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삶을 살고 싶다는 열망
"저 그만두겠습니다."
황금 같은 긴 추석 연휴가 끝나자마자 시민학교장과 사무총장님께 면담 신청을 하고 사직 '통보'를 했다. 공식 추석 연휴와 주말, 연차 휴가를 합해 9일간의 긴 휴가를 확보했다. 점점 오랫동안 마음속에서 고민하고 있던 '내 일'에 대한 결정이 임박해 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 기회로 삼기에 좋은 시간이었다. 휴가에 들어가기 전 친구와의 대화에서 추석 연휴의 끝에도 재단을 그만둘 생각이 있다면 정말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추석 명절을 지나고, 휴가에는 사람들도 만나고, 일요일에는 후원회원 동호회인 '산따라'에서 주최하는 등산 모임도 다녀오며 다양한 활동을 했다. 그럴수록 내 의사는 명확해졌다. 오히려 휴가가 빨리 끝났으면 하는 조급함도 올라왔다. 출근하자마자, 두 분의 상사에게 면담을 요청하고 사직 의사를 말씀드렸다. 다음 커리어를 결정해 놓고 그만두겠다고 하는 것도 아니었다. 막상 마음이 정리되니 일단 그만두어야겠다는 욕구만 강하게 올라왔다. 두 분은 나의 고민을 오래 옆에서 지켜보셨던 분들이라 내가 충동적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 온전하게 내 의사를 이해하고 수용해 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든든했다.
사직 절차와 그동안 해왔던 업무에 대한 인수인계 작업을 마무리하고 2014년 10월 31일 자로 공식 퇴사를 했다. 1997년 11월 3일 새정치국민회의 대변인실에서 참여관찰을 위해 자원봉사로 정치권에 입문해서 17년간의 여정, 특히 노무현대통령 내외분을 위해 일했던 12년의 여정도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출발을 하는 날이었다. 17년간 정치, 행정 분야에서 일할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들은 엄청난 자원으로 남았다. 엄청난 역사적인 순간순간들의 핵심에 있으면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하며 배웠다. 어떤 분야나 비슷하겠지만, '정치'라는 것이 본인이 직접 정치를 하는 사람이 있고, 참모로서 다양한 보좌 역할을 하는 사람들로 크게 나뉠 수 있다. 정치권에 들어와 초창기에 대변인실의 부장으로 있으면서 모 부국장님께서 해주셨던 말씀이다. 직접 정치를 하는 사람이 있고, 참모 역할로 정치에 참여하는 사람이 있다.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는 본인의 선택이라고. 나는 나 스스로 보좌역할을 선택했고, 17년간 열과 성을 다해서 최선을 다했다. 노무현대통령 내외분의 성정에 일하면서도 늘 즐겁게 편안하게 일할 수 있었음에 정말 감사하다. 윗사람을 모시는 역할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느끼겠지만, 모시는 대상이 어떤 성품의 사람인가에 대해 일을 하면서 중요한데, 내가 모셨던 분들은 함께 하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배려해 주시고 존중해 주셨던 분들이었다. 이것만큼 큰 복은 없다고 생각한다.
노무현대통령께서 서거하시고, 봉하마을에서 여사님을 모시며 '아름다운 봉하재단'을 설립, 보좌 업무를 하다, 서울의 '사람 사는 세상 노무현재단'에서 시민학교 업무와 회원네트워크 사업을 헸다. 이 시기가 나에 대해 탐구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내외분을 직접 모시는 9년간의 시간을 마무리하고 서울 재단으로 올라왔을 때 여러 감정들 중에서 '공허함'이 느껴졌었다. 그동안 '박은하'라는 존재보다 '노무현'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열심히 일했는데 내가 일했던 모든 것들은 다 내외분을 위한 일들이었다. 그것이 내 일인 것은 분명했지만 온전한 내 일에 대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온전한 내 일'이라는 것이 나에게 중요했던 것 같다. 모든 것이 내 일임에도 어떤 일은 내 일이 아니고, 어떤 일은 타인의 일을 대신해 준다는 의미를 갖고 있었을까. 이런 생각들이 왜 나에게는 중요한 부분일까. 코칭을 접하고, 질문에 대한 답을 자꾸 하다 보면서 이제는 알게 되었다. '온전한 내 일'이라는 것에 대한 구분을 굳이 짓지 않아도 모든 것이 다 내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노무현재단에서 정말 다양한 일들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가치와 철학을 후세에게 전파하는 '노무현 시민학교'를 필두로 노무현 장학생을 키워내는 일도, 청소년 캠프를 만들어 청년 리더를 키워내는 일도, 소중한 후원회원들을 위한 회원네트워크 사업, 해외에 계신 글로벌 네트워크 사업, 매년 있는 추모제 등등 많이 않은 인원들이 열심히 일했다. 후원회원들의 자발적 참여로 그 부족한 부분들을 늘 함께 메꿔주셨다. 때론 지근거리에서 모셨던 나 보다도 더 노무현대통령님을 사랑하시고, 그분의 가치와 철학을 더 이해하고 계신 분들을 뵈며 참으로 감사하게 느꼈다. 늘 옆에서 모셨던 우리에게 미안해하시고 고마워하셨던 분들이셨다.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노무현재단에서 일하는 것이 처음에는 신나고 재미있는 일이었다. 17년간의 여정을 봐도 나는 늘 새롭게 시작하는 일을 하는 것은 좋아하고 잘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일들이 손에 익고 잘 돌아가는 것이 보이면 흥미가 떨어졌다. 그런 성향 탓이었을까? 재밌던 일들은 어느 순간부터는 루틴이 되어가고 있었다. 일이 일상이 되고 재미보다는 해야 하는 의무와 책임감이 강해질수록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그동안은 일 자체가 재미있었고, 사람들도 좋았고, 일도 잘 해내고 있다 생각했다. 최선을 다했다.
그러던 내가 회사를 갑작스럽게 그만두게 된 계기가 있었다. 어느 날 불현듯 머릿속을 번개처럼 스치는 경험이었다. 코칭을 배우며, 그날의 계기가 나에게 굉장히 중요한 의미 있는 날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 재단은 광흥창역 근처에 위치해 있었는데, 재단에서 동갑내기 친한 친구와 여의도에서 점심을 먹고 서강대교를 걸어서 건너던 중이었다.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재단으로 복귀를 하고 있었다.
"나는 대통령님의 가치인 '원칙과 상식'이 너무 중요하고 훌륭한 가치인지 알겠는데, 나의 가치는 뭔지 모르겠지만, 내가 추구하는 가치는 아닌 것 같아."
사실 그때까지 내가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늘 우리가 하는 일들이 유산을 현재로 가져와 미래에 까지 닿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는 일이었다. 아직 미래까지 준비도 못하고 현재로 계속 가져오는 일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은 맑아졌다. 대통령님의 가치 말고, 나의 가치를 찾아서 일하고 싶다고. 그리고 나는 과거의 일은 그다지 재미있어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 나는 미래에 관심이 많은데 과거에만 존재하는 그분의 유산을 현재와 미래로 가져와서 가져가야 하는 일을 하는데 재미없어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퇴사를 결심한 결정적인 이유였다. 코칭을 배우고 난 뒤, 그날의 그 일이 나의 관점을 전환하게 된 '자각과 통찰'이 이뤄 난 지점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일은 나의 다음 커리어를 확 바꾸어 놓았다. 만약 그때, 내가 좀 더 성숙했더라면, 어쩌면 퇴사만이 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수도 있다. 조직의 가치와 개인의 가치가 맞지 않는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다 퇴사를 할 수 없는 일이고, 자기가 원하는 가치만을 주장하면서 살 수 있는 세상은 아니다. 나의 가치가 조직의 가치와 어떻게 얼라인(Align)될 수 있는가가 개인도, 조직도 성장하고 성취를 이뤄낼 수 있는 것인데, 나는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의 길을 찾겠다는 마음으로만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고,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코칭을 통해 내가 얻은 성찰이었다.
폭풍 속 한가운데 있을 때는 잘 모르지만, 폭풍우가 지나고 나면 보이는 경우들이 있다. 한 참 고민이 있을 때는 그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모르지만, 지나고 나니 알게 되는 경우다. 유학생활을 할 때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대해서도 그랬다. 나는 잘 지냈다고 생각했지만, 그 속에 빠져나와 그 시간을 돌아보니 내가 그 감정들을 무시했는지, 회피했는지도 모른다. 나중에야 그때 그 외로움이 '향수병'이었을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17년간의 인생 1막을 정리하면서 그동안 내가 했던 일들은 어디로 갔을까? 타인을 위해 일한 것들만 같아서 나에게 남는 것은 없는 것만 같아서 아쉽고, 빈듯한 그런 마음, 감정이었다. 그 감정이 '번아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알았다. 가까이에서 볼 때는 모른다. 조금 떨어져 보니 그 감정들이, 상황들이 보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의 17년간의 시간들도 그렇게 지나고 나니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그 시간들이 하나도 허투루 보내진 것은 없었다는 것이다. 삶의 희로애락이 있던 그 시간들이 다 소중한 경험 자원이 되어서 내가 인생 2막을 살아갈 때 필요한 자원으로 잘 꺼내 쓸 수 있게 되었다.
"커리어 1막, 17년! 잘 살았어!" 내가 나에게 해주는 인정이고 격려이다.
다음 2막을 어떻게 펼쳐갈지 아직은 준비된 것은 하나 없었지만, 마음은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이 벅찼다. 내 눈앞에는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새로운 시작'이라는 하얀 도화지가 펼쳐져있었다. 어떤 그림을 그릴지 온전히 나 스스로가 만들어가야 하는 기대감으로 충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