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에서 운동하기

하고싶은 운동이 있다면 일단 해보자

by 고별리사

한국에는 각종 운동 붐이 있다.


코로나 시절에는 등산이 갑자기 유행했었고, 인스타 지인의 절반 이상이 골프를 배우던 시기도 있었다. 배드민턴이 유행했던 적도 있고, 갑자기 모두가 헬스장에서 웨이트를 하던 시기도 있었다. 최근에는 러닝 붐이 일면서 각종 러닝 크루가 생겼던 기억이 있다.


시드니에는 늘 운동 붐이 있다.

한 종류의 운동만 유행하는게 아니라, 여기서는 그냥 운동이 생활 그 자체인 느낌이다.


한 예로 필자의 회사에는 리셉션이 있는데, 리셉셔니스트로 일하는 로빈은 주 2회만 출근을 한다. 그분이 어느날, "one has to work around her sports commitments, you know"라고 말하는걸 들었다. "운동 먼저 하고, 남는 시간에 일하는게 맞지"라는 말이다. 로빈은 테니스를 열심히 친다.


늘 회사업무가 사생활보다 중요도가 높은 한국의 뿌리깊은 문화와는 정반대의 분위기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한국에서 운동 붐과 무관하게 꽤 꾸준히 헬스(웨이트)와 러닝을 해온 편이었다.


SE-d6cbc927-c535-431b-8cdb-4466d5245139.jpg 헬스장 시설은 시드니보다 서울이 훨씬 더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 붐에 대해 약간의 피로도가 있었는데, 아마 그 이유는 "나는 이런 운동을 하는 사람이야"라는 사실을 꾸준히 증명해야하는 것 같은 분위기 때문이었던것 같다. 운동 하나를 시작하려면 구비해야하는 각종 장비가 너무 많은것 같았고, 대중이 챙겨입는 운동복 하나쯤은 갖고 있어야 하는듯한 분위기가 피곤했다.


나는 런린이일 뿐인데, 챙겨야 할 운동복, 선글라스, 신발, 양말 등등이 너무 많았고, 그냥 대충 입고 나가 뛰기에는 왠지 남들의 시선이 의식되었다.


한때 공원에서 뛰는데, 정말이지 모든 사람들이 교복마냥 새끈한 검정색 러닝복을 입고 뛰는 모습에 새삼 놀랐던 기억이 있다. 한국에서 내가 느낀 운동은, 건강을 생각하기 시작한 큰 사회적인 흐름 속의 유행의 일환이었고, 그 유행에 탑승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진입장벽이 있는듯한 느낌이었다.


시드니에서 내가 느낀 운동은 조금 다르다.


여기는 운동이 건강을 챙기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운동이 그냥 생활이다. 사람들이 딱히 살을 빼고 싶다거나, 몸매를 만들고 싶어서 운동하는 것 같지 않다. 운동은 그냥 생활의 일환이고, 내가 좋아서 하는 취미이다. 그에 결과적으로 건강이 따라온다. 시드니에서 실제로, "뚱뚱한" 사람을 본 적이 거의 없다.


시드니의 하버(harbour)에 나가면 뛰는 사람이 정말 많다. 뛰는 모습도, 복장도, 자세도 제각각이다.


한때 서울에서 러닝붐이 불면서, 내 유튜브 쇼츠에도 "올바른 러닝자세"에 관한 영상이 도배하던 시기가 있었다. 서울에서의 운동은, "제대로" 해야하는 무언가로 느껴졌다. 러닝 효율을 높이기 위해 자세도 바르게 해야하고, 심박과 숨도 적절해야하고, 운동복과 선글라스, 그리고 운동화까지 각종 분석과 서열화에 따라 본인에게 최적화된 무언가를 갖추고 시작해야하는 것.


시드니에서는 운동을 일단 그냥 한다.


여기서도 러닝이 인기가 많은데, 아마 튼튼한 다리만 있으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운동이니 그런것 같다. 남녀노소. 자세도 제각각.


친구와 수다떨며 뛰는 사람. 유모차를 끌고 뛰는 사람. 제멋대로 같아 보이지만, 러닝 모임에 나가서 수백명과 함께 달려보면 느낄 수 있다. 다들 실력이 수준급이다. 오랜 기간 제멋대로 뛰어온 사람들의 내공.


KakaoTalk_20260118_130609734.jpg 토요일 아침마다 시드니의 공원에는 수백명이 모여 5km를 달리는 Park Run 모임이 있다. 남녀노소가 모여 제멋대로 달린다.


러닝을 예로 들었지만, 비단 러닝 뿐만이 아니다. 사이클리스트도 정말 많이 보인다. 필자의 회사에는 짐나스틱(gymnastic)을 하는 동료가 있다. 다른 동료는 주 3회 주짓수를 하러 간다. 동네 공원 공공 농구장에는 남녀노소 농구를 즐긴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본다이 Bondi Iceberg 수영장에는 늘 수영하는 사람들이 있고, 동네 야외 수영장에도 아이들이 수영을 즐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어찌보면 운동능력이 상향평준화 되는건 당연지사다.

제멋대로 하고 싶은 운동을 해도 되는 분위기. 꼭 잘하지 않더라도 일단 나가서 뛰어도 되는 분위기.


수백명이 같이 뛰는 러닝 모임에 나가면 필자는 아직 가장 느린 편에 속하지만, 내가 나시를 입든 형광색 운동화를 신든 아무도 시선을 안두는 분위기가 참 편하다.


적절한 운동복이나 신발이 없어도 관계 없다. 남들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아무도 내게 관심을 안 갖는다. 시드니에 놀러오거나 살러 왔다면, 하고싶었던 운동 하나쯤은 제멋대로 한번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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