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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준비

"안녕. 리오날!"

by 랜치 누틴

아토스는 숨을 깊게 내쉬며 아라미스를 안았다. 아라미스는 그의 품에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아토스의 몸은 전쟁으로 얻은 상처로 고단했지만 누구보다 따뜻한 품을 아라미스에게 내어주었다.

"미안해......" 그는 나직하고 따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편, 리오날은 아토스에게 가까이 다가와 그들 부부의 재회를 지켜보았다. 아라미스가 아토스의 품에서 떨어지자 리오날은 아토스 앞에 섰다. 아토스는 자신의 가족을 지켜준 리오날을 껴안고 감사를 전했다.

"네가 무사히 돌아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고맙다! 아토스."

리오날의 목소리에는 진심 어린 안도감이 묻어 있었다.


아토스는 한숨도 자지 않고 2일간 밤을 새워 몬테로 가로 말을 타 달려온 것이었다.

리오날은 하인들을 시켜 아토스의 목욕물을 준비하고 편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급하게 조치했다.

아토스는 밤새 내내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난 순간은 이미 다음날 오후 늦은 시간에 일어났다. 잠을 자는 동안 아라미스는 그 자리에서 내내 지켜보았다.

아토스가 잠을 깬 순간 그의 앞에는 그렇게 그리워했던 아들 라울이 있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가 자신의 딸을 안고 있었다. 아토스는 아들과 새로 태어난 딸 알렉산드라를 안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저녁시간, 몬테로가의 서재에 아토스와 아라미스 리오날이 앉아 있었다. 아토스는 스웨덴 프로이센 전쟁에서의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전쟁의 막바지에서 아토스는 스웨덴 국왕 아돌프와 전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날 무렵, 베이스캠프가 습격당했고 아돌프 왕은 무리하게 병사를 데리고 적을 향해 나아갔다. 아토스는 그를 만류했지만 아돌프 국왕은 프로이센 일반병이 쏜 총에 부상을 입고 채 사망했다는 내용이었다. 그의 말은 잠시 중단되었다. 전장에서 그가 겪었던 끔찍한 기억들이 그의 표정에 드러났다.

"아돌프 국왕이 전사했어도 우리는 끝까지 싸웠고 결국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정말 많은 전우를 잃었다."

아라미스는 일어나 아토스의 어깨를 토닥였다.

한참 그렇게 있었던 아토스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아라미스를 바라보며 짐 속에 있던 두 개의 서류 뭉치를 꺼냈다. 서류 위에는 루이 13세의 옥새가 찍혀 있었다.

"이건 너를 위해 받아온 거야."

아토스는 아라미스를 향해 말했다. 첫 번째 서류는 아라미스의 총사대 위치를 복원한다는 국왕의 서명이 담긴 문서였다.

"아라미스. 네가 총사대에서의 노력과 국가에 대한 헌신은 인정받아야 해. 이제 '아라미스'라는 이름은 다시 총사대에 영원히 남을 거야."

아라미스는 아토스에게 전해받은 문서를 손에 쥐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아토스는 두 번째 서류를 펼치며 말을 이어갔다.

"이건 프랑소와를 위한 거야."

서류에는 아라미스의 전 약혼자 '프랑소와'는 루이 13세의 동생 필립 왕자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 의인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 사면권을 준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아라미스는 손을 떨며 서류를 읽어 내렸다.

"프랑소와..." 아라미스는 작게 속삭였다.

"나는 처음부터 프랑소와를 좋아하지 않았어." 아토스가 고백했다.

"하지만 네가 프랑소와와 약혼했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고. 그가 죽었다고 해서 너와의 연관성은 사라지지 않아. 결국 네가 그 반란군에게 다시 엮이지 않으려면 프랑소와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것이 최선일 것이라 생각했어."

아토스의 말에 아라미스는 그의 눈을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진심으로 프랑소와에 대한 용서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아토스는 전쟁이 끝나고도 늦게 돌아온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루이 왕은 나에게 전공을 칭찬하며 그의 곁에 남기를 원했어. 하지만 나는 정중히 사양했지. 전쟁으로 몸이 많이 상했다고 말이야. 이제 휴식이 필요하다고 핑계를 댔어. 그리고..."

그는 이어서 말했다.

"라 페르 영지를 들렀다 오느라 시간이 걸렸어. 이제 여기를 떠나기 위해서."

아라미스와 리오날은 그의 말을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아라미스는 서류를 꼭 쥔 채로 말했다.

"너무 늦었다고 책망하려 했지만... 당신은 늘 내게 모든 것을 줬어, 아토스."

아라미스의 눈물은 뺨을 따라 흘렀다.

리오날은 한 발짝 물러서며 그들을 바라봤다.

"아토스! 이제 네가 돌아왔으니 이제 이 집도, 너희 가족도 완벽하다. 정말 대단하고 존경해. "

리오날의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아토스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을 잇자, 그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껴 있어 아라미스와 리오날은 다시 긴장했다. 아토스의 말이 이어졌다.

"아라미스, 리오날. 우리는 스페인에서도 프랑스에서도 살 수 없을 것 같아. 곧 포르토스가 있는 신대륙으로 가기로 했어. 이미 루이 국왕에게 허락을 받은 상태야."

그의 말에 아라미스와 리오날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이유로?"

아토스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 유럽은 완전히 전쟁에 미쳐있어. 루이왕도 스페인 국왕도 모두 유럽의 패권에 관심이 쏠려 있지 않나. 프랑스가 가톨릭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신교도 국가인 스웨덴을 지원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다음 전쟁은 필연적으로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에서 일어날 거야."

그의 설명에 방 안의 공기는 무거워졌다. 아토스는 이어서 말했다.

"신교와 가톨릭 간의 싸움 같은 명분은 이제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 지금은 단지 패권 싸움이야. 그렇게 된다면 나와 리오날은 전장에 참전할 수밖에 없을 거고, 우리는 서로를 향해 총, 칼을 겨누어야 해. 결국 둘 중 하나가 죽어야 끝이 날 거야. 내가 사라져야만 이런 비극을 피할 수 있어."

리오날은 손을 꽉 쥔 채 반문했다.

"프랑스 왕비가 내 여동생 안느 왕비야. 정말로 그렇게까지 상황이 악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아토스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히 말했다.

"유럽 왕가들은 대부분 서로 친인척 관계로 묶여 있지... 그렇지만 그런 사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아. 왕가의 개인적인 친족 관계는 권력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야. 혈연 동맹 관계는 언제든 깨질 수 있는 거래일뿐이지."

아라미스는 두 남자의 대화를 들으며 마음이 무너질 것 같았다. 자신이 사랑하는 두 사람이 결국 서로를 죽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니......

"아토스... 리오날... 우리는 정말로 그렇게 해야만 하는 걸까? 우리가 이곳을 떠난다고 해서 모두가 안전해질까?"

아토스는 아라미스의 슬픈 눈빛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단 몇 년이라도 전쟁을 피해 유럽을 떠나 있는 거야. 신대륙에선 최소한 이 끔찍한 패권 싸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야."

아토스는 리오날의 어깨를 잡으며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신대륙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고 믿어. 리오날. 너도 같이 가자!"

리오날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깊은 생각 뒤 입을 열었다.

"아토스, 난 너희와 함께 갈 수 없어. 여긴 내 조국이고 난 왕족이야. 내 딸 이사벨라도 왕족으로서 자리를 지켜야 해. 나에게는 그 어디에도 도망칠 권리가 없어."

리오날은 조용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토스는 그의 말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거실 옆에 잠든 딸 알렉산드라를 바라보았다.

"딸의 이름을 알렉산드라로 지어줘서 고맙다. 리오날, 너의 배려가 없었다면 이 순간도 없었을 거야."
리오날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지만, 그의 눈에는 깊은 슬픔이 어려 있었다.


며칠 동안 그들은 먼 길을 떠날 준비에 몰두했다. 필요한 물품을 챙기며 떠날 준비가 차근차근 진행되었다. 아토스 가족이 떠나기 전 날 밤 그들은 셋이 한 방에 모여 이별의 인사를 나눴다.

아토스는 리오날과 아라미스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아토스는 그들 사이에 여전히 남아 있는 친구의 관계와 연인의 관계가 섞인 복잡한 감정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아토스는 잠시 고민하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 둘만의 시간이 필요하겠지. 충분히 이별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할게."

당황하는 리오날과 아라미스를 두고 아토스는 방을 조용히 문을 닫았다.


아토스는 방에서 멀찍이 떨어진 거실의 긴 의자에 앉아있었다. 아토스는 긴 의자에 잠들어 있는 라울을 쳐다보았다. 라울은 깊이 잠들어 있었다. 그는 잠든 알렉산드라를 품에 안고 아기와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리오날... 미안하다. 네가 아라미스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알고 있어. 어쩌면 나보다 더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아라미스 또한 너를 깊이 마음속에 두고 있어. 어쩌면 네게 아라미스를 맡기는 것이 옳을지도 몰라. 하지만......."

아토스는 긴 한숨 끝에 다시 속삭였다.

"이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내가 아라미스를 데리고 가야만 해. 이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필요하니까. "


방 안에는 리오날과 아라미스만 남았다. 잠시 침묵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리오날의 눈에는 아라미스를 향한 사랑과 슬픔 그리고 이별의 고통이 담겨 있었다.

“엘레나... 아니, 아라미스.” 리오날이 조용히 말했다.
“이 순간이 마지막이라면 난 당신을 온전히 느끼고 싶어. 그리고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기억하게 하고 싶어.”

아라미스는 그의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었다. 이 순간은 그들 사이에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것을......

그들은 천천히 서로를 껴안았다. 리오날은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그녀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고 조심스럽게 입을 맞췄다. 그들의 입맞춤은 점차 깊어졌고, 그들은 몇 년 전 오두막에서 하룻밤을 보낸 기억처럼 마지막으로 남자와 여자로서 서로를 사랑했다.


몇 시간이 흘러 아라미스는 방에서 나왔다. 그녀는 머리가 약간 헝클어져 있었고 울었는지 눈이 부어 있었지만 담담한 표정을 지니고 있었다. 아토스는 멀리서 그녀를 바라보다가 말없이 그녀에게 다가가 어깨를 잡았다.

“괜찮아?” 아토스가 조용히 물었다.

아라미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침 일찍 떠나야 하니까 눈을 좀 붙이는 것이 좋을 거야."

아토스는 아라미스를 가볍게 안고 방으로 데리고 갔다. 방에는 라울과 아기가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아라미스는 아토스와 아이들을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아침이 되었다.

리오날은 2층 발코니에서 그들이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의 손에는 아라미스가 건네준 펜던트를 쥐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잘 가요... 내 사랑. 그리고 내 영원한 친구도 안녕.”

그는 조용히 중얼거리며 펜던트를 바라보다가 이사벨라를 품에 안았다. 그의 마음속에는 아라미스와 아토스와 함께했던 모든 순간들이 기억했다.


아토스와 아라미스는 멀어지는 마차 속에서 조용히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그들은 유럽을 떠나 새로운 시작을 위해 나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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