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순간이 감사했던 성심당 투어
신랑한테 자주 하는 말. "성심당 빵 먹으러 대전 가고 싶어." 김태훈 작가님이 쓴 『우리가 사랑한 빵집, 성심당』 을 읽기 전까지는 상상도 못 할 말이었다. 책 읽는 모임 비밀모책, 우리 대원들은 성심당을 직접 보고 싶은 마음 하나로 토요일 이른 아침부터 대전으로 달려갔다. 김 작가님과 작년 2월 북토크 자리에서 갑작스럽게 성사된 투어였다. 성심당 스토리를 알고 나니 5개월 임산부가 아이랑 둘이 당일치기를 자처할 정도로 설렘이 가득 찼다. 태린이를 데리고 나가니 신랑한테 아쉬운 소리를 할 필요도 없었다.
태린이랑 나는 아침 일찍 근처 사는 윤주 언니네 차를 타고 함께 움직였다. 그 차에 카시트도 싣고 태린이를 앉혔다. 태린이는 앞뒤 양옆으로도 널찍한 차가 마음에 들었는지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노래를 흥얼거리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도 모르면서 마냥 좋아했다. 입덧이 한창이었던 나는 차 안에서 토할 뻔한 위기가 있었지만 대전 땅에 발을 딛는 순간부턴 취재하고 다니던 젊은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태린이는 차에서 보채지도 않고 잘 잤고, 하루 종일 운전을 맡아준 기형부(윤주 언니 남편) 손을 잡고 엄마 없이도 잘 다녔다. 어디든 나가야 기분 좋은 건 모녀 사이가 참 닮았구나 싶다. 아이라고, 임산부라고 걸음마다 배려해주는 멤버들 덕분에 성심당을 더 깊이 느끼고 올 수 있었다.
'모든 이가 다 좋게 여기는 일을 하도록 하십시오.' 성심당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이 글귀는 임영진 대표 부부가 포클라레 운동 창시자인 끼아라 루빅에게 조언을 받은 문구다. 여기서 '모든 이'는 고객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직원도 거래 업체도 성심당을 찾지 않는 대전시민 등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 모두를 다양하게 포함하고 있다. 이 문구를 경영이념으로 삼은 성심당은 그 모두를 위해 빵집 분위기도 집처럼 편안한 분위기로 바꿨다. 기존 대리석 바닥 대신 나무로 된 바닥을 깔아 따뜻한 가정집 같은 빵집을 연출했다. 가난한 이들이 주눅 들지 않으면서 동시에 부유한 이도 초라하게 느끼지 않게,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모두가 좋아하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은 성심당 운영 하나하나에 묻어 있다.
우리는 서울과 일산에서 세 팀으로 나뉘어 대전으로 왔는데 우리 팀이 일찍 도착해 김미진 이사님과 미팅 시간을 가졌다. 어찌 보면 지나가던 나그네일 우리인데 그녀 미소에선 반가움부터 풍겼다. 책 속에서 느낀 그대로 '큰사람' 같았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책에 있든 없든 어떤 스토리도 정성스럽게 풀어주셨다. 이사님은 "관계 속 부활(인연 맺은 사람들이 베푼 사랑 덕에 일으킨 힘)"을 경험했기에 은인을 위한 기도를 많이 드린다고 했다. 눈빛이나 손짓에도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느껴져서 바로 옆에 앉은 이사님을 계속 바라보게 됐다. 직원들이 어찌하여 성심당을 굳게 지켜왔는지 알 것 같다. 스친 인연도 소중히 여긴다는 그녀는 우리에게 성심당 계단에 장식할 머그컵에 글씨를 써달라고 요청했다.
다음은 나의 질문
ㅇ 창업주인 시아버님으로부터 이어받은 정신과 신앙심 중 무엇이 성심당 경영에 더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하는가
- 성당은 우리에게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왔다. 일상에 젖어 있는 신앙 덕분에 경제적 부와 같은 가치 앞에서도 흔들림이 없었다.
- 은인을 위한 기도를 많이 드리게 된다. 김태훈 작가처럼 수호천사 같은 존재들이 불쑥 나타나더라. 이렇게 만났던 인연들(우리 대원들) 사이에서도 그랬다. 성심당 일에 자발적으로 관여해주시는 분들이 많아 감사하다. 60주년 행사를 앞두고 더 많이 느꼈다. 이럴 때 관계가 부활했다고 생각했다. 보이지 않는 강렬한 힘을 믿는다.
ㅇ 힘들었던 시기를 어떻게 이겨냈나
- 성심당이 가장 잘 됐던 시기, 80년대 만들었던 빵들을 다시 떠올렸다. 다들 세련된 빵들을 추진하려 할 때 같은 방향으로 가려던 마음을 접고 기본으로 돌아가려 했다. 키아라 루빅과 성서 말씀을 참고해 성심당스러운 것을 찾았다.
- 다른 프랜차이즈에서 할 수 없는 것을 하려 노력했다. 예를 들면 재고가 생길지라도 뜨거운 빵을 계속 진열대에 올리거나 먹고 싶은 빵을 넉넉하게 먹도록 시식 빵도 큼지막하게 썰었다. 직원들이 남은 빵을 묶어 할인 판매하는 방법도 추천했지만 대표님이 원하지 않았다. 따뜻하고 신선한 빵을 공급하길 바라서다.
사람들이 입구부터 길게 줄 서 있고 가게 안은 가득 차 있지만 답답하거나 빨리 사고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마룻바닥과 할로겐 조명도 한몫했겠지만 매장마다 성모님이 있어서일까. 공간 자체가 마냥 따뜻했다. 시식하는 빵도 하나같이 맛있고 따끈했다. 만든 지 4시간이 지난 빵은 팔지 않는다고 한다. 직원이 손님들이 앞에 설 때마다 바로바로 빵을 잘라주었다. 성심당다웠다. 시식을 많이 해도 누구 하나 눈치 주는 일도 없다.
시식한 빵을 나도 모르게 바로 쟁반 위에 올렸다. 내 입맛과 다른 빵들이 입속에서 날 유혹했다. 널리 알려진 튀김소보로 말고도 다양한 빵을 만났다. 종류가 어마어마했는데 그럴듯하게 보이려고 가득 채운 빵이 아니다. 하나하나에 정성과 아이디어, 사랑이 돋보일 정도로 직원과 고객, 지역 시민을 아끼는 마음으로 만든 빵이다. 성심당에게 나라는 사람은 단순 소비자가 아니었다. 이렇게 날 소중히 여기는 빵이 있다니 자본주의에 찌들어 소비하기만 바빴던 나를 반성을 했다.
사랑의 힘은 입속에서도 무섭게 표가 난다. 성심당은 창업 이래 줄곧 직원들에게 사랑을 실천해왔다. 인사고과에서 사랑이 차지하는 비중이 40% 일 정도로 이곳에선 사랑이라는 가치가 중요하다. 사랑을 나누는 분위기 속에 빵이 만들어지니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이름도 특이하고 순수하다. 카카오 순정, 판타롱 부추빵, 댕기동자 페스츄리, 토요 빵, 보문산 메아리, 오! 보름달, 우리밀 찹쌀 달쫀이.
또 놀라운 사실은 성심당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 수준이었다. 점심을 먹었던 이탈리안 레스토랑 플라잉팬은 분위기도 맛도 고급스러웠다. 남녀가 이곳에서 소개팅을 한다면 백발백중 결혼까지 이어질 것 같다는 확신도 든다. 레스토랑 메뉴도 빵 메뉴처럼 풍성했고, 음식마다 정성이 가득 찼다. 성심당 철학 아래 구조적으로 맛있을 수밖에 없다. 주문한 메뉴를 서로 나눠먹고 배를 채우면서 우리는 본의 아니게 대전중앙시장 맛집 투어 계획은 접었다.
아이를 데려온 사람 치고 난 자유인이었다. 아이 대신 돌봐줄테니 천천히 식사하라는 배려 덕에 음식도 제대로 음미했고, 성심당을 집중해서 바라볼 수 있었다. 함께한 멤버들 덕분이다. 사람들한테 의지하려고 태린이를 데리고 간 것은 전혀 아니었지만 매 순간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 같은 차를 타고 간 승미 언니와 현정 언니는 아이 짐이 한가득 담긴 무거운 가방을 이동할 때마다 흔쾌히 들고 나섰다. 먼저 짐을 잽싸게 챙기는 언니들에게 얼마나 미안하면서도 고마웠는지. 기형부는 태린이를 조카 손주처럼 예쁘고 정성스럽게 돌봐주셨다. 이날 내 손이 자유로웠던 건 정말 기형부 덕분이다. 하루 종일 손 잡고 다니다가 태린이가 안아달라고 두 손을 뻗치면 흔쾌히 들어 올리며 대전 시내를 걸어 다녔다. 자상한 이모부가 진심으로 느껴졌는지 엄마를 전혀 찾지 않았다.
태린이는 이날을 기다린 아이였을까. 성심당 경영진과 만났던 사무실에서 얌전히 앉아 있었다. 직원들이 차려준 롤케이크 크림을 먹으며 맛있다는 표정을 계속 지어대자 다들 미소 지었다. 빵 만드는 현장을 둘러볼 때는 엄숙해야 한다는 걸 제 스스로 알았는지 공장을 들여보다가 같이 갔던 서은이 언니 손을 잡고 조용히 물러섰다. 잠깐씩 아이를 바라보며 이만큼 컸구나 생각을 했다. 대전천 산책을 나갔을 때는 아이는 신이 났다. 태린이가 좋아하는 환경이다. 물가도 있고 풀도 있고 지나가던 강아지도 마음에 들었나 보다. 땅에 기어 다니는 개미와 날아다니는 곤충을 보곤 흥분했다. 엄마처럼 DSLR을 가지고 온 지은 이모는 태린이를 엄마보다 더 따라다니며 사진을 수십 장 남겨주었다. 짧은 치마를 입고도 수시로 무릎을 꿇어가며 찍은 사진은 내가 찍은 사진보다 더 마음에 들었다. 태린이가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자 일렬로 앉아있던 우리 모두 물개 박수를 쳤다. 자기만의 세계에서 도통 나오지 않던 아이가 어느덧 사랑받는 기쁨을 알기 시작했다. 기형부는 태린이가 1킬로 넘게 직진 걸음을 해도 그저 묵묵히 따라가며 그녀의 즐거움을 유지시켜주었다. 엄마가 옆에 있었다면 계속 제지해서 산책하는 맛을 떨어트렸을지 모른다.
살면서 이 은혜를 어떻게 다 갚지? 이런 고민할 정도로 우리 모녀는 인복만큼은 타고났다. 그동안 받은 사랑을 베풀기 전에 또 아낌없이 받아 항상 걱정이 많다. 모든 순간에 배려가 느껴져서 함께한 사람들에게 당장은 아니더라도 두고두고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전하며 살고자 노력하기로 했다.
어떤 분들은 아이를 굳이 왜 데리고 가느냐며 참았다가 아이가 크면 가라고 권한다. 그 말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아이가 보고 느낀 감각이 하루아침에 쌓이지 않는 법이고, 개미 속도로 걷더라도 그것도 여행이라 생각한다. 돌잔치하던 날, 태린이가 어떻게 자랐으면 좋겠느냐고 사회자가 물었을 때 사랑을 많이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성심당을 만들고 가꾸는 사람들을 만나면 사랑을 아름답게 나누는 기운을 조금이라도 받을 것 같았다. 책 속에서 느낀 대로라면 성스럽고 따뜻한 공간을 공감하리라 믿었다. 이런 마음으로 어린아이를 데리고 당일치기를 감행했다. 성심당을 모르고 살았다면 억울했을 정도로 우리 모녀에겐 이날 추억이 특별하다. 가볍지만 가볍지만은 않은 행복 일일 투어. 성심당처럼 마음 따뜻한 이야깃거리가 있는 지역 이야기라면 아이와 어디든 또 떠나고 싶다.
성심당 & 대전원도심 도보여행 원데이 투어 추천
대전원도심은 막히는 고속도로를 뚫고라도 하루 정도 시간을 낼 가치가 있는 곳이다. 무엇보다 아이들과 산책하듯 걸어 다니기 좋다. 대전천변을 끼고 자연을 느낄 수 있을뿐더러 대전역 일대 명소와 맛집도 곳곳에 위치해 있다. '산책하기 좋은 대전원도심 지도' 한 장만 있으면 인터넷 정보를 하나하나 찾아볼 필요도 없다.
마을기업 '로드스쿨'은 대전을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이 모여 사회적 경제와 공동체를 주제로 콘텐츠를 기획•제작하고 있는데 성심당& 대전원도심 일일투어도 진행하고 있고, 앞서 말한 지도를 만들어 대전 지역을 찾은 사람들을 위해 배포 중이다. 나처럼 무턱대고 대전을 찾은 사람들이 쉽게 먹고 보고 즐길 수 있도록 지도 하나에 400여 곳이 보기 좋고 친절하고 정겹게 담겼다. 이날 우리가 만난 강용훈 사진작가와 박선향 삽화가는 책 속 성심당을 담은 분들이면서도 로드스쿨 멤버다. 지도를 만든 과정을 들었을 때 대전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그 마음이 인상적이었다.
배포 장소에서 지도를 구했다면 개인적으로 움직여도 좋고, '산책하면 좋은 대전 원도심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djwondosim)'에서 메시지로 투어 신청을 하면 보다 세심하게 원도심을 둘러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