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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유 Apr 08. 2022

직장인에서 직업인으로

나의 일에 대하여

“무슨 일 하세요?” “ “00000 다녀요.”

2년 전까지만 해도 누군가 직업을 물으면 나는 회사 업종이나 회사 이름을 대곤 했다.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이름 대면 알만한 대기업 계열사였기에 부연 설명 없이 한방에 넘어갈 수 있었다. 어쩌면 그들이 알고 싶었던 건 내가 정말 어떤 일을 하는지 보단 어느 수준의 수입과 사회적 지위를 가졌는지였을 수도. 

번민과 번아웃 끝에 퇴사를 했다. 그리고 어느 조직에 소속되지 않은 채 공백기가 길어졌다. 이전에는 별 어려움 없이 답했던 그 질문이 나에겐 가장 싫고 피하고 싶은 질문이 되었다. 생각보다 회사라는 타이틀을 빼고 나를 설명하는 건 쉽지 않았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내가 어떤 일을 했던 사람인지 구구절절 설명하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 구차해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IT 회사에서 일했어요.”  혹은 “디지털 분야에서 일했어요, 개발자는 아니고요.” 얼버무리고 넘어간다. 종종 끝까지 캐묻는 사람들도 있지만 굳이 회사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떠난 회사이고 직장인보단 직업인이 되기로 결심한 마당에 이전 직장 이름에 기대고 싶지 않은 자존심이기도 했다.

10여 년 동안 두 곳의 회사를 거치며 프로젝트 관리, 디지털 마케팅, 디지털기획, 마케팅 데이터 분석 등 다양한 업무를 했다. ‘인사’, ‘총무’, ‘디자이너’ 같은 직무 혹은 직업처럼 한 단어로 명료하게 설명하기 참 어렵다. 어차피 설명해도 잘 모른다. 

그런데 회사 이름을 빼고 나를 설명하는 것보다도 더 힘든 건 회사 울타리 밖에서 나의 일을 찾는 것이었다. 직장인으로만 10년 넘게 일했던 나는 부속품에 불과했다는 것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내 힘으로 시작해서 끝마칠 수 있는 일이 이리도 없을까, 자존감도 뚝뚝 떨어졌다. '누가 일감을 주지 않으면 내가 일을 만들어서 하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콘텐츠 제작 프로젝트에 연달아 도전했다. 정부지원사업의 도움을 받아 마포구와 동대문구의 지역 색을 담은 콘텐츠를 기획하고 인터뷰집을 만들기도 했다. 처음으로 인터뷰를 하고 글을 쓰고 종이책으로 만드는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당장 돈이 되지도 않는 일에 이렇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으며 힘들게 해야 하는 건가 현타가 오기도 했다. 그렇지만 직접 만든 결과물을 마주했을 때 가슴 벅찬 감동과 전율을 느끼며 나는 이런 작은 이야기를 전하는 일을 지속하겠구나 생각했다. 어떻게든 이어나가고 싶은 일이기에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했고 결국 다시 9 to 6 삶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비영리 기관의 콘텐츠 제작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정기간 일하게 된 것이다. 이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직장은 잠시 스쳐가는 곳일 뿐, 99% 일만 보고 내린 결정이었다. 그리고 일할 때 자꾸만 사심을 가득 담아 몰입하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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