괌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왔다. S는 차갑게 식힌 맥주 두 캔을 연거푸 마시고 침대에 누웠다. 4일간의 여행에서 본 그녀의 얼굴 중 단연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이었다. 이렇게 가만히 누워있는 거 좋아할 거면서 아침부터 수영은 왜 하고 하루 종일 쇼핑은 왜 다닌거냐며 장난치듯 흔들어봐도 그녀는 끄떡도 없었다. 그 부지런하던 K도 침대에 길게 뻗어버렸다. 피곤하다는 나를 깨워가며 아침 수영을 다니던 S와 K가 먼저 녹초가 되어 있는 모습이 우스워서 깔깔 웃었다. 솔직히 눈 뜨자마자 수영하고 숨 쉬는 동안 쇼핑하고 잠드는 순간까지 수영하는 거, 정말 힘들었다. 덕분에 우울한 생각할 틈이 별로 없긴 했다.
S와 K를 고등학교 때부터 17년을 옆에서 지켜봐 왔다. 인생의 절반을 목격한 사람으로서 보증하건대 우리는 정말 미련할 정도로 성실하게 살았다. 공부도 자격증도 남들 하는 만큼은 해야 하고 남들은 안 하더라도 뭐라도 해야 한다며 스스로를 끊임없이 채찍질하며 살았다. 다른 길에는 눈길 한 번 두지 않고 묵묵히 쌓아온 그 시간과 노력들이 우리를 좋은 대학에 보냈고 대기업에 취직시켰고 일 년에 몇 번의 해외여행도 갈 수 있는 경제력을 주었을 거다. 하지만 열일 곱의 습관은 깊게 남아서 남들이 즐기는 건 다 즐겨야 한다, 노는 것도 뒤처질 수 없다며 휴양지에 와서도 편히 휴양히지 못하는 서른넷이 되었다.
한국에 돌아갈 짐을 싸면서, 괌 여행을 계획했었던 때를 떠올렸다. 다들 당연한 듯 결혼하니까 나도 때가 되면 그럴 줄 알았다. 남들도 티격태격 싸우면서도 결혼한다고들 하니까 나도 그럴 줄 알았다. 내 인생에 불현듯 찾아온 파혼이라는 사건은 내가 성실과 노력으로 쌓아온 안락한 세계를 한 순간에 무너뜨렸다. 세상에 행복한 일이라고는 다 끝나버린 것만 같았던 그때, 세상에 즐거운 일은 얼마든지 있다며 S와 K가 나를 괌으로 이끌었다.
괌에서 며칠을 보내며 내가 잃어버린 '행복'을 찾아보려고 했다. 행복은 어떻게 하면 다시 내게 오는 것일까? 돈을 펑펑 쓰면 오는 것일까? 오픈카를 타고 해변가를 달리면 되는 것일까? 우연히 뜬 무지개를 발견하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그저 비싸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일까? 그런 생각들을 하다가 대체 '행복'이란 무엇일까,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닿았다.
하루 종일 행복하지는 않았지만, '행복하다'라고 느낀 날이 있었다. 실제 그날은 자주 웃고 친구들과 재미있는 시간을 보낸 순간들이 있었다. 내가 줄곧 슬펐던 이유는 내 마음이 과거와 미래에 지나치게 오래 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했다면 행복했었을 거야.', '괌에서 구찌를 사면 행복할 거야.'가 아닌, '지금 바로 여기에 침대와 맥주 한 캔이 있어서 행복해.' 같은 겨우 이런 일들로 행복한 순간들이 진짜 휴식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