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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총사의 시작(완결)

전설은 글로 쓰여진다.

by 랜치 누틴


파리, 1647년 가을.

어느새 정오가 지나 해가 살짝 기울어져 있었다.
한때 총사대 신참이었던 달타냥, 이제는 서른아홉이 되었고 총사대의 대장으로 모든 이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비어있는 시간에 그는 집무실의 창가를 바라보며 '삼총사'의 동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때 나도 저들과 같이 활동했던 활기찬 시절이 있었지......'
그는 외로운 남자가 되었다. 우정을 나누었던 삼총사는 오래전 사라졌고 그의 아내였던 콘스탄스 또한 작년에 병으로 잃었다.

그의 빈자리는 여전히 컸다. 그 무엇보다 가슴에 품고도 말할 수 없었던 이름 '아라미스'.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했던 여인 '아라미스'를 잃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집무실에 노크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문이 열리고 젊은 청년이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들어왔다. 검은 머리카락에 파란 눈을 한 젊은이. 어디선가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누구신지?"

“안녕하십니까. 저는 총사대 입대를 희망합니다. 제 이름은 라울 드 라 페르입니다.”

그 이름에 달타냥의 눈빛이 흔들렸다. 자신의 우러러 바라봤던 아토스를 그대로 쏙 빼닮아 있었다.
그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청년을 바라보았다.

“라울?... 너를 알고 있다. 네가 네 살이던 해에 라 페르 저택에서 만났지.”

라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 어머니께서 가끔 대장님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라울은 부모님의 뒤를 이어 총사대에 입대하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그의 말을 들은 달타냥은 가슴이 뛰어왔다. 그는 집무실 방의 창 앞으로 다가가 밖을 쳐다보며 마음을 추슬렀다.

그런데 총사대 앞마당에서 이것저것 살펴보고 있는 아가씨가 있었다. 그녀는 삼총사 동상 앞에 서서 수첩에 글을 적고 있었다. 젊은 총사들이 그녀에게 휘파람을 불며 관심을 표했지만 그 여성은 어떤 동요도 하지 않았다.

"혹시......" 달타냥은 라울에게 창 밖의 소녀를 가리켰다.

“예. 제 여동생 알렉산드라입니다.”

달타냥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라울에게 소녀를 방으로 데리고 오라고 했다. 라울은 가볍게 미소 지으며 아래로 내려가 알렉산드라를 데리고 왔다.
“여기가 총사대장님 방인가요?”

달타냥은 미소를 지었다. 이제 15~16살로 보이는 소녀는 금발 머리에 검은 눈을 가졌고 젊은 시절 아라미스를 쏙 빼닮았다. 알렉산드라는 글을 쓰고 있다고 하였다. 신대륙에서 부모님과 포르토스와 이웃으로 지내던 시절 삼총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언젠가 꼭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필명이 있다고 했지?”
달타냥이 묻자 알렉산드라는 당차게 말했다.

“‘뒤마’ 요. 알렉산드라 뒤마예요!"
알렉산드라가 쓰는 '삼총사'의 소설은 너무도 이야기가 방대해서 만약 자신의 인생 끝까지 다 못 쓰게 된다면 그녀의 자식, 아니면 자신의 손주 세대에게라도 넘겨서 꼭 완성할 것이라는 다짐을 보였다.

달타냥은 잠시 말을 잃었다. 알렉산드라의 당찬 성격이 아라미스와 닮았기 때문이었다.


"너희들의 신대륙 생활을 어땠니? 그리고 언제 파리로 돌아온 것이지?"

달타냥은 그들 가족이 생활이 궁금해졌다. 아버지를 닮아 신중한 라울은 한참 생각하다가 말을 이어나갔다.




아토스가 36살이 되던 해 전쟁의 혼란을 피해 아라미스와 6살의 라울, 그리고 돌이 채 안 된 알렉산드라를 데리고 신대륙으로 떠났다.

포르토스는 아토스와 아라미스의 이웃으로 그들 가족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왔다.

포르토스 부부의 자녀들은 라울과 알렉산드라와도 금세 친해졌고 그로인해 낯선 신대륙 생활을 힘들지 않게 할 수 있었다.

삼총사였던 그들은 자주 저택 앞 공터에서 검술 시범을 하며 과거 삼총사 시절의 영광을 재현했다. 라울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포르토스의 시연을 보며 매번 감탄하며 말했다.

"아버지는 정말 대단하세요. 어머니와 포르토스 아저씨도요!"

포르토스는 그 말을 듣고 활짝 웃으며 라울을 품에 안았다.

"그래 네 아버지는 우리 중에서 가장 냉철한 검객이었지. 하지만 이 아저씨도 젊을 땐 꽤 했다고!"

라울은 삼총사의 무용담을 들으며 부모님과 삼촌들을 동경하게 되었다. 알렉산드라 역시 점점 자라면서 포르토스의 이야기를 듣고 부모님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 상상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야기를 글로 남기면 어떨까?"

알렉산드라는 혼자 중얼거리며 종이를 꺼내 상상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토스는 45세가 되는 해 긴 고민 끝에 프랑스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프랑스-스페인 전쟁이 완전히 끝나지는 않았지만 이제 나이 들고 기운 없는 자신에게 국왕의 밀명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는 여전히 일상생활과 검술 훈련에는 문제없었지만 가끔 찾아오는 배의 통증은 심상치 않았다.

그는 라 페르 영지를 떠나기 전 유모였던 로잔 부인의 아들에게 영지를 임시로 맡겼었다. 그러나 이제 영지를 직접 경영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또한 라울의 후계자로서의 준비 작업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했다.


떠날 결심을 굳힌 아토스는 포르토스를 찾아가 솔직히 모든 사실을 이야기했다.

“이제 떠나면 다시 못 볼 수도 있어 포르토스.”

포르토스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그의 말을 들었다. 서로의 손을 맞잡은 두 사람은 한참을 말없이 있었다.

아토스는 마지막으로 결심을 다지며 말했다.

“그리고 포르토스. 이제 술을 끊으려고 해. 더 이상 내 몸을 해칠 수는 없어. 아직 해야 할 일이 많거든.”

포르토스는 놀라며 말했다.

“술을 끊는다고? 그건 정말 대단한 결심이야. 아토스답지 않지만 그래도 응원할게.”

아토스는 포르토스의 손을 단단히 잡으며 마지막으로 말했다.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너는 언제나 내 가장 소중한 친구였어. 포르토스 정말 고맙다.”


아토스는 10여 년 만에 라 페르 저택으로 돌아왔다. 긴 여행과 신대륙에서의 생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30대 중반의 기품을 유지하고 있었다. 저택의 하인들과 관리인들은 그를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백작님! 세월이 백작님을 거부한 것 같습니다!”

늙은 집사는 그의 모습을 보고 감탄하며 말했다.

아토스는 미소를 보이며 대답했다.

“나도 늙었네. 다만 잘 감춰졌을 뿐이지.”


라 페르 백작부인. 아라미스는 남편의 뒤를 따라 저택으로 들어왔다. 금발과 파란 눈에 날씬한 몸 그리고 우아한 태도는 두 아이의 어머니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저택의 하인들뿐만 아니라 영지의 사람들까지 그녀를 보며 경탄을 금치 못했다.

라울과 알렉산드라도 저택에 함께 들어섰다. 15세의 라울은 이미 훤칠한 소년으로 성장해 젊은 시절 아버지와 닮은 모습이었고 10세의 알렉산드라는 어머니의 아름다움을 닮아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라울 도련님. 이제 정말 아버님처럼 멋진 청년이 되었군요.”

라울은 수줍은 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아버지를 닮았다니 영광입니다.”

라 페르 영지에서 3년의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다. 아토스는 젊은 시절 전장에서의 후유증이 누적되어 48세 이후부터 점점 쇠약해지는 모습을 보였다. 아라미스는 그의 옆에 앉아 헌신적인 태도로 돌보았다. 아토스의 쇠약해진 모습에 슬프기도 했지만 때때로 안도감을 느끼기도 했다. 이제 아토스는 더 이상 전장으로 나가지 않아도 되었고 자신이 그의 곁에서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시간이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당신은 평생 나를 위해 헌신했어. 나를 위해 전장에도 나가고 모든 걸 희생했지.”

아라미스는 그의 손을 잡고 속삭였다. “이제는 내가 당신을 돌볼 차례야.”


아토스는 잠시 고개를 숙이고 말을 이어갔다.

“네가 총사대에 들어온 지 2년쯤 됐을 때였어. 네가 다치고 고생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너를 데리고 멀리 떠날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 아무도 없는 곳으로 단둘만의 삶을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그의 고백에 아라미스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쩌면 내가 더 그러길 바랬을지도 몰라. 당신이 날 데리고 떠나 준다면 그게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때도 있었어. 총사대 시절은 정말 즐거웠지만 우리가 이렇게 결혼할 운명이었다면 좀 더 빨리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면 더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

아토스는 아내의 말을 곰곰이 되새기며 살짝 미소 지었다.


아토스는 1년의 투병을 끝으로 삶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했다.

그는 아내를 바라보며 속삭였다.

“아라미스. 당신은 내 삶의 가장 큰 축복이야.”

아라미스는 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당신은 내 인생의 전부였어.”

그의 나이 49세. 아토스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아라미스를 끝없이 사랑했고 병상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아내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

아라미스는 그의 마지막을 지켜보며 눈물과 함께 미소를 지었다.

“이제 당신은 고통에서 해방됐어. 아토스.”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정말 다행이야. 내 죽음이 먼저였다면, 당신은 이 세상을 끝까지 버티지 못했을 거야."



그들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달타냥은 조심스럽게 라울에게 물었다.

“너... 너희 어머니는... 지금 어디 계시니?”

“파리에 계십니다. 아버지는 파리의 묘지에 묻히셨어요. 인생 최고의 순간을 보낸 파리를 그리워하셔서요. 며칠 전이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년이 되는 날이었어요. 그래서 어머니는 알렉산드라를 데리고 오랜만에 저와 함께 파리로 오셨죠.”

그 순간, 달타냥의 가슴이 터질 듯 뛰었다.


아라미스가 돌아왔다.

그리고 그날 해 질 녘 달타냥은 파리의 오래된 묘지로 향했다.
한 나무 아래 화려한 묘비가 있었다.
그 앞에서 잿빛 옷을 입은 한 여인이 무릎을 꿇고 조용히 묘비석을 닦고 있었다.

그 여인이 고개를 들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중년의 나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아름다웠다.

아라미스.
그 이름이 달타냥의 입에서 새어 나오려는 찰나 아라미스가 먼저 말했다.

“ 달타냥?”

그는 아무 말 없이 걸음을 멈추고 모자를 벗어 가슴에 눌러 고개를 숙였다.
노을빛은 묘비 사이로 비추고 있었다.



알렉산드라는 오빠 라울 앞에 일어나 선언했다.

"이제 작가 뒤마의 '삼총사' 줄거리가 완성되었어!"


그렇게 그들의 자손에 의해 알렉산드르 뒤마의 '삼총사'가 태어났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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