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기념으로 아이와 무엇을 할까를 고민하다 그동안 해보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 시도도 하지 못했던 캠핑을 떠나기로 했다. 우리 부부가 하고 싶은 건데 어린이날을 핑계로 떠나는 건지도 모를 첫 캠핑.
캠핑을 떠나기 전 어떤 텐트를 사야 하는지 도저히 감이 오질 않았다. 계속해서 알아보다가 일단 중고로 괜찮아 보이는 텐트를 구매해볼까 싶어, 당근에 들어가 텐트를 검색해 보았다. 정말 수많은 텐트들이 쏟아져 나왔고 모양도 가지각색, 색상에 크기도 모두 다른, 어느 것 하나 비슷해 보이지 않는 텐트들이 스크롤을 한참 내리게 만들었다.
그러다 눈에 띈 텐트. '스노라인 프라임디럭스플러스' 텐트를 저렴하게 팔고 있는 분이 계셔서 우리의 첫 텐트로 결정하였다. 이 텐트는 크기가 아주 크고, 안에 설치를 할 수 있는 이너텐트가 있어 잠자는 공간이 따로 구분되는 점, 그리고 튼튼해 보이는 폴대를 가지고 있었다. 일단 써보고, 몇 번 캠핑 다니다 보면 우리에게 맞는 텐트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첫 캠핑을 결정하고 부랴부랴 구매한 텐트와 더불어 예약한 캠핑장. 나라에서 운영 중인 휴양림들의 캠핑사이트는 가격이 저렴한 편이라 예약이 빨리 차는데, 어린이날 비예보가 뜨자 조금씩 취소가 된 덕분에 운 좋게 예약 가능한 곳이 있었다. 운 좋은 거 맞겠지?
설레는 마음으로 떠난 캠핑 당일날 아침.
우리만 가기에는 걱정이 되기도 하고, 조금 무섭기도 해서 젊은 시절 여기저기 캠핑을 많이 다닌 부모님에게 같이 가는 게 어떻겠냐 여쭤보니 흔쾌히 함께 가겠다고 하셨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놀러 간단 사실에 잔뜩 신난 아이와 괜히 오랜만에 부모님과 함께 떠나는 캠핑에 설레기 시작한 나. 비에 대한 걱정은 어느새 멀리 날아가 버리고, 우비 입고 텐트 치는 건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까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금방 치면 되잖아!
작은 우리 차 대신 아빠의 큰 스타렉스를 타고 출발!
우리 승용차보다는 좌석이 불편하겠지만, 짐이 많기도 하고 비가 와서 젖을 짐들을 생각하니 넓은 트렁크를 가진 스타렉스가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빠의 차를 타고 떠났다.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캠핑장.
가는 길 중간 휴게소에 들러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기로 했는데, 비가 오는데도 휴게소에는 사람이 넘쳤다. 이 비 오는 날 놀러 가는 게 우리뿐만이 아니라니. 사람이 많아 휴게소 이용에 불편함이 있었지만, 괜히 동지들이 생긴 기분에 위안이 되기도 했다.
우리 재밌게 놀아봐요. 파이팅!
생각보다 금방 도착한 자연휴양림에는 연박 중인지 이미 텐트 속에서 캠핑을 즐기는 사람들도 꽤나 있었고, 우리와 비슷한 시간대에 도착해 텐트를 치기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빠가 챙겨 온 우비를 입으며 눈이 마주친 남편과 나는 눈빛을 주고받았다.
'잘해보자.'라는 결연한 다짐의 눈빛을-
생각보다 어려웠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텐트를 쳤다. 우선 폴대를 끼워 텐트를 자립시켜 주는 작업을 했는데, 이 작업만 끝나면 텐트가 세워지기 때문에 80%는 끝났다고 볼 수 있다. 텐트를 세우고 나면 내부에서 비를 피하며 나머지 작업들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아빠와 남편, 그리고 나는 말 한마디 없이 집중하였고 그 결과 텐트는 금방 그럴싸한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세워진 텐트 안으로 이너텐트를 설치하고, 가져온 짐들을 옮기니 딱 1시간이 걸렸다.
첫 피칭이었는데 비가 왔음에도 이 정도면 꽤나 잘한 것 같다며 만족하는 나와 달리 남편은 조금 더 잘할 수 있었는데라는 아쉬움을 표현했다. 같은 일을 했는데도 사람은 이렇게 생각이 다르다. 텐트피칭뿐만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보통 우리 둘은 다르게 결과를 받아들인다.
쉽게 만족하는 나와
조금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는 남편.
아쉬움을 토로하는 남편에게
'그래도 잘했어.'라고 말하는 나와
'다음엔 더 잘해야겠다.'라고 대답하는 남편.
뭐가 더 낫다고 할 수 없는 개인의 차이인데 이 차이 덕분에 우리가 덜 싸우는 게 아닐까 싶다.
나름 첫 캠핑 온다고 이것저것 샀다. '미니멀 캠핑을 해야지!'라는 다짐을 했지만, 혼자 오는 캠핑이 아닌 가족이 함께 오는 캠핑이다 보니 조금 더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캠핑 온다고 구매한 물건들은 이불과 베개, 전기장판과 테이블 같은 것들인데 이 물건들 덕분에 밤새 따뜻하게 잠을 잘 수 있었고,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캠핑을 다니기로 한 이상 물건을 아예 사지 않는 건 힘든 일인 것 같다.
잘 관리해서 오래오래 써야지.
어린이날이라고 도하를 위한 척 모두를 데리고 왔는데 비가 와서 뭐 대단한 거 하지도 못하고 텐트 안에서만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집에서 놀던 장난감으로 놀고 있는 아들. 그럼에도 뭐가 그리 신나는지 아이의 웃음소리는 끝이 없었고, 몸이 좀 힘드실 수도 있는데도 엄마 아빠는 한참 수다를 떨었다. 특히 아빠는 감성 있다며 꽤나 좋아하셨다. 텐트 치느라 무리한 남편은 어느새 단잠에 빠졌는데, 오랜만에 쉬는 휴일에도 결국 힘을 쓰게 만드는 것 같아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자는 게 큰 부자가 되겠다는 꿈보다는 쉽잖아. 그런데 왜 이렇게 어렵지? 일단 난 내가 뭘 좋아하는지조차 잘 모르겠는데. 뭘 좋아하는지 알아야 시작이라도 할 텐데 문제는 그걸 알아낼 기회도, 시간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잠자는 남편 옆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부모님의 이야깃소리와 텐트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챙겨 온 책을 읽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 수는 없는 게 인생이라 했던가. 요즘 내가 많이 생각했던 부분에 관한 내용이라 한참 동안 머문 페이지. 나에게는 '일'이라는 게 자부심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의 자존감을 헤치지 않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에게 가끔은 뿌듯함을 안겨주기도 하고, 모르는 부분을 더 공부해보고 싶게도 만드는 일. 좋아한다는 마음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좋아하는 것들로만 가득 채운 인생을 살아가기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그런 순간들을 많이 만들면 어느새 내 삶 속에는 즐거운 기운들이 가득 차 있지 않을까.
텐트 속에서의 하루는 마냥 좋았다. 고기를 구워주는 엄마도 너무 좋았고, 맛있게 먹고 있는 가족들도 너무 좋았고, 설거지를 한다고 왔다 갔다 하고 있는 순간조차도 너무 좋았다.
이른 저녁을 먹은 우리는 챙겨 온 카드로
넷이서 게임을 하기도 했고
밤새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생각보다 엄마 아빠는 젊었을 때 많이 놀았던 것 같다.. ㅎ;;)
간밤에 비가 많이 내려 괜한 걱정이 든 엄마 아빠는 잠을 잘 자지 못했다고 하는데, 나는 참 잘 잤다.
왼쪽에는 남편 손, 오른손에는 아이 손을 잡고, 옅게 들리는 엄마의 숨소리와 아빠의 코골이 소리.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로 채워진 공간에서 오래간만에 편안히 잠을 잘 수 있었다. 텐트 위로 떨어지는 거센 빗소리는 고요한 자장가가 되어 잘 자라고 노래를 불러주는 것 같았고, 간간이 들리는 아빠의 코골이 소리는 아빠도 잘 자고 있으니 너도 잘 자라고 이야기해주는 것 같았다. 잠을 뒤척이다가도 나의 손을 잡고 이내 잠이 잘 드는 아들의 몸부림은 잘 자라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듯했다.
두 번 정도만 캠핑을 가면 뽕을 뽑는 거라며 첫 캠핑에 50만이나 썼다. 캠핑을 오기 전에는 돈이 좀 아깝기도 했고, 이 돈의 가치가 있을까 했는데 하룻밤 잘 자고 일어나니 다음 캠핑을 어디로 갈지를 생각하고 있던 나.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좋다'소리를 입에 달고 사는 걸 지켜보는 마음은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어제 읽은 책의 구절이 계속해서 떠오른다. 하루종일 '좋다' '재밌다'를 연신 남발하던 나를 보던 남편의 마음은 어땠을까.
첫 캠핑 전 조금 걱정을 하기도 했던 남편이 카카오톡으로 사고 싶은 캠핑용품들을 보내왔다. 어쩐지 남편도 비슷한 마음인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빨리 2주가 지났으면 좋겠다, 얼른 통영에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