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구기 종목 운동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공 하나를 두고 싸워 끝내 이겨야 하는 그 상황이 싫었다. 진심으로 잘하고 싶은데, 몸이 따라 주지 않는 상황이 싫었고, 그것 때문에 지는 것은 더 싫었다. 자연스레 구기 종목에서 멀어졌고, 군대에서도 이런 성향으로 축구하는 시간이 즐겁지 않았다. 입사해서 거절하지 못하고 참석한 축구동호회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나는 이겨야 하는 대상이 없는 운동이 즐겁다. 3년 가까이 지속하고 있는 유일한 운동인 웨이트 트레이닝이 즐거운 이유이다. 승패에 관계 없이 그냥 하면 되기 때문이다.
며칠 전, 한복을 만드는 아내가 공방 생활이 답답했는지 포켓볼을 치러 가고 싶다고 했다. 십여년 전,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이문동 ‘우정 당구장’에서 다진 실력을 내게 뽐냈던 사람이었다. 당시에도 야무진 큐걸이가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손으로 하는 건 뭐든 잘하는 사람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어지간한 당구장은 오직 ‘4구다이’ 밖에 운영하지 않아서, 검색 후 가까스로 포켓볼 다이 보유 당구장을 찾아갔다. 당구도 일종의 구기 종목이긴 하지만 이런 경기는 마냥 즐겁다.
나는 내 한계를 너무나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고, 그것을 뛰어넘을 생각이 추호도 없다. 아내가 이기면 이기는 대로 그저 내 순서가 오면 치면 된다. 마치 혼자하는 웨이트 트레이닝처럼.
‘왜 이기고자 하는 마음이 하나도 들지 않는 것일까?
내가 그저 이 게임을 즐기고 있어서 그런 것일까?
저렇게 열심히 집중해서 치는 것을 보면 저 사람은 나를 몹시 이기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궁금해진 나는 아내에게 물었다.
“혹시 날 이기길 원하는 거야?”
“아니.”
“왜?”
“당신은 내가 그냥 이기지, 이건 그냥 나 자신과의 싸움이랄까?”
“ㅎㅎㅎ그렇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