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각하는냥 Apr 25. 2023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도 샌다

분노유발자의 100년 전 역사 발언은 말이야 막걸리야.

눈 둘 곳은 오로지 정면뿐이었다. 오른쪽과 왼쪽은 이미 위험지대다.


이곳은 지하철 안이다.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너무 짧아서 속옷이 보일 듯 말듯한 처자가 앉아 있었고, 왼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배꼽티에 너무도 타이트한 스키니팬츠를 입고 있는 처자가 서 있었다. 그 둘은 누가 봐도 돋보일 정도로 유난히 눈에 띄었다. 내 시야에서 오른쪽과 왼쪽에서 각각 '위험'을 담당하고 있는 그들이었다.


그 둘을 피해 눈 둘 곳은 오로지 정면뿐이었다. 정면에는 이제 할머니에 입문한 지 오래되지 않은 여인 세 명이 등산복 차림으로 앉아 있었다.


가장 왼쪽의 할머니가 사탕을 먹으려고 비닐을 뜯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지만 비닐은 쉬이 뜯어지지 않았다. 도와줘나 하나 싶은 오지랖 버튼을 누르기 직전까지 갈 무렵 다행히 옆의 다른 할머니가 쉽사리 뜯어주었다. 별 걸 다 신경을 쓰려한다.


쓸데없이 오지랖 버튼은 나이를 먹어갈수록 사이즈가 커져만 간다.


며칠 전 퇴근길의 대림역은 지하로 내려가는 6층 높이의 오른쪽 에스컬레이터가 고장이 나 있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왼쪽 에스컬레이터로 내려갔다. 내려가니 저 멀리 에스컬레이터 끝 쪽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에스컬레이터 끝에서 내린 한 사람이 오른쪽 에스컬레이터 수리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뒤돌아 보더니 몇 번 두리번거리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뒤도 안 돌아보고 그냥 지나쳤는데 앞선 사람과 똑같이 두리번거리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하나 같이 모두 40대 이상으로 보이는 성인 남자였다. 어찌 그리 똑같은지 썩소가 절로 터져 나왔다.


에스컬레이터 끝에 다다르자 이제 '오른쪽을 돌아봐줘야 할 내 순서인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청개구리과에 속하는 내가 그들처럼 똑같은 행동을 할 리 없지 않은가. 일부러 뒤돌아보지 않고 꿋꿋하게 앞으로 걸어갔다. 나만큼은 좀 달라 보이고 싶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오지랖은 발동한 게 아닌가. 이미 신경은 온통 에스컬레이터 수리하는 현장으로 향하고 있었으니까.


등산복 차림의 할머니들의 문제는 이미 해결되어 시선이 가운데에 머물 필요는 없다. 이제 그대의 오지랖은 오른쪽으로 향할 것인지 왼쪽으로 향할 것인지 선택을 해야만 한다. 어쩔 수 없는 선택에 내몰린 현실은 가혹하지만 그대는 이미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고 있다.


지금은 무엇이 옳은지 보다 그른 것부터 뜯어고쳐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할 때이다. 그곳에는 당신의 오지랖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왜 그런지는 당신이 더 절실히 알 것이다.


분노유발자 미국 국빈 방문을 앞두고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100년 전 역사 때문에 일본이 무조건 무릎을 꿇어야 한단 인식은 받아들일 수 없다."  

이게 말이야 막걸리야. 부디 외면하지 말고 당신의 오지랖을 발동시키길.


작가의 이전글 라면 끓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