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안데르탈인이 되고 난 뒤...

by 황금 엄마
네안데르탈인이 되어버린 나의 주부생활


인간이 진화하는 존재라고 가정한다면, 나는 현재 진화가 아닌 퇴화 중이다.

20대 젊은 시절의 내 ‘뇌’는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냈을 것이나, 40대를 넘기고 아이 둘을 낳은 지금의 내 ‘뇌’는 네안데르탈인의 뇌처럼 퇴보했음에 틀림이 없다.


출산 후에 나는 간단한 계획을 세우고 계산하는 것, 몇 초 전에 일도 까먹는 기억력감퇴, 감정 조절 불능자 등 뇌를 활용하는 모든 영역이 쇠퇴하였다.

주변의 엄마들이 출산 직후에는 그런 일들을 많이 겪는다며 위로했지만, 발달이 후퇴한 뇌를 들고 ‘육아’라는 고된 노동에 돌입한 나는 매 순간이 곤혹스러웠다.


그중에 나의 뇌가 퇴화되고 있음을 확신하는 사건이 벌어졌는데, 그건 내가 바로 현관문을 활짝 열어두고 외출을 한 일이었다. 우리 집 현관은 활짝 열린 채로 몇 시간씩 방치되어 있었고 그 순간 모두의 집이 되어 버렸다.


뒤늦게 이를 알게 된 나는 절망했다. 자잘한 실수들은 곧잘 있었지만, 이렇게 뜨악할 만한 실수는 그래도 거의 없었는데 내 마지노선이 기어코 무너진 듯한 기분이었다. 나는 주저앉아서 아이처럼 한 시간을 엉엉 울었다.


그러고 나서 나는 인정해야 했다. 내가 호모사피엔스에서 네안데르탈인이 되었음을…


네안데르탈인이 되고 난 뒤 나는 호모사피엔스의 지식, 세련됨, 우아함을 버리고 네안데르탈인의 생존 본능에 충실했다. 나의 생존과 육아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떻게 하면 집안일을 빨리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까. 집에서 어떻게 맛있는 밥을 해서 먹을 수 있을까. 아이를 어떻게 다치지 않고 키워낼 것인가. 이는 흡사 동굴에 살던 네안데르탈인이 생존과 자녀 양육에 집중하는 그 모습이었다.


이렇듯 내가 다른 인류가 되었음을 인정하고 이에 적응하는 것은 내 주부 생활에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어떻게 보면 퇴보이고 다르게 보면 적응인데 이 모습이 어떻든 난 내가 처한 상황을 더 유연하게 처리할 수 있는 여유가 조금은 생겼다.


네안데르탈인의 뇌는 호모사피엔스의 뇌보다는 컸다고 한다. 아마도 동굴에서 생활하면서 수렵 생활을 하는 일에 큰 체격이 필요했을 것이고 이에 맞춰 뇌도 커졌을 것이다. 나도 집에서 대부분의 생활을 하며 아이를 키우게 되었다. 나의 생활은 기존의 생활과 많이 변했다. 집안의 주부로 살아가기에는, 아이를 키워내는 일에는 어찌 보면 네안데르탈인의 본능이 더 도움이 될 때도 있는 것 같다.

뇌의 가지를 쳐버리고 본능에 집중하면 좀 더 마음이 편안하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네안데르탈인으로 적응하며 살아가는 생활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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