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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접지몽 Oct 01. 2023

멀쩡해 보여도 버려야 할것

우리집 거실에는 산지 10년이 된 쇼파가 있다.


아내와 결혼할때 장만한 살림 중 하나였다. 비싸고 멋있는 쇼파를 여러 가구점에서 많이 봐왔지만, 결국 언젠가는 바닥이 꺼지고 가죽도 헤어질 일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광주에 있는 창고형 매장에서 산 쇼파였다. 싼 값에 좋은 쇼파를 사서 우리는 너무 기분이 좋았고 그 뒤로 항상 이녀석은 퇴근을 하고 집에 오면 제일 먼저 몸을 던지는 제일의 안식처였다. 이 쇼파에 같이 앉는 사람이 세명이 될때까지, 이사를 세번 다닐때까지 계속 함께할 것만 같았는데, 아이가 쇼파에서 방방 뛰던 어느날 이 녀석의 가죽이 북 찢어져 버렸다.


그 뒤로 버릴까를 한참 고민했지만, 가격도 비싸고, 다른데 들어갈 돈도 많은데다, 험하게 노는 아이의 영향으로 새로 들어오는 쇼파인들 무사할까 싶어서 계속 버리는 것을 망설였다. 그러다가, 자꾸만 좁아지는 집안살림이 눈에 거슬리던 연휴의 어느날밤에 아내와 급 의기투합해서 쇼파를 치우기로 했다. 이삿짐을 나를때 창문으로 날랐던 덩치 큰 이 녀석을 어떻게 들고 내려갈까를 한참 계산했다. 길이와 높이를 재고, 나가야 할 문의 넓이를 재셔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우리와 함께 내내 누워있던 녀석을 세워서 좁은 빌라 3층의 계단을 천천히 끌고 내려왔다. 엘레베이터도 없는 좁은 통로를 아내와 낑낑거리면서 겨우 1층에 다다랐을때, 버릴때의 서운함은 온데간데 없고, 드디어 큰 것을 하나 해냈다는 성취감이 온 몸을 휘감았다. 뻘뻘흘린 땀을 닦아내고 다시 계단을 오르려다 보니, 쇼파가 스친 바닥이며 벽에 녹아내린 인조쇼파가죽의 흔척이 남아있었다.


가죽이 조금 찢어진것을 빼고는 겉이 멀쩡했던 쇼파가, 막상 들어내고 보내 곳곳의 가죽이 녹아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 손에도 끈적끈적한 녀석의 잔해가 남아 있다. 너무 멀쩡한 것을 버리기로 결정한 것은 아닌가를 고민했던 내게 이 녀석은 마지막에 헤어짐의 후련함을 선사하기로 했나보다. 우리가 버리기로  결정하기 한참 전 부터 이 쇼파의 가죽은 녹아내리고 있었고, 아이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서라도 진작에 처분했어야 하는 것이었다. 녀석을 1층에 잘 세워두고 올라오면서, 문득 내 주변에 그런 것들은 없는가를 생각해 본다. 비싼돈을 들여서 샀지만 요새는 잘 타지 않고 모셔둔 산악자전거, VR 의 신세계에 빠지게 해주었지만 결국 호환되는 핸드폰이 망가져버려 쓸수 없게 된 VR 글라스, 부팅이 되는지 알 수 없는 옛날 노트북, 살이 한참 빠져버려서 입을 수 없지만 비싸게 주고 사서 버릴 수 없는 옷들. 다들 멀쩡해 보이지만 더이상 쓸모가 없어서 버려야 할 것들이다.


쇼파처럼 덩치가 크지 않아서 눈에 띄지 않지만, 내 손길이 미치지 않은지 수년이 넘은 많은 물건들이 내 방, 내 집에서 불필요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 것들이 점점 쌓여서, 나를 옥죄고 불편하게 하고 답답하게 한다. 이런 물건들 처럼, 내 마음속의 불필요한 생각들과 지나간 인연, 오래된 선입견들이 내 마음을 차지하고 나를 괴롭히는 것은 없을까 생각해본다. 멀쩡해 보이지만 버려야 할 것들은 비단 물건 뿐만은 아닌것 같다. 늘 새로운 마음가짐, 새로운 생각, 새로운 지식만 중요하게 생각했던 일상이었다. 그 시간 속에서 꼭 필요한 것이 버리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녀석이 차지했던 공간이 엄청 넓어 보인다. 우리는 다시 이 공간을 무엇으로 채울 것 같다. 버림이 없이 채우는 새로운 것은 나를 옥죄이지만, 버림 후에 채우는 새로운 것은 나를 설레게 하고 기분 좋게 한다. 앞으로의 내 삶도 새로운 것을 채우기 위해 버리는 삶의 연속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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