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교육의 문화적 맥락을 바라보자.
수능의 공정성 문제가 나타날 때마다 항상 대안으로 프랑스의 'Baccalauréat (바칼로레아)'가 등장합니다. 그러나 바칼로레아가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으며, 이 제도가 프랑스 교육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프랑스 교육은 어떻게 바칼로레아로 평가가 가능한지에 대한 맥락은 잡지 못합니다.
수능을 바칼로레아처럼 서술형을 도입해야한다는 주장은 수시, 정시 비율 변화와 같은 '돌려막기식' 제안에 불과합니다. 문화적 맥락에 따른 교육 대전환이 선결 조건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나라 국어 교육은 '기능'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문학과 매체 (비문학) 과목도 마찬가지로 언어 기능을 중심으로 커리큘럼이 구성됩니다. 이로 인해 국어 과목 내 세부 과목들은 연결성이 극히 떨어집니다. 수능에선 세부과목을 독립적으로 출제합니다. 심지어 문법, 화법과 작문은 수능에서 선택 과목으로 아예 독립되어 출제됩니다.
프랑스는 어떨까요? 프랑스의 자국어 교육은 '기능'만큼이나 '맥락'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① 학년별 맞춤 시대를 적용하여 연대기적 전개 : 이를테면, 1학년은 고대, 2학년은 중세와 르네상스, 17세기.
② 문학 형식과 장르 연구 입문
③ 예술사와 연계된 다른 시대의 자신, 타인, 세계에 대한 시선
④ 지속적이고 점진적인 다양한 쓰기 훈련을 통한 완성
프랑스의 중학교 자국어 교육과정에 명시된 자국어 학습 기본 내용입니다. 프랑스의 교육과정에선 자국어 학습이 다른 교과와 유기적으로 연결됩니다. (기본) 말하기, 듣기 쓰기 → (심화) 문학, 비문학 으로 구분된 한국의 교육과정과는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자국어 교육과정에서는 "인문적 교양"을 중시합니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세계 문화 유산과 자료를 주로 다룹니다. 읽기 기능의 훈련보다도 "무엇을 읽을 것인지?"에 더 집중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요. 궁극적으로 '인문적 교양을 비롯한 문화적 능력 향상'을 목적에 두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요?
프랑스가 갖는 자국어의 위상과 교육적 전통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1) 자국어의 위상
프랑스의 헌법 2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La langue de la République est le français."
"공화국의 언어는 프랑스어이다."
공화국의 언어는 프랑스어라는 것을 헌법 제2조에 명시했습니다. 또한, 광고, 방송, 공공 등 사회 전반에 모두 프랑스어를 강제하는 투봉법 (loi Toubon)을 제정합니다. 프랑스는 프랑스어를 단순 언어 체계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특유의 개성을 지닌 문화 유산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2) 교육 전통
영국, 프랑스 등 유럽의 주요 국가에서 언어 교육은 교양 교육과 인문 교육의 일환이었습니다. 고전 및 수사학을 중시해온 유럽 교육의 전통도 영향을 미쳤겠지요. 프랑스어로 학교 교육을 수행할 것을 공표한 시기가 18세기입니다. 실질적인 근대 프랑스어 교육 과정은 18세기에 정립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근대 국가의 수립이 약 150년도 안되었고,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지 경험, 한문과의 병용 문화로 인하여 실질적으로 국어교육의 형성은 프랑스에 비하여 시기적으로도 늦으며, 초기 단계에 머물러있습니다.
프랑스는 프랑스어를 프랑스 민족의 문화를 유지하며 발전시키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았습니다. 자연스럽게 프랑스의 자국어 교육은 과거로부터 이어지는 문화를 경험하고, 이해하며, 수용하도록 합니다. 이를 통해 학생이 스스로의 문화를 구축하도록 합니다.
프랑스의 교육 과정에 따르면, 학생들이 학년을 거치며 여러 시대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수용하게 합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인문적 교양을 형성하고, 언어 기능 뿐 아니라 언어 문화까지 수용할 수 있게 됩니다.
결국 우리는 '한국어'의 위상을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국어기본법'이 법률로서 명시되어있지만, 이는 한글날과 외국인의 한국어 교육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한국어의 위상을 높이는 법률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자국어 교육의 필요성과 목적, 가치, 문화와의 연계성 등을 먼저 검토하고, 교육 내용을 수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현재의 분리 및 독립되어있는 하위 영역 (문학, 비문학, 문법 등) 의 통합 등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또한, 영역의 범주에 따른 특수성을 고려하여 교육 내용의 재개편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 후에 수능 제도의 개편이 이루어져야 합니다.바칼로레아식 시험이네, 서술형이네 하는 논의들은 지금 단계에서는 해서도 안되고, 할 수도 없는 논의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