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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주 Mar 22. 2024

남편 없이 시댁에 놀러 갔다.




아이의 하원시간에 맞춰 집을 나섰다. 어린이집 차량에서 내리자마자 나에게 뛰어온 아들은 인사도 하지 않고 '아이스크림'을 외쳐댔다. 등원할 때 아이스크림 사달라 계속하길래, 내가 마치면 사줄게라고 한걸 일곱 시간 동안 기억하고 있었던 거다.


얼마 전 다쳐 상처 난 아이의 얼굴을 보니

괜히 안쓰러워 조용히 아이스크림 가게를 향했다.


사줘야지, 어쩌겠는가-




날씨가 좋아서 그런가.

날 바라보는 아이의 시선이

마주하는 우리의 눈빛이

아무 말 없이 바라만 보기만 해도 새어 나오는 웃음과 춥지 않은 날씨마저

모든 게 따뜻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만 가득 차 바쁘기만 했을 땐 잘 보이지 않던 것들.


한낮의 따쓰함을 안겨주는 아들이나

퇴근 후 나에게 고생했어라며

꽉 안아주는 남편의 따뜻함 같은 것들.

날 위한 삶을 사는 것만이 멋이라 생각했는데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사랑을 듬뿍 주는 삶,

역시 멋이 흘러넘치는 것 같다.


결국 그게 날 위한 삶인 것 같기도 하고-





얼마 전, 남편 없이 시댁에 여행을 갔다.


시댁은 경북이고 우리는 부산에 살고 있어 자주 만나지 못하는데, 쉬게 되며 시간이 많이 생기자 갑자기 시부모님이 보고 싶어 져서 아이와 ktx를 타고 갔다. 2박 3일의 일정으로 떠난 여행.



남편과 같이 가려면 뭐 같이 갈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 날은 남편이 와서

함께 집에 돌아오기로 했으니 그 정도면 됐다.



시댁으로 떠나는 여행 중 가장 걱정되던 건 ktx를 타고 가게 될 30개월의 아이였다. 아이와 무사히 가기 위해 간식도 야무지게 챙겼고, 일부러 아이의 낮잠시간에 맞춰서 기차표를 끊기도 했다. 만반의 준비 덕분인지 아이는 다행히 ktx에서 조용히 있어주었고, 금방 역에 도착했다.


역에서 내리자마자 반겨주는

다리고 계시던 시부모님.



처음 결혼했을 땐 서로 잘 몰랐으니깐 어색했고, 결혼한 얼마 안 됐을 서로 조심하려 했으니 어색했고, 아이를 낳고 결혼 6년 차가 된 지금은 어색함이 많이 가셨다. 완전히 편하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 아주 조금의 어색함이 남아있는 상태다.


근데 약간의 어색함이 난 나쁘지 않다. 어색함 속에서도 편하게 지내려고 노력하고 있는 우리가 좋았다.



난 시부모님도 좋아하고,

시댁 가는 건 좋아하지만

이상하게 명절은 여전히 싫다.


시댁에서만 시간을 보내는 명절이라면 3일이고 4일이고 있을 있을 것 같은데, 많은 가족들이 모이다 보니 나에겐 아직 어렵고 버거운 일들이 있다. 내가 조금 더 나이가 먹고, 남편처럼 솔직하게 사람을 대하는 법을 터득하게 된다면 아마 명절마저도 즐길 수 있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요즘은 셀프효도가 대세다. 결혼을 하면 각자 효도를 한다. 충분히 이해 가는 말이기도 하고, 나 역시 처음엔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었으니까 그렇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27의 나이에 결혼해  셀프효도가 당연하다 생각했던 나의 생각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깐. 남편 아니었다면 나도 아직 셀프효도가 답이라 말하고 있었을 거다.


우리 엄마아빠와 진짜 아들처럼 잘 지내는 남편. 남편을 보고 있으면 어쩜 저우리 가족들과 잘 지내는지 싶어 신기했던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나 없이 엄마랑 둘이 외식도 하러 가고, 아빠랑 낚시도 함께 하는 그의 모습에 우리 부모님과 어쩜 그리 잘 지내느냐고, 불편하지 않냐고 물어봤었는데 되려 남편은 나에게 왜 불편하냐고 물어봤다.


- 그냥 영주 부모님인데, 불편할게 뭐 있어.


맞네. 나도 그냥 남편의 부모님이라 생각하면 되는 거였다. 너무 어렵게 생각했나 보다.



그렇게 나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남편처럼 편하게 생각하기 시작하자 시댁이라 생각할 때 느껴지던 거리감은 줄어들었고, 시부모님은 그냥 사랑하는 사람의 부모님이 되었다. 나만의 심리적 거리감이 줄어드니 물리적으로도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 건 당연한 수순.



내가 잘 보이려고만 했을 때는

어떻게 해도 불편했던 시댁

잘 보이려고 하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니


그냥 함께 하는 시간 자체를 즐길 수 있는

남편의 부모님이 되었다.



이제는 남편 없이도 시댁에 가는 용기가 생겼고, 용기 덕에 맛있는 음식도 많이 얻어먹고 즐거운 여행 다녀올 수 있게 되었다.  시간 동안 아이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시간을 보내며 애정과 관심을 듬뿍 받았고, 삼촌에게도 장난감을 선물 받으며 거운 시간을 보낼 다.



아이는 2박 3일 동안 너무 즐거워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이 생긴 남편도 즐거워했다.



모두가 즐거워한 거다.




점점 친정엄마가 던 말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늘 나에게 해줬던 .

좋은 게 좋은 거야, 그냥 그렇게 생각해.




맞네.

결국 좋은 게 좋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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