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시민학교의 프로그램을 기획, 운영하면서 극복해야 할 과제가 있었다. 봉하마을에서 일할 때 무대울렁증이 나에게 심하게 왔다. 원래 내향형에 가까워 사람들 앞에 나서서 무엇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 편이지만, 무대 울렁증이라고 할 만큼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꺼려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대학교 때는 부과대표 일을 하기도 했고, 유학생회 때는 전체회장을 맡기도 하는 등 비교적 사람들 앞에 서 본 경험도 꽤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사람들 앞에 나서서 이야기를 하려면 긴장이 되고, 머리가 하얗게 변하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사람들 앞에 서서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무대 울렁증이나 발표 불안증이 있다 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나는 시민학교 팀장으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해야 할 일들이 종종 있었다.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더라도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불편하지 않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일이기도 했다.
어쩌다 내가 무대울렁증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게 되었을까? 이런저런 생각들을 많이 해보게 되었다.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 대통령 내외분을 모시면서 내 눈과 귀는 열려 있었지만, 입은 다물어야 했던 시간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나처럼 누군가를 모시는 것을 업으로 삼았던 사람들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찌 됐든 나에게 이 일이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은 분명하다. 사람들에게 내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나의 말을 넘어서 대통령 내외분의 의중이나 생각으로 와전될 우려가 크다고 생각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늘 조심스러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굳이 그렇게 까지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데 나 스스로를 '누가 되어선 안된다. 조심해야 한다'는 프레임을 갖고 나를 그 안에 가두었던 것 같다. 덕분에 얻은 것도 있지만, 늘 빛과 그림자가 존재하는 것처럼, 잃은 것도 많았다. 특히 나의 커리어와 관련된 부분은 아쉬움에 많이 남았다. 내외분을 그렇게 모신 지 9년이 되면서 나는 늘 그분들의 그림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고 일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나의 생각은 있었지만 내 생각을 표현하는 것을 억눌렀고, 전달자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점점 그분들의 일을 해주는 나의 일을 잘해갈수록 나는 나의 생각을 표현하는 일이 서툴렀다. 당시 친구들과도 가끔씩 만났는데, 친구들 사이에서도 나는 주로 듣는 입장이었다.
내가 무대울렁증이라는 것에 대해 확신하게 된 계기가 봉하마을에 있을 때 있었다. 대통령께서 서거하시고 대통령님 기념관을 조성하는 일로 미국과 유럽 등 여사님과 함께 견학을 했었다. 나는 특히 미국의 닉슨대통령 생가를 가보고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작고 조용한 마을에 닉슨대통령의 생가와 기념관, 도서관이 잘 조성되어 있었다. 봉하마을에도 이런 공간들이 만들어져 많은 분들이 대통령님을 추모하러 오시고, 노무현대통령을 연구하는 학생들이나 연구자들이 찾아오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 뒤 여사님을 모시고 우리가 참고할 만한 지도자들의 생가, 도서관, 기념관 등을 둘러보았다. 방문하고 온 내용들을 정리하여 기념관 사업을 준비하시는 참여 정부 고위직에 계셨던 분들께서 여사님을 예방하신 날 발표를 하고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 기념관 조성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한 논의를 하기로 했다. 여사님을 비롯, 고위직 인사들과 재단 관계자, 동료들이 함께 회의를 하는 자리였다. 유럽의 여러 곳을 다니고 귀국한 뒤라 함께 했던 비서관들이 나눠서 재단 관계자 분들에게 브리핑을 하고 우리가 배울 것은 무엇이고 어떻게 우리는 적용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를 했다. 앞선 발표가 끝나고, 나는 유럽의 드골 대통령 마을을 둘러보고 온 것에 대해 나누기로 했다. 사진 자료를 보고 거기서 배우고, 느끼고, 적용할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되는 것이었다. 사실 내가 다 경험한 것이었기에 그것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PPT 자료를 띄워 사진 자료를 보면서 발표를 해나가는 순간, 갑자기 내 손이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다. 목소리도 떨리고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주변에서 보시던 분들은 다들 "쟤가 왜 저래?" 하는 표정으로 보고 있는 듯했다. 그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마무리되었다.
나는 이 날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나도 나였지만, 여사님을 비롯, 주변에 계셨던 열두서너 명 남짓 참석한 사람들은 더 당황했을 것이다. 잊고 싶은 기억이고 어쩌면 자칫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다행히 인복(人福)이 나를 구해주었다. 나에게는 늘 든든한 멘토님이 계신다. 나의 전 직장 상사 분인데 언제나 나를 격려하고 지지하고 응원을 해주신다. 그분께 나의 부끄러운 순간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었다. 거의 3시간가량이나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 털어놓으면서 속상했던 그날을 마음이 위로가 되었다. 나를 격려하고 지지해 주는 긍정적 피드백 덕분에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기도 했다. 너무 힘든 상황일 때 누군가 나의 이야기를 아무런 판단과 잣대 없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단 한 명만 있더라도 얼마나 힘이 되는지 이때의 경험으로 온몸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나 역시 자칭 타칭 '대나무밭'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 누군가 힘들 때 연락을 종종 받는다. 이때 내가 나의 생각으로 그 사람의 이야기를 평가, 판단, 조언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늘 돌아보게 된다. 상대는 자기가 겪은 일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해 주기를 바랄 뿐일지 모른다. 조언은 충분히 공감받은 다음 일일 것이다. 내 경험을 돌아봐도 그렇다. 온전하게 내 이야기를 들어주셨기에 내 감정이 존중받는다 느꼈고 내가 무대울렁증을 피하지 않고 극복해야 할 도전 과제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분이 옆에 든든하게 계셔주셔서 나는 얼마나 사람 복이 많은 사람인가!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고 싶다.
그날 이후로, 나의 무대울렁증 극복 여정이 시작되었고, 누구보다 무대울렁증이나 발표불안증을 갖고 있는 사람의 마음을 잘 이해하게 되었다. 이제는 커뮤니케이션 코치로서 돕고 싶은 마음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