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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큰] 부서진 채 끝까지 봉합되지 않던 영화

'브로큰' 볼까, 말까?

by 영화 읽어주는 남자 Feb 1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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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와 김남길의 출연으로 화제였던 <브로큰>이 관객의 기대를 저버리는 데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특히, 김남길의 활약을 보고 싶었던 팬들에게 이 영화는 더 악몽 같은 시간을 선물했을 거다. 살인에 얽힌 소설이라는 꽤 근사한 설정과 하정우, 김남길, 유다인 등 훌륭한 배우 등 좋은 요소를 꽤 많이 가진 작품이지만, <브로큰>은 결여가 돋보이는 괴상한 영화다. 눈만 돌리면 보이는 장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아니, 활용하지 못했다는 표현보다는 활용할 생각이 없었다고 말하는 게 더 적확해 보인다.


<브로큰>은 갑자기 사라진 여성 문영(유다인)을 찾아 나선 남성 민태(하정우)의 이야기다. 문영은 자신의 남편이 죽은 뒤 돌연 자취를 감췄고, 이 남편의 친형 민태는 동생의 죽음의 비밀을 풀기 위해 문영을 찾아 나선다. 그의 동생을 죽게 한 이를 알게 된다면 피의 복수를 할 예정이다. <브로큰>은 이 추격극 속에 인기 작가의 소설이 개입해 사건을 더 미스터리 하게 만든다. 민태 동생의 죽음은 작가 호령(김남길)이 쓴 책에서 일어난 일과 매우 유사했다. 소설 속 일들이 그대로 일어난 탓에 호령은 사건에 연루되었을 거란 의심을 받는다. 동시에 어떤 이유에서인지 호령도 사라진 문영을 찾아나서면서 민태와 계속 부딪히게 된다.

사라진 여성을 쫓으며 누군가의 죽음을 파헤치는 이야기는 김민희 주연의 <화차>와 닮은 구석이 있다. <화차>는 사라진 여성을 찾는 과정에서 그녀의 정체, 그리고 그와 얽힌 살인 사건이 드러나 큰 충격을 주는 작품이다. <브로큰> 역시 문영을 따라가는 과정에서 그의 남편이 죽은 이유와 비밀이 밝혀지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두 영화는 유사한 구도를 가졌지만, 이야기의 끝에 느끼는 감정은 극과 극으로 달랐다. <화차>는 마지막에 마주한 김민희의 민낯을 통해 다양한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현대 사회 속 인간의 실체를 엿보게 했다. 섬뜩하고 처연한 엔딩이었다. 반면, <브로큰>은 특별한 사유와 울림을 주는 데 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왜일까.


<브로큰>이 영화의 긴장감을 만들기 위해 준비한 특별한 장치는 호령의 소설 '야행'이다. 이 소설 속 살인이 구현되었다는 설정, 그리고 이 소설을 만드는 과정에서 호령이 사라진 문영의 사연을 들었던 적이 있다는 것이 호기심을 유발한다. 문영은 호령 앞에서 남편을 향한 위험한 생각을 드러낸 적이 있었다. 덕분에 호령은 사라진 문영과 죽은 그의 남편의 사건에 키를 쥔 인물처럼 등장해 민태의 여정을 더 복잡하게 한다. 뭔가를 알고 있는 듯한 호령의 눈빛으로 <브로큰>은 더 신비한 분위기를 풍길 수 있었다. 이후 영화는 민태, 문영, 호령의 시점을 교차로 보여주며 남자가 죽은 날 있었던 일을 조립해 간다.

이 미스터리한 분위기가 풍기는 초반부는 몰입도가 높다. 하지만, 영화 속 호령은 분량 자체가 적고 이 영화에 의미 있는 개입을 하지 못한다. 영화가 중반에 들어서면 소설 '야행'과 한 남자의 죽음, 그리고 문영의 실종 간에는 연관성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앞서 언급한 미스터리한 분위기가 안개가 걷히듯 사라지고 부실한 서사만 덩그러니 남는다. <브로큰>은 강호령과 살인 및 실종 사건 사이의 연관성을 '맥거핀'처럼 활용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런 요소로 활용할 만큼 치밀한 이야기를 설계하지 못했다. 때문에 호령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실종된 문영을 찾아야만 하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었다.


<브로큰>에서 호령은 단조로울 수 있는 민태와 문영간의 추격극을 더 입체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임무가 있었다. 그러니 실제로 이 역할은 민태가 속했던 조직의 창모(정만식)와 병규(임성재)가 수행한다. 대신, 호령은 관객의 시선을 분산시키고, 동시에 이야기의 전개를 지연시켜 극을 늘어지게 하고 만다. 즉, 냉정히 호령은 <브로큰>에 큰 도움이 안 되는 필요 없는 캐릭터였다. 김남길이라는 배우가 맡아 부각할 만한 자리가 영화 속에 없던 역할이다. 김남길은 호령의 어떤 부분에 매력을 느꼈던 걸까. <브로큰>에서 '야행'과 살인의 연광성이 표현된 부분과 호령이 문영을 찾아야만 하는 동기를 제시하는 장면 등이 통으로 편집된 게 아닐까.

세 덩어리로 쪼개졌던 영화는 하정우가 맡은 부분만이 생기가 있었고, 또 의미가 있었다. 하정우 원탑 영화로 봐도 무방하다. 덕분에 그의 실감 나는 건달 연기를 보는 재미는 있다. 하지만 그의 대사와 액션에 리액션을 해줄 캐릭터와 서사가 없기에 <브로큰>은 점차 같은 양상을 반복하며 관객을 지치게 한다. 영화의 홍보, 그리고 영화의 시작부터 부각된 것들이 실종되기에 관객이 느낄 허무함과 답답함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이야기가 부서진 채 끝내 하나로 봉합이 안 되는 영화였다는 점에서 제목 '브로큰'만이 처음부터 끝까지 제 몫을 다하고 있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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