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이성에게 ‘설렘’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경우가 없다. 사랑이라는 감정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성에 대한 매력을 느끼며 '누군가를 좋아하고 있구나' 하는 마음을 느껴본 지 무척 오래되었다. 원래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어렸을 때는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꽤 활발했다.
고등학교 입학 전 방학 기간에 동네 속독학원에서 만난 친구들 중 유독 한 남자아이에게 느꼈던 설레는 감정이라던가. 대학시절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자연과학대 다니던 남자 동기에 폭 빠져 혼자 속앓이를 했던 '첫사랑' 기억도 있다. 그 외에도 지금은 메말라버린 나의 감정들을 다양하게 표현하던 시절들이 있었다.
“나 저 사람 참 좋다.”
“또 시작이구나. 이번엔 누구야?” 친구과 수시로 나눴던 대화 패턴이다.
지금도 종종 들을 수 있는 “금사빠”라는 유행어가 있다. 금사빠는 '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의 줄임말로 쓰이는데, 누군가에게 쉽게 한눈에 반해버리는 사람을 일컫는다. 금사빠의 특장은 처음 만난 사람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 느낌 만으로 호감을 느낀다. 빠르게 사랑에 빠져버리는 특징이 있고 또 반면 금방 사랑에서 빠져나오기도 한다. 그 금사빠가 바로 '나'였다. 내게 '좋다'는 표현은 그 사람 '괜찮다' 정도의 의미로 쓰였다.
첫 눈에 반한다는 것을 믿지만, 사람의 관계가 첫 인상이 다가 아님을 안다. 그러니 얼마나 보고 알았다가 쉽게 그 사람의 속내까지 좋아하겠는가. 그럼에도 나에게는 첫 느낌, 첫 인상이 의사결정을 하는데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임은 분명하다. 그 순간은 정말 예상하지 않은 어떤 순간에 온다. 첫눈에 오감이 열리며 어떤 호감이 번개처럼 스치는 그 찰나의 순간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첫눈에 반했던 친구는 샤프한 외모에 금테 안경을 쓴 친구였다. 내가 반한 포인트는 샤프한 이미지였다. 나는 친구들에게 그를 '안경'이라고 불렀다. 대학 입학하고 첫눈에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친구는 요즘 말하는 '숯검댕이 눈썹'을 가진 너무 잘생긴 매력에 빠졌었다. 길거리에서 나랑 같은 보라색 ‘HEAD’ 파커를 입은 모습에 끌렸던 적도 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취향이 같다는데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대학 농구 동아리의 멤버들이 많았음에도 유독 한 친구에게 마음이 갔는데, 그 친구의 별명은 '방댕이'였었다. 대학교 3학년 때 학생식당에서 우연히 눈이 마주쳤던 토목공학과의 2년 선배는 어른스럽게 잘생긴 외모에 눈이 들어와 한참을 혼자 좋아했다.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갔을 때도, 그리스에서 만났던 연극하던 영문과 82학번 선배의 긴 머리에서 자유로운 영혼을 느껴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발렌타인 초콜릿을 보내며 마음을 전달했던 기억도 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나의 사람에 대한, 특히 이성에 대한 호감에 대한 반응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나의 이성에 대한 호감은 뷰카(VUCA)와 마찬가지 였다. 예측하지 못하고 불확실하고 좋아하는 이유도 모호했다. 그 외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내 눈에, 마음에 잠시 들어왔다 나갔다.
이런 나의 마음을 대부분 나는 직접 그 사람에게 표현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내 마음을 표현할 때 상대에게나와 같은 마음을 기대하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 어떤 심리였는지 모르겠다. 내 마음을 받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하면서 고백은 했지만, 상대가 '나는 아니다'라는 거절의 표시를 할 때는 그 사람의 마음을 흔쾌이 존중해줬다. 뒤돌아서 상심에 슬퍼하고 이별 노래를 들으면 다 내 이야기 같아 '마상'을 입기도 했지만 말이다. 어떤 도전을 하면서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덜한 것은 그 때 생긴 맷집 덕분이 아닐까 생각도 한다. 신기한 것은 이렇게 거절을 하는 사람들도 또 대부분은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싫어하지 않다는 것을 배웠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 사람이 좋아하면 다른 사람도 그 감정에 전염되는 것도 같았다. 에너지 주파수가 맞지 않아 그 시기가 서로 어긋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상대가 긍정적인 대답이 나오는 경우도 있는데, 몇 번 만나다 보면 그 사람의 본질을 알게 되니 그 관계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시대가 많이 변해서 지금은 사랑 고백을 남자나 여자나 편하게 표현하는 시대가 된 듯하다. 내가 대학시절만 해도 남자가 먼저 고백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냥 혼자 좋아해도 되는 것을 꼭 그 사람에게 좋아한다고 표현을 했다. 왜 그랬을까? 최근에 그 이유를 알게 되어서 신기한 경험을 했다.
얼마 전 동료와 롤모델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나의 롤모델이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의 둘째 딸 엘리자베스 베넷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소설은 19세기초 영국의 상류층과 중산층의 결혼과 가치관 등을 볼 수 있는데 오만한 남자 주인공 다아시와 편견을 가진 여자 엘리자베스가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성숙해지며 사랑을 만들어 간다는 내용이다. 초등학교 6학년이나 중학교 초 정도 되었을 시절에 흑백영화로 처음 접했는데 주인공 엘리자베스의 독립적이고 자기주도적이며 당당한 모습이 멋있었다.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 좋아하는 남자도 내가 선택하고 싶다'는 마음이 무의식에 저장되어 있었나 보다. 아하! 내가 금사빠를 넘어 내가 먼저 좋아한다고 고백했던 이유가 여기 있었구나!
내 마음을 읽고 그 감정을 속이고 싶지 않다는 마음, 내 감정에 충실하고 싶다는 마음이 거절에 대한 두려움보다 앞섰다. 그때는 그랬다. 지금은 어쩌면 상대는 준비가 안되었는데 당황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할 줄 아는 나이가 되었다. 그 시절은 몰랐지만, 돌아보니 나는 어린 시절부터 '내 삶의 주인은 나'라는 인식을 하며 살았던 것 같다. 그 인식은 나의 내면에서 계속 뿌리를 내리고 셀프 리더십을 키우려 노력하며 주도적인 삶을 살아왔구나.
사회생활을 하고 어렸을 때 말랑말랑했던 마음은 여러 경험치들이 쌓이면서 점점 딱딱하게 굳어져 가는 것을 느낀다. 점점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줄어듦을 느낀다. 그러면서 총량의 법칙이 떠오른다. 소개팅도 수십차례, 짝사랑도 수십차례 충분히 누군가를 마음으로 담아보았으니 이성에 대한 총량을 다써버렸나 하고! 옛날 생각을 하다 보니 그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서 잘 살고 있을까 궁금하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