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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동준 Jun 04. 2016

인생에서 '정말로' 선택할 수 있는 것

- <이것은 물이다> 독서 후기


물고기에게 물은 당연한 것이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에서 그렇다.


우선 물고기에게 물은 당연하게 주어져있는 환경이다. 우리에게 공기가 그렇듯이 말이다.


다음으로 물고기가 '물이 없음'을 의식하는 것은 물 밖에서, 즉 죽음의 환경에서 뿐일테니 살아있는 순간에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물 속에서, 물 덕택에 살아가고 있음을 의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지금 한국에서는 공기가 사실상 없는 것 같은 나날들을 보내고 있어서 신선한 공기의 소중함을 물씬 느끼게 된다. )


2005년 케니언대학의 졸업식에서 말한 저자의 졸업 축하 연설을 옮긴 책에서 저자는 몇 가지 진부하고도 중요한 사실을 말한다.



1. 우리가 살면서 진정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이기적이지 않기 위한 노력이다.


저자는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을 인간의 디폴트 셋팅(물건의 최초 생산 단계에서 설정되어 있는 초기 셋팅)이라고 말한다. 이건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이 인간의 디폴트 셋팅이라면 나 중심으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은 선택이 될 수 없다. 그것은 그저 본능에 대한 순응일 뿐이다. '의식적'이라는 측면에서 선택은 오로지 자기중심적이지 않기 위한 노력만을 지칭한다. 쉽게 말해 다음과 같은 말들과 선언은 선택이 아니라 그저 본능일 뿐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제 나를 위해 살기로 했어.
내가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 알어?
저런 인간들 때문에 내가 이렇게 짜증 나야되는 이유가 도대체 뭐야?
등등등...


제일 위의 말은 요즘 유행하는 말이다. 나를 위한 선물이나, 나 참 수고했어 등등의 말들과 함께... 세련되게 포장을 하든,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훈련이라고 말하든, 어쨌든 이러한 말들은 뭔가 작정을 하고 의식적으로 노력을 하는 어떤 것이라고 하기 어렵다. 솔직히 말해서 타인을 위해 사는 것과 비교할 때, 자신을 위해 사는 것에 어떠한 수고와 의식적인 노력이 따르나? 그건 애쓰지 않아도 자동으로 되는 것 아닌가?

(심리치료적 접근이 필요한 자기혐오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향한 비판은 아님.)



2. 작은 선택이 중요하다.


'일상'에서 부딪히는 많은 순간들, '진부한' 순간들 속에서 자기중심적이지 않기 위해 선택하는 것이 정말로 중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너무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실천은 정말 어렵다. 일상이란 무엇인가? 그건 대단한 숙고가 따르지 않더라도 자동으로 내 옆에서 흘러가고 있는 순간들의 집합이다. 멍~때리고 있어도 흘러가고, 의식하고 있어도 흘러가는 그런 것이다.


문제는 이렇다. 우리의 삶에서 불쾌감이나 짜증은 대부분 이러한 일상에서 비롯된다. 엄청난 재난이나 위험 앞에서는 쉽게 짜증이 나지 않는다. 오히려 겸허해지기 쉽고, 차분해지거나 현실적이 된다. 아무 애쓰지 않아도 흘러가는 순간들 속에서 정말 애쓰지 않으면 인간은 그냥 자기중심적이 되어버린다. 무서운 관성이다.


가끔 로또가 되면 집을 사준다는 친구들이 있다. 나는 그 친구들에게 항상 "집은 필요 없으니, 지금 먹는 밥값을 네가 계산해라."라고 말한다. 그러면 움찔(!)한다. 거대한 약속과 비전은 항상 멀리 있다. 그 말은 아무런 책임을 요구하지 않는 거리 만큼 떨어져있다. 하지만 작은 약속은 가깝다. 그만큼 피부로 느껴지는 책임이 있고, 의식적인 선택과 노력을 요구한다.


성경도 말씀하지 않나? 작은 것에 충성된 자가 큰 것에도 충성된다고. (누가복음 16장 10절)



3. 집착하는 것은 결핍을 드러낼 뿐이다.


저자의 말에서 마음에 남은 세번째 교훈은 집착하는 대부분의 것이 마음의 결핍을 드러낼 뿐이라는 것이다.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은 대부분 자기에게 타인을 움직일 힘이 없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미를 추구하는 사람은 대부분 자기가 충분히 아름답지 않아서 사랑 받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돈, 명성 등등, 그런 예는 수도 없다. 그리고 이것들을 정말이지 그것을 손에 넣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더 큰 허기만을 손에 쥐게 할 뿐이다.



4. 소중한 것은 왜 항상 뒤늦게 알게 되는가?


책을 읽고 마음에 남은 울림은 난처하게도 '인생에서 너무 소중한 이런 교훈들은 왜 인생의 가장 활동적인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알게 되는 것일까?'하는 안타까움이다. 저자의 연설을 들은 케이언대학의 졸업생들은 과연 그 말의 의미와 무게감을 알 수 있었을까? 내가 20대 초중반에 이런 말을 들었다면 나는 그 의미와 무게를 알 수 있었을까? 아마 이해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다만 나이가 좀 들고 보니, 어린 시절에 이해한다고 생각한 것들의 대부분을 정말로 이해하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뿐이다.


소중한 것들은 왜 항상 뒤늦게서야 마음에 와닿는 것일까? 류시화 시인의 시집 제목을 페러디하자면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결코 지금 알고 있는 만큼의 '무게'를 그때도 아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돌이켜보면서 점점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양이 '겸손'이다. 내가 알지 못하더라도 숱한 지혜로운 사람들의 삶이 녹아있는 진부하고, 단순한 사실들을 수용하는 것! 이해한다고 착각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 비록 그것이 내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 할 지라도... 이것이 삶의 지혜가 아닐런지? 하지만 질풍노도의 시절에 겸손이란 얼마나 나약해보이는 말이란 말인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잠언 9장 10절)이라는 말씀에 대해 이를 통해 다시 돌아보게 된다.


저자의 강연 전문은 인터넷에도 많이 있다. 굳이 1만원이라는 값을 내고 책까지 살 이유는 없는 것 같다. 그리고 혹 영어가 능한 사람들은 육성(https://youtu.be/PhhC_N6Bm_s)으로 연설을 듣는 것도 좋을 것이다. 난 영어가 후달리고, 책 수집이 취미라 그냥 돈을 주고 샀다...


우리 삶에서 정말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아주 중요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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