가 많아요. 그리고 제가 초등학생 때부터 시작한 블로그를 일주일에 한 번씩 쓰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여기저기 많이 다니니까 그런 일상과 감명 깊게 본 영화가 있거나 와닿는 노래가 있으면 감상평도 남기고요. 제가 이렇게 글도 쓰고 에디터 일에 관심 있는 걸 대표님이 아시고 에디터 직을 제안해주셨어요.
정말 잘됐네요. 축하드려요.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되는 거예요?
좋은 기회로 생각보다 일찍 꿈을 이루게 돼서 신기하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해요. 곧 본사로 가서 인스타그램과 온라인 상세 페이지의 콘텐츠 기획하는 일을 하게 될 것 같아요.
진짜 딱 기대 반 걱정 반인데, 제가 관심 있는 분야의 일이다 보니 잘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해왔던 일이 아니다 보니 신입으로 일을 다시 일을 시작하는 느낌이라 걱정도 돼요. 그렇지만 제가 그동안 블로그에 글을 써 오고,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쌓은 경험들이 분명 큰 자양분이 돼서 저를 도와줄 거라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