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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안녕

영원한 우정과 사랑을 위해

by 랜치 누틴

파리에서 지중해의 항구도시 칼레까지의 거리는 결코 가까운 길이 아니었다. 하지만 달타냥은 쉬지 않고 역참에서 말을 갈아타며 전속력으로 달렸다.

‘아토스가 신대륙으로 떠난다. 그것도 가족과 함께......’

달타냥은 며칠 전 부하에게 아토스의 소식을 들었다. 그가 신대륙 감독으로 명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자 달타냥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언제?"

"아마도 며칠 후 신대륙으로 가는 배가 떠나는 배편으로 출발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그 말이 머릿속에서 뱅뱅 돌았다. 아직 아라미스에 대한 마음은 어느 하나 정리되지 않았다. 8년 전 아라미스가 여자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충격, 그리고 자신이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었는지를 너무나 늦게 깨달았다는 것에 대한 후회로 가득했다. 이제 그녀를 평생 볼 수 없다니......

달타냥은 최대한 배 시간 전에 맞춰 도착하기 위해 말을 거칠게 몰았다.

아라미스는 라울의 손을 잡고 아토스는 알렉산드라를 안고 배에 올랐다. 그들은 뒤를 돌아 마지막으로 프랑스 땅을 바라보았다. 아토스는 이내 아쉬운 표정인 아라미스의 어깨를 잡고 위로했다. 그들이 갑판에서 항구 아래를 보고 있을 때 누군가 급하게 항구로 말을 타고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달타냥이 항구에 도착했을 때 아토스와 아라미스를 태운 배는 이미 떠나고 있었다.

돛을 높이 올린 배는 바다 위를 유유히 항해하고 있었다. 파도는 잔잔했지만 달타냥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파도가 출렁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배 위에서 아라미스가 보였다.

긴 머리를 바람에 날리며 갑판 위에 있는 아라미스는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밝은 미소를 띠며 손을 흔들었다.

달타냥은 가슴이 내려앉았는 것 같았다.

행복한 표정의 아라미스 옆에 아토스가 서 있었다. 아토스의 시선이 달타냥과 마주쳤다.

그는 무표정했고 단호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돌아서라. 아라미스는 내 아내이다. 너 하고는 엮이지 않을 사람이다."

아토스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달타냥은 그의 눈빛에서 그 모든 말을 읽을 수 있었다.

달타냥은 숨을 헐떡이며 배를 쫓았다. 그러나 배는 멀어졌고 아라미스의 모습도 희미하게 사라졌다.

그날 밤 달타냥은 칼레의 항구 근처 선술집에서 홀로 술을 마셨다. 그리고 아라미스를 포함한 삼총사 모두가 떠나간 프랑스가 달타냥에게 그 어느 곳 보다 외롭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아토스와 아라미스는 같이 있어 외롭지 않았다. 카리브에 도착했을 때 저 멀리 항구에서 거대한 체구의 남자가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포르토스!" 부부는 소리쳤다.

포르토스는 프랑스에서 출발한 배가 카리브에 도착할 때마다 항구에 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언젠가 그들 부부가 카리브로 도착할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포르토스는 저 멀리 배가 들어오는 배에서 아토스와 아라미스를 보고 크게 손을 흔들며 환하게 웃었다.

"이야! 드디어 왔군! 아라미스! 아토스! 너희들 정말 왔구나!" 그의 우렁찬 목소리가 항구에 울려 퍼졌다.

그들은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제 새로운 삼총사가 결성되었다.



카리브의 생활은 예상보다 훨씬 즐거웠다. 전쟁과 정치적 음모에서 벗어나 그들만의 자유를 만끽하였다.

아토스에게 카리브의 따뜻한 햇살과 바람은 전장에서 다친 상처들이 빠르게 치유되는 치료제 같았다. 아토스는 오랜만에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고 아라미스 또한 긴장감에서 벗어나 평온함을 찾았다.

그들은 아이를 키우느라 바빴지만 항상 둘만의 시간을 갖으려 노력했다. 전장을 겪은 아토스와 그를 기다리던 아라미스 사이에는 더 애틋하고 깊은 사랑의 감정이 생겼다.

포르토스는 언제나처럼 활기차고 유쾌했다.

"우리 젊을 때 꿈이었어! 삼총사가 옆집에 살면서 함께 늙어가는 것 말이지!"

그는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아토스와 아라미스는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포르토스는 아토스와 아라미스를 쳐다보며 아직도 신혼같다고 장난을 쳤다. 포르토스는 아토스와 아라미스의 결혼식을 못 봤으니 여기서 다시 결혼식을 올리라는 성화에 모두가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아토스는 카리브 식민지의 감독자로서 자리 잡은 지 1년이 지났다. 그는 누구보다 공정하게 일을 처리했고 그의 성품은 섬의 주민들에게 큰 존경을 받았다. 아토스는 과거의 음모와 위험에서 벗어나 새로운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아토스가 예상했던 대로 결국 스페인과 프랑스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어느 날, 아토스를 향해 프랑스로 왕실로부터 공식적인 서신이 도착했다. 리슐리외 추기경이 직접 보낸 편지였다.

<라 페르 백작께서 전장에 복귀할 의지가 있으신지 묻습니다. 프랑스-스페인 전쟁의 총사령관의 지위를 드리겠습니다.>

아토스는 편지를 천천히 내려놓았다. 깊은 생각에 빠진 그는 한참 후에 국왕과 리슐리외 추기경에게 정중한 답장을 보냈다.

<폐하. 스웨덴-프로이센의 전장에서 입은 상처가 아직 완전히 낫지 않았습니다. 지금 전장에 참전하면 오히려 아군에 폐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식민지에서 최대한의 보급품과 자원을 준비하겠습니다. >

편지는 다음 배로 파리에 보내질 것이었다.

그는 더 이상 전장에 나설 뜻이 없었다. 프랑스에 있었다면 어쩔 수 없이 참전했어야 했겠지만, 지금은 신대륙에서 자신의 가족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했다.


프랑스-스페인 전쟁이 계속되던 어느 날 충격적인 소식이 그들 부부에게 전해졌다.

<스페인 리오날 알바 데 아우스트리아가 전사했다.>

아토스는 그 소식의 적힌 서신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온몸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충격이 몰려왔다.

그 소식을 듣고 아토스는 한참 동안 말없이 자리에 앉아있다가 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 그리고는 참아왔던 눈물을 터뜨렸다.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 추운 전장에서 마지막 그 순간에......”


아토스에게 힘들게 소식을 들은 아라미스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아토스가 고통스럽게 말하는 것을 들은 아라미스 또한 자신의 몸을 지탱할 수 없었다.

"리오날이... 죽었다고?" 아라미스는 가슴이 무너지는 듯한 아픔이 밀려왔다. 리오날은 마지막 순간까지 아라미스에게 받은 펜던트를 품고 있었다고 전해졌다.

리오날은 그녀에게 친구이자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해 준 사람이었고 언제든 조건 없이 곁을 내어준 남자였다.

그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아라미스는 그 소식을 듣고 침대에 누워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그녀는 리오날과 함께했던 순간들이 하나하나 떠올라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도 방에 틀어 박혀 있는 아라미스를 걱정한 어린 라울은 동생 알렉산드라의 손을 잡고 어머니의 방 앞에서 서성였다.

“엄마. 제발 일어나세요. 아버지도 엄마를 걱정하고 있어요. 알렉산드라도 엄마를 찾고 있어요.”

아라미스는 아이들의 간절한 목소리에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두 아이를 품에 안고 작게 속삭였다.

“엄마가 미안해. 이제는 너희를 더 잘 돌봐줄게.”

아라미스는 라울과 알렉산드라를 돌보며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아라미스는 리오날의 딸 이사벨라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이사벨라. 너는 내 딸이나 다름없어. 네 아버지는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었고, 너는 네 아버지를 그대로 닮은 아이야. 우리가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릴게. 그날까지 힘내렴.>

아라미스는 편지를 다 쓴 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아토스는 포르토스와 술을 마시며 리오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리오날은 나를 반으로 나눈 것 같은 친구였어. 그는 나의 영혼의 형제였고 운명적으로 같은 여자를 사랑했지.”

포르토스는 술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그래서 더 힘든 거야? 아라미스가 그를 잊지 못할 거라는 생각 때문에?”

아토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 내가 전장에 나갈 때 아라미스를 리오날에게 맡겼던 것도 그 때문이야. 그는 내가 아라미스를 사랑하는 만큼, 아니 어쩌면 나보다 더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포르토스는 한참을 생각하며 말했다.

한 여자를 두 남자가 공유할 수 있다는 게 가능한 일이야? 그런 게 진짜 사랑일까?

아토스는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만약 다른 놈이라면 아라미스의 얼굴을 쳐다보기만 해도 당장 칼을 들고 싶었을 거야. 단지 리오날만 빼고. 그는 정말로 신기한 친구였어. 내가 유일하게 질투하지 않았던 사람이었거든.”

포르토스는 술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넌 리오날을 잃었지만 아라미스와 라울 그리고 알렉산드라가 있잖아. 그들을 지키는 게 리오날을 위한 일일 거야.”

아토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씁쓸하게 술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순수했던 시절 리오날과 아토스, 아라미스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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