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시선은 그 사람의 다양한 환경 속에서 직간접적 경험에서 나온다. 특히 직접 경험을 한 경우에는 더 그렇다. 그것이 세계관이고 관점이고, 프레임이고, 시선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내가 '무대 울렁증'이라는 경험을 하게 되니 나의 관심사와 시선은 '커뮤니케이션'으로 이어졌다. 의외로 나와 비슷한 불편함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과부 사정은 홀아비가 안다'라고 나와 같은 무대 울렁증이나 발표 불안증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게 되었다. 나도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고, 같은 마음을 느끼는 사람들을 돕고 싶은 마음도 컸다. 그러려면 결국은 내가 무대 울렁증을 극복하는 것뿐이었다. 해결해야 할 과제, 극복해야 할 과제, 도전해야 할 과제가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사람들은 내가 이런 고민을 심각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발표하면서 심하게 긴장하고 떨었던 충격적 경험을 했지만, 그 뒤로 내가 발표하는 것이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엄청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오히려 사람들의 인식 속에는 내가 긴장은커녕 말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그 간극의 갭이 컸다. 나는 혼자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다양한 방법으로 찾게 되었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서점으로 달려가 '발표 불안'이나 '무대 울렁증'에 대한 책을 찾아 읽는 것이었다. '말 잘하는 법', '말하기 기술', '프레젠테이션 잘하는 법' 등 다양한 말하기 방법론 책들이 실용적인 팁들을 위주로 저자의 경험담을 통해 보여주고 있었다. 책을 읽으면 방법론은 다 알겠다. 하지만, 내 불안한 심리 상태는 거기에 담겨있지 않았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들이 내 것으로 체화되려면 나온 방법들을 직접 해봐야 하고, 어떤 방법이 나에게 적합한지를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Knowing과 Doing이 다른 것처럼!
이렇다 보니, 나는 사람들의 말하는 스타일에 대해 유심히 보는 습관이 생겼다. 워낙 사람에 대한 관심,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인데, 이 즈음부터는 유달리 말 잘하는 사람이 어떻게 말을 하고 있는지, 스피치 방식에 대해 주의 깊게 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말 스타일도 찾게 되었다. 말을 잘하고 싶었지만, 분명하게 선호하는 스타일이 있다는 것을 두 번의 경험을 통해 얻었다. 평소 관심 있게 보던 예술경영문화센터의 뉴스레터에서 '커넥션 사업 참가자들이 들려주는 국제 교류, 커넥션 살롱 토크'라는 소모임을 발견하게 되었다. 노무현재단에서도 국제교류 사업도 확장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차라, 관심이 갔고, 참여까지 이어졌다. 두 분의 참가자가 사례 발표를 해주었다. 이때, 여러 가지 배운 점도 있지만, 스피치의 관점에서 두 명의 발표자에게 배운 점이 있다. 한 발표자는 일단 발표를 아주 잘했다. 다른 발표자는 발표를 하면서도 "너무 떨린다. 떨어서 죄송하다"를 말하면서 발표를 했다. 죄송할 일도 아닌데 말이다. 말을 잘하는 사람은 말을 잘한다는 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는 듯했고, 너무 빨리 말하다 보니 내용 전달이 덜 되었다. "떨린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정작 목소리나 표정은 떨리는 것 같아 보이지 않지만, 본인이 그렇게 이야기를 함으로 인해 보는 사람들이 더 긴장하게 만들고 의식하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오히려 내용적인 면에서는 천천히 하는 말에 전달력이 더 잘 되었다. 목소리도 전혀 떨리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다만 호흡을 크게 들이내 쉬는 모습이 그녀가 굉장히 긴장을 하고 있구나를 보여줄 뿐이었다. 이 날은 스피치에 대한 인사이트와 영감을 얻은 나의 첫 번째 사례였다.
두 번째는 사례는 한국의 대표적 강연 플랫폼 '세바시(SEBASI)'에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초청하여 강연을 개최했는데, 세바시의 한 강연 영상을 보고 얻은 인사이트였다. 강연 영상이 온라인으로 올라오면 정보를 얻는 부분도 도움이 되었지만, 연사들의 스피치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얻는 배움도 컸다. 어느 날 한 여성 교수분이 무대 위에서 반듯한 모습으로 서서 조용하고 차분한 음성으로 그날의 강연을 하는 모습이었다. 아마도 문화콘텐츠 관련된 부분의 교수님이셨을 것 같지만, 강연 내용도 어느 분야의 교수님 인지도 전혀 기억이 없다. 그럼에도 지금도 그분의 단아하고 품격 있는 강연은 내 마음에 울림이 컸다. 큰 제스처도 없었고, 자극적인 표현 방식도, 무대 위에서 카리스마를 보여주신 것도 아니었다. 그때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선호하는 스피치나 프레젠테이션의 스타일이 어떤 것인지.
첫 사례의 두 번째 연사와 세바시의 연사 두 분 모두 대중적 기준으로 본다면, 강연이나 프레젠테이션을 유려하게 잘하는 모습이 아닐 수도 있었다. 말을 잘한다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으로 보면 청중을 휘어잡아 가며 카리스마로 청중의 몰입도를 높여 가며 강연을 한다. 이런 분들의 강연을 들으면 많은 사람들이 연사가 강연을 잘한다고 느낀다. 그럼에도 나는 차분하지만 본인의 콘텐츠를 최선을 다해 잘 전달하고자 노력하는 모습도 전달력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나도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고 싶다는 욕구도 일었다. 책을 읽고 사례를 마주하면서 얻는 간접 경험도 좋았지만 계속 갈증이 났다. 그 방편으로 퇴근 후, 종로의 한 스피치 학원에 등록을 했다. 40여 명 규모의 강의실이 꽉 찰 정도로 사람들이 있었다. 강의가 시작되고 인사하며 여기에 오게 된 동기에 대해 한 사람씩 발표를 하게 했다. 연습하라는 의도였을 것이다. 참석한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대동소이했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 싫다.", "너무 긴장된다", "손에 땀이 난다", "머리가 하얘진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다들 "말 잘하고 싶다"는 욕구를 표현하고 있다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