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야 한다
주문이 들어왔다.
요구 사항은 라면에 계란과 김을 넣어서 끓여 달라는 거였다. 뭐 이쯤이야 눈감고도 끓일 수 있지 않은가.
일단 냉장고를 열어 계란 2개를 꺼내고 '일회용 구운 김'을 준비했다. 구운 김에 붙어 있는 소금을 감안하여 평소보다 많은 물을 냄비에 담아 가스레인지 위에 올렸다.
가스불이 켜지고 물이 끓는 동안 계란을 집어 들었다. 엊그제 사온 계란의 첫 개봉이었다. 이번에는 구운 계란이 아니겠지? 달걀의 무게감이나 질감은 기존의 구운 계란의 그것과는 달랐다. 젓가락으로 톡톡 깨트리고 투명한 흰자가 드러나는 순간 구운 계란이 아님에 마음이 놓였다.
계란을 밥그릇에 넣고 젓가락으로 휘저었다. 이때 언제까지 휘저어야 하는 걸까? 어머니도 그렇고 아내고 그렇고 내가 하면 더 저어야 한다고 늘 그랬다. 내가 볼 땐 그게 그건데 그만하면 됐다는 시점이 어느 시점인지 당최 알 수가 없다. 정말 궁금하다.
물이 끓을 즈음 건더기 봉지를 뜯어 넣는데 냄비로부터 올라온 뜨거운 김 때문에 일부 건더기가 봉지에 달라붙었다. 손가락을 집어넣어 끝 쪽에 달라붙은 나머지 건더기를 빼서 탈탈 털어 넣었다. 라면 수프도 마찬가지로 뜨거운 김 때문에 일부가 달라붙었다. 한 번에 털 수 있게 설계되면 참 좋을 텐데 수프를 넣을 때마다 항상 이 지점이 골치다.
긴 젓가락을 이용해 면을 수면 위로 숨 쉬게 해 주어 면발을 쫄깃하게 하여 생기를 불어넣었다. 그리고 바로 불을 줄였다. 이제 마지막으로 휘저어진 달걀을 냄비에 부어 확 퍼지는 걸 보고는 바로 불을 껐다. 맛있는 라면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그때 옆에 있던 구운 김이 눈에 들어왔다, 아뿔싸, 김이 빠졌다. 급하게 구운 김을 뜯어 라면 위에 뿌렸지만 이런 걸 원한 건 아니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다시 가스불을 켰다.
라면이 다시 팔팔 끓고 면과 김이 뒤섞이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달걀 때문에 국물이 금세 걸쭉해져 버렸다. 황급히 불을 끄긴 했으나 이미 면발은 생기를 잃어버렸고 완성되었던 라면은 이미 망가져 있었다. 누가 봐도 완벽한 실패였다.
라면 끓이는 게 원래 이렇게 번거롭고 복잡한 일이었던가?
일단 국자로 급하게 2그릇을 만들어 아내에게 가져다줬더니 아니나 다를까 한 입 먹더니 생수를 부었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야 한다는 말이 이런 상황이다. 준비도 완벽하게 되어 있었고 눈 감고도 끓일 수 있었던 라면 아니었던가. 익숙한 일이라도 세심한 주의를 하지 않으면 실패는 순간이다.
라면이 짜서 속도 짠데 마음은 더 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