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자율 출퇴근이라구요?
군대에 있을때, 고참들이 하는 장난중에 가장 끔찍한 장난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개구리 죽이기 였다. 비닐봉지에 개구리 (알록달록한 점이 있는 무당개구리였다) 를 잔뜩 집어넣고는, 작은 모닥불을 피워서 끓이는것이었다. 배가 고파서 훈련중 야생에서 살아남기 위해 먹는 것은 아니였다. 아무 이유 없이 주변에 널린 개구리를 그렇게 고참들은 괴롭혀서 죽이곤 했다. 그런데 불을 피워서 물이 뜨거우면 밖으로 나갈것이라고 생각했던 개구리들은, 봉지를 열어두었는데도 그대로 익어서 죽어버렸다. 물이 점점 뜨거워진 탓에, 이 물이 원래 차가웠던건지 뜨거웠던건지를 알지 못하고 서서히 익어버렸던 것이다.
나는 15년 직장생활을 제조업 회사에서 보냈다. 지금이야 복장이 자유로웠지만, 늘 정해진 넥타이에 정장에 구두를 신었고, 공장에서 근무할 시절에는 아침마다 조회를 하고 국민체조를 했다. 튀는 색깔의 넥타이나 셔츠를 입으면 옥상으로 끌려가 선배들에게 혼나기 일수였다. 연차라는 것을 함부로 쓰기가 무서워서 며칠을 고민하다가 쭈볏거리면서 상사에게 들고 갔었고, 몸이 아파서 쉬어야 할때면 새벽 4시부터 일어나서 고민하다가 간신히 문자를 해서 하루를 쉬었다. 그나마도, 무슨일이 있을까봐, 불이익이 있을까봐 조마조마 하면서.
새로운 파트너들과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두번째 그 사무실에 들어갔을때의 느낌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반바지에 슬리퍼를 끌고 다니는 남자 직원, 넓은 홀에서 자유롭게 대화를 하고, 창밖의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하고, 호호 불어가며 차를 마시기도 하는 모습. 너무도 자유롭고 편안한 모습이었다. 미팅을 하기 전에 나도 그 홀에서 20분을 기다렸고, 자유롭고 여유로운 모습들을 한참동안 바라보면서, 나와 우리 동료들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휴게실에는 각종 물품들이 쌓여있고, 쇼파는 있지만 음침하고 어두컴컴하다. 수시로 문이 열릴때마다 상사나 고참이 들어올까봐 흠칫 놀란다. 근무시간에 잠깐 쇼파에 앉아 있으면 그걸 보고 회사에 안좋은 말이 돌아 다닌다. 근무시간에 농땡이 피운다고. 도시락을 싸온 직원들은 자리에서 먹고 책상에 엎어져서 쉬거나, 회의실에서 식사를 한다. 1층에 카페가 있지만 돈을 주고 음료를 시키지 않으면 앉아 있기가 눈치보이고, 전화를 할라 치면 복도에서 소근거리거나 길거리로 나가야 한다. 어떤 이들은 화장실에서 문을 잠가놓고 꾸벅꾸벅 졸기도 한다.
" 부장님 오래기다리셨죠?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
" 네 감사합니다. 여기 홀에 있는 직원들을 관찰하다보니 시간가는 줄 몰랐네요 "
" 그래요? 부장님 회사와는 분위기가 많이 다른가 봅니다. 커피는 한잔 드셨어요? "
" 커피를 그냥 제가 가서 먹어도 되나요? 왠지 누군가 허락받고 마셔야 할것 같은데 누구한테 말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있었네요 "
" 언제든지 편하게 이용하셔도 됩니다. 누구한테 허락받을 필요 없습니다. 다들 본인이게 집중하고 있어서 다른사람을 잘 신경쓰지 않거든요 "
그러고 보니, 이 넓은 사무실에 들어왔지만, 내가 누군지, 왜 왔는지를 신경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기는 여러 스타트업 회사들이 모여 있는 공용 오피스였고, 서로가 서로를 신경쓰지 않는다. 오직 내 일과 내 동료와 함께하는 일에만 신경을 쓸 뿐이었다.
회의실에 들어가니, 인상적인 문구가 써있었다. 회의실 333 캠패인
필요정보 최소 3시간 전 공유
논의자료 최소 30분 전 숙지
회의시작 최소 3분 전 착석
마냥 자유로운 분위기에서도 동료나 일을 위해서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은 살아 움직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회의를 시작하기 전 가벼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하지만 이 대화 중에 나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 오늘은 몸이 좀 피곤해서 1시쯤 사무실에 도착했습니다."
" 네? 1시에요? 그럼 반차를 쓰신건가요? "
" 아뇨. 그냥 집에서 일하고, 1시에 사무실에 나왔습니다 "
" 그럼 아침에 팀장님께 혼좀 나셨겠네요. 갑자기 1시에 출근한다고 하면 "
" 저희는 자율 출퇴근제라서, 그런걸 승인 받지 않습니다 "
" 그럼 연차는요? "
" 연차 개념도 없어요. 그냥 쉬고 싶으면 며칠이고 쉬어도 됩니다 "
출퇴근 시간도 내마음 대로고, 연차도 내마음대로라고? 정말이지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회사가 돌아가나? 직원들이 제대로 일하는지 안하는지는 어떻게 확인할 수 있지? 잠깐만 자리를 비워도 얘 어디갔니를 시전했던 내 입장에서는 충격의 연속이었다.
무엇보다, 이 사람들과 일하는 속도가 나와 맞을까가 걱정되었고, 대충대충, 설렁설렁 일하면 결국 결과가 엉망이지 않을까를 걱정하게 되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무언가 숭숭 구멍뚤린 허술한 결과가 나올것만 같아 내심 불안했다. 하지만 막상 회의를 시작하고 준비한 자료를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지난번 회의의 내용을 깔끔히 정리했고, 명확한 쟁점을 도출했다. 우리가 다같이 어떤것을 고민하고 어떤 식으로 해법을 찾아야 하는지를 체계적으로 접근했고, 이 과정에서 서로에게 부담과 압박을 은연중이라도 내비치는 법이 없었다. 너무 촘촘했다. 어떻게 이런게 가능할까?
'어떻게 이런게 가능할까' 라는 물음 자체가 잘못되었다. 완전자율출퇴근과 일의 질,성과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규율과 제도로 회사의 구성원을 묶어서, 내가 보는 앞에서, 다같이 일률적으로 튀지않게 앉아서, 조용히 묵묵하게 일을 해야 마음이 편안한 꼰대 부장의 머리속 구조가 잘못된 것이었다.
중요한건 제도나 규율이 아니라, ' 내가 이 일에 대해서 얼마만큼 깊이, 진심으로 고민했는가 ' 가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다. 누가 시키니 시키는 대로 한다면 일의 깊이가 나올 수 없다. 왜냐하면, 결국 시키는 사람의 의도를 100%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한사람의 마음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다 보면 구성원들은 상사의 의도와 룰에 순응한다는 태도를 과장되게 보여주는 것을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인식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상사의 지시를 빌미로 편한 방법을 찾게 되고 핑계를 대게 되며, 결국에는 수많은 상사의 지시 버전이 조직에 돌아다니고, 각각의 버전을 깃발삼아 삼삼오오 모여서 서로 싸우고 갈등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내 일에 대해서 깊게 고민하게 되면, 자연스러운 체계를 갖출 수 있다. 내가 나를 설득하기 위해, 이 일이 왜 필요한 것인지 부터 자문하게 된다. 이 일이 필요하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고, 누구에게 도움을 구해야 하며, 어떤 순서나 체계로 이 일을 해결해 나갈지를 계획하고 스스로 실행하게 된다. 내가 고민하고 내가 결정한 것이기 때문에,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다. 다만, 나 혼자 다른 방향으로 가면 동료의 일에 방해가 되거나 합의 시너지가 나지 않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내 일에 대한 진척사항을 다양한 협업 도구로 공유해서 피드백 하고 피드백을 받는다.
완전자율출퇴근제는, 내 일에 대해서 자유롭게 결정하고 판단할 수 있는 직원들을 위해 회사에서 제공하는 편의이며, 그 성과를 극도로 끌어올리기 위한 도구였던 것이다. 여태껏 내가 생각했던 정시출근 정시퇴근 집중근무시간 준수, 연차사용승인 과 같이 당연히 지켜야한다고 생각했던 규범들은, 20여년전 내 고참들이 죽였던 개구리를 연상케 했다. 극단적인 생각일 수 있지만, 결국 나도 서서히 끓어오르는 물에서 당연하게 그 환경을 받아들였던 개구리는 아니였을까?
내가 그 개구리가 틀림없다고 느낀 그 시점부터, 나는 끓는 물을 나오기 시작했다고 믿고 있다. 15년이나 그 물에 있었으니, 그것이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의 전부였으니, 물 밖으로 나오는 데는 무척 힘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어려움들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