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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후루 Mar 25. 2022

그가 서울역에 가는 이유

지완은 시간이 날 때면, 서울역에 간다. 여행을 가기 위한 건 아니다.


그의 은밀한 취미를 위해서다. 노숙자들을 구경하는 것.


일요일인 오늘도 지완은 서울역을 향한다.


그는 먼저 서울역의 스타벅스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테이크 아웃한다.


비강을 통해 풍겨오는 커피의 바디감을 즐기면서 노숙자들을 바라본다.


그들이 불쾌하지 않도록 충분히 거리를 두고서. 지완은 자신이 무례한 사람은 아니라고 자부한다.


흐뭇한 미소와 함께 지완은 비둘기처럼 때에 찌들고 소주에 물든 그들의 붉고 시커먼 얼굴을 살핀다.


계절에 상관없이 뼛속까지 시린 몸을 감싸기 위해, 주워 입은 옷들. 어디 헌 옷 수거함에서 훔친 것이라 지완은 추측한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지완은 큰 위안과 힘을 얻는다.


‘그래. 저렇게 불행한 밑바닥 인생들이 있는데 난 참 행복하구나.’


회사에 야근이 많아서 당장 때려치우고 싶거나, 아파트값이 오르기만 해서 절망적일 때. 

유튜브나 인스타에서 돈 자랑하는 인간들을 볼 때.

주식이 떨어지거나, 주차하다가 차를 긁었을 때.

노숙자들을 보는 건 지완에게 특히 위로가 된다. 


‘그래 그런 일들은 별일 아니구나.’


‘저런 인생도 있는데, 난 왜 그런 작은 일들에 짜증 내고 화를 냈던 걸까.’


그는 그렇게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 


‘어찌 보면 저들이 바로 인생 선생님이야.’


‘정부에서 노숙자들을 내버려 두는 데에는 이유가 있어.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주는 고마운 분들이니까.’


‘교회나 절에 갈 필요가 없지. 남의 불행만큼 위로가 되는 게 어딨어.‘


‘내일 출근길은 조금 상쾌해질 것 같아.’


그런 생각에 빠져있는데, 누군가 지완의 어깨를 툭툭 쳤다.


흠칫 놀라며 뒤를 돌아보니 처음 보는 남자가 서 있었다. 


아주 잘생긴 남자였다. 지완처럼 삼십 대 중반 정도로 보였다. 포마드를 발라 정돈한 머리에 고급스러운 광택의 캐시미어 코트를 말쑥하게 차려입고 있었다. 한 손에는 스타벅스 커피가 들려있었다.


“혹시 그쪽도?”


남자는 한쪽 입꼬리가 올라가는 여유로운 미소로 지완에게 물었다.


“네?”


지완은 이 남자가 전에 본 적 있는 사람인지 떠올리려고 애써봤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 저랑 같은 취미를 가진 분인가 해서요.”


남자는 다 안다는 듯한 눈빛과 함께 턱을 살짝 들어 노숙자들 쪽을 가리켰다. 


“취미라니… 무슨…”


“저 노숙자들이요. 구경하는 거잖아요. 그쪽 몇 번 봤어요. 지난주에도 왔었죠? 사실 저도 가끔 오거든요. 저 사람들 관찰하러.”


“아, 저는 그런 게 아니라 누구 기다리는 건데.”


지완은 뭔가 부끄러운 기분이 들어 변명을 늘어놓았다.


“아이고. 괜찮아요. 그렇게 숨기실 것 없어요. 저도 좋아한다니까요. 나쁜 일도 아닌데요. 뭐 이렇게 잠깐 커피 마시면서 구경하면 위안도 얻고 기분전환도 되잖아요. 전 그쪽 분도 저랑 같은 취미가 있는 것 같아서 말이나 나눠볼까 한 거예요. 공감대가 있을 것 같아서.”


“무슨 오해가 있으신 것 같네요. 전 그런 취미 없습니다. 약속이 있어서 이만 가볼게요.”


지완은 귀가 빨개진 채로 황급히 남자에게 등을 돌리고 걸어갔다.


“하하하. 다음 주에도 여기서 봐요!”


지완의 등 뒤로 남자의 시원한 목소리가 들렸다.


지완은 지하철역을 향해 빠르게 걸으며, 다음 주는 용산역으로 가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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