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한없이 가볍고 공허한 단어일 뿐이라고 해도 그런 사랑이라도 붙잡고 싶어지는 날이 있다.
곁을 쉬이 내어주는 그런 사람 아니라며 도도한 척을 힘껏 해보아도, 어쩔 수 없이.
"사랑해."
그 말 하나에 모래성이 무너지듯 속절없이 부서져 내리는 나를 발견하고야 만다. 내가 마주해야 하는 건 나의 물러터진 나약함.
정말 가볍고 쉽게 시작한 만남이었다. 내 인생에서는 굉장한 일탈이었으나 그에게는 그저 건네는 시시껄렁한 농담 같은 그런 인연. 나는 어째서 그 순간 그의 예의 없는 접근을 허락하고 싶었을까.
외로운가 보지.
맞아, 나는 외롭지. 먼바다에 떠 있는 외딴섬처럼 외로워. 씩씩한 척 살아가지만, 나 사실은 매일 도망치고 싶어. 그런데 막상 도망갈 곳도 없어서 그냥 혼자 울어.
그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마음껏 도망쳐도 괜찮아. 나에게 도망쳐 와."
아무렇게나 툭 던져진 한 마디가 위로가 되었다. 그 정도로 나는 지독하게 외로웠다.
나에게도 퇴로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기대,
그 모든 것이 허상일 뿐이라는 직관,
그럼에도 사람은 누구나 기댈 곳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이 절망.
그는 매일 사랑을 노래한다.
한 줌 짜리 사랑. 손에 쥘 것도 없이 흩어질 사랑.
그런 사랑이라도 지금의 나에겐 필요해.
그 끝이 파멸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