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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아 Jul 12. 2022

파혼하고 일주일, 동기 결혼식에 갔다.

내게는 허락되지 않은 것


주말에 W결혼식이 있었다. W의 결혼식은 청첩장 모임 때부터 동기들 사이에서 '놓치면 후회하는 결혼식'으로 소소하게 화제가 되었었다. 래도 호리호리한 W가 첩장을 주던 날, 유독 핼쑥하고 힘이 없어 보이기에 행복해야 할 예비 신랑이 왜 이렇게 죽어가고 물었더그는 대번에 너무 힘들다며 야기 보따리를 우르르 털어놓았었다.


W는 꽤나 점잖고 차분한, 이를테면 선비 같은 결의 사람이다. 하지만 W를 통해 듣기로, 예비 신부는 굉장히 활달한 분인 듯했다. 결혼식에 대한 꿈과 환상이 있는 예비 신부 까다로운 기준을 만족시키기 위한 파란만장한 러포즈 썰, 듣는 입장에서는 굉장히 재미있었. 다만 말을 이어가는 W는 갈수록 수척해 보였다. 찍어내는 것이 아닌 하나뿐인 청첩장을 원하는 그녀를 위해 직접 그림을 그리고 디자인해서 만었다 청첩장을 나눠 땐 동기들 모두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디자인 전공도 아닌데 이런 게 가능하다! 신부 마음에 쏙 드는 식장을 찾아 스무 군데 넘는 웨딩홀을 투어한 얘기에는 그나마 고생했다며 그래도 잘 골랐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에는 신랑 신부가 듀엣을 부르고 피로연에는 퍼스트 댄스를 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혼하지 않겠다 예비 신부를 위해 보컬학원, 댄스학원까지 다니고 있다는 사연에는 차마 무어라 말을 보탤 수 없었다. 끼 많은 사람에게는 하객들 앞에서 노래와 춤을 선보이는 것 어렵지 않은 일이겠지만, 렇지 않은 W는 이미 굉장한 부담을 느끼고 있어 보였다. 신혼여행도 휴양지가 아닌 관광지로 가 되었다며 차라리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집쉬고 싶다고 먹거리는 W가 짠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하객 입장에서는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분명했다. 가무에는 딱 봐도 소질이 없어 보이는 W의 장기자랑이라니. 게다가 두 시간 이상이어야 해서 마지막 저녁 시간예식을 한다 하니, 이 정도면  W의 디너쇼라 두가 기대했었.


청첩장 모임 때까지만 해도 결혼 준비 중이었던 내가 당연히 다음 타자인 줄 알았는데, 그 몇 주 사이에 파혼할 줄이야. W의 결혼식은 예정된 것이었으나 나의 파혼은 예정되어 있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다지만 참석을 해야 하는지는 고민이 되었다. 누군가 결혼 준비는 어떻게 되어가냐고 물어보지만 않는다면, 굳이 내가 파혼했다는 것을 알릴 필요는 없을테니 표정만 잘 숨기면 문제 없겠지만 혹시라도 나의 개인적인 슬픔이 얼굴에 묻어서 남의 잔치에서 우중충한 기운 보일까 걱정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에 있고 싶지는 않은 마음이 컸다. 뭐라도 하고, 누구라도 만나지 않으면 마음이 밑도 끝도 없이 가라앉을 것만 같았다. 파혼의 이유를 부모님에게서 찾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는데, 부모님과 한 공간에 있으면 자꾸 스멀스멀 올라오는 원망을 누르기가 힘들었다. 집에서 홀로 견디고 있는 것보다는 하객들 사이에 스며들어 나를 숨기는 것이 쉽지 않을까.


"남 결혼식은 뭐하러 그렇게 열심히 다니는지. 쯧."


결혼식에 간다고 차려입고 나서니 엄마가 못마땅한 듯 혀를 끌 찼다. 평소라면 그냥 넘길 말도 곪아 터진 마음에 쿡쿡 잘도 박힌다. 자기 결혼은 말아먹고 남 결혼식 간다 하는 게 속 없이 보이나 다. 날 선 말들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아서 대신 숨을 꾹 눌러 뱉었다. 내 마음이 얼마나 처참한 지 알아주길 기대하지도 않았잖아. 서둘러 집을 나섰다.






났던 잔치에는 볼거리가 많아 참 즐거웠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 보이는 신부와 다르게 피로연이 길어질수록 창백해지는 신랑의 안색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너무나 당당하고 밝은 신부는 마이크를 잡고 또랑또랑하게 멘트를 치고 거침없이 고음을 뽑아낸다. 성량도 크지 않은 W가 신부에 맞추려고 애쓰는 걸 보면서 동기들과 깔깔 웃었다. 정말 귀엽고 사랑스러운 커플이었다. 빨간 드레스를 입고 날아다니는 신부와 왈츠 스텝을 맞추기 위해 삐걱대는 W를 보며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W가 착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사랑을 위해 저렇게까지 다 내려놓고 맞출 수 있는 사람인 줄은 미처 몰랐다. 저렇게까지 그릇이 큰 사람이었구나. 정말 사랑하면 저렇게까지 할 수 있는 거구나. 그리고 신부도 한 사람이 그릇의 크기를 키우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사람일 테지.


신부가 너무 부러웠다. 신부 아버지는 'W야, 내 딸 OO이가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도록 배려해줘서 고맙다. 딸아, 너는 앞으로도 조금은 이기적이게 네가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며 살거라.'라며 축사를 하셨다. 저 신부는 정말 복도 많구나. 저렇게 다 맞춰주는 남편과 계속 멋대로 살길 기원하는 아버지가 있으니. 내게는 허락되지 않은 것들을 다 가지고 있는 그녀가 부러웠다. 나는 그녀에 비해 무엇이 부족했던 걸까. 뭘 그리 잘못했던 걸까. 어차피 내 인생에는 저런 귀한 팔자는 없는 듯하니, 차라리 내가 W처럼 나를 내려놓고 그가 요구하는 대로 다 맞췄다면 나도 웨딩드레스를 입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처럼 웃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신부의 밝게 넘치는 에너지도, 신랑의 인내와 노력도 다 너무 대단해 보였다. 내 결혼이 실패한 이유는 나는 그 중 무엇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억울한 마음도 든다. 내가 저렇게 결혼식에 바라는 것이 많지도 않았는데. 단지 결혼식 같은 일회성 이벤트에 소비할 돈을 조금이라도 더 아껴서 그의 빚도 빨리 갚고, 나중에 우리가 함께 살 제대로 된 집을 구하고 싶었다. 중요한 건 결혼이지 결혼식이 아니니까. 스드메, 예물 , 예단, 예복 생략하거나 최소화하는 것이 결혼에 더 도움된다고 생각했었다. 어차피 주말 부부를 해야 하니 월세로 신혼집을 구하는 것도 낭비 같아 보여서, 1년 정도는 신혼집 없이 살자고 그랬었다. 그와 함께할 삶이 '사진이 아닌 동영상'이길 바랬을 뿐인데, 나의 합리성이 무결하다고 자신했던 것이 문제였나 보다. 그냥 그가 하자는 대로, 원룸 월세라도 구하고, 그의 부모님 원하는 예단, 예복도 전부 드리는 걸로 했다면, 부모님에게 반대 못하는 그가 영원히 효자일 수 있도록 나를 버리고 그에게 다 맞춰줬다면, 나도 그와 함께 버진 로드를 걸을 수 있었을까. 나도 저렇게 행복한 신부가 될 수 있었을까. 그런 정답이 없는 질문들이 가시덤불처럼 가득 차 올라서 나를 찔러댔다. 결국 그와 나는 상대방보다 자신을 더 사랑했었고 그것이 우리가 결혼에 실패한 이유일 것이다.


다음은 누구냐며, 피로연 장의 대화 주제가 다음 타깃을 찾는다. 자연스럽게 얼마 전  청첩장 모임 할 때만 해도 결혼 준비하고 있다는 근황을 알렸던 나에게 눈들이 쏠린다.


"나 헤어졌어."


스테이크를 썰면서 최대한 덤덤하게 말했다. 뭐 언제? 지난주에. 잠시 정적이 흐르다가 너도 나도 위로의 말을 건넨다. 먼저들 가라 손을 뻗는, 불쌍하고 우스운 제스처와 함께 "난 틀렸으니, 다음 차례는 P가 가면 되겠다"며 웃어 보인다. 황급히 대화의 타깃이 옮겨간다. 오오 그래 P는 내년에 한댔지? 너도 왈츠 추는 거야? 하하하... 모두가 웃고 떠드는 즐거운 피로연 장에서 나도 함께 제대로 웃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주제를 돌려 분위기를 망치지 않는 곳에는 성공했다. 밥은 쓰지만, 그걸로 됐다.  

  


오랜만에 신은 구두 때문에 발이 아프다. 온갖 신경이 발에 쏠리는 덕분에 슬퍼지지 않고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집에 와서 아픈 발을 주무르고 있는데 엄마가 방에 쫓아 들어온다. 결혼식은 어땠냐고 묻기에, 왈츠도 추고 듀엣도 부르고 볼거리가 많아 재밌었다, 활력 넘치는 신부도 대단하고 다 맞춰주는 신랑은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달리 보였노라고 말했다.


"그 신부는 복도 많다. 너는 어찌 그런 복도 없니."


엄마는 또 속 긁는 소리를 하고 갔다. 나도 같은 생각을 하긴 했지만, 속이 긁힐 때마다 짜증이 팍 난다. 이럴 때마다 엄마가 쓸데없는 말해서 내가 파혼했고 엄마 살아있는 동안엔 절대 사위 볼일 없을 거라고, 딸이 복 없는 년이니 어쩌겠어, 독한 말이 목구멍까지 기어오르지만 꾹 참아낸다. 집 밖도, 집 안에서도 나는 또 참는다. 머리가 아픈 게 발에 잡힌 물집 때문인지 썩어가는 속을 동여매어 놓아서 인지 모르겠다.




'결혼이 사내 유행'이라는 말이 돌 정도로 최근 들어 회사 사람들이 많이 결혼했다. 나도 유행에 탑승해보려다가 꼴사납게 굴러 떨어졌지만. 그래, 내가 언제부터 그렇게 트렌드 세터였다고... 라며 위로해 본다. 남들이 다 해도 내가 꼭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었지만, 이제 결혼은 남들은 다 해도 나는 '못'하는 것이 되었다. 지독한 패배감. 나를 좀먹는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으려고, 남들은 못하는 걸 하나라도 더 해보려고 매일 새롭고 재미있는 일을 찾아 바쁘게 산다.


기혼자들은 아련한 듯 여유 있게 말한다. 급하게 할 필요 없어요, 꼭 해야 하는 줄 알았는데 해보고 나니까 결혼은 역시 선택인 것 같아요, 결혼하니까 휴가도 내 맘대로 못쓰고, 미혼일 때가 좋았지, 취미 생활할 시간도 있고 좋겠네요. 결혼 생각이 없을 때는 자유로운 미혼의 삶이 훨씬 좋게 느껴졌다. 하지만 파혼 후의 나는 그 삶의 선택권이 나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슬프다.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니었는데, 급하게 생각했던 것이 잘못이었나. 나는 현명하지 못했고 그들은 현명해서였을까, 아니면 내게는 운이나 인연이 없었던 걸까. 그럼 내게는 앞으로도 없나. 내가 남들보다 가진 것도 분명 있을 텐데, 파혼은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을 더 많이 찾아내게 만든다.


근 시일 내에 결혼을 앞둔 회사 동료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나는 아직 설렘과 행복함으로 결혼 준비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듣기가 힘이 든다. 결혼 준비에 소소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하지만 차근차근해나가며 설레어하는 사람들도 부럽고, 남자 친구와 결혼 준비하다가 다퉜지만 다행히 화해했다며 투덜대는 사람들을 보면 그것마저도 부럽고 속이 뒤틀리는 거 같다. 물에 젖어 무거운 마음이 걸레 짜듯 비틀어 짜져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지, 듣다 보면 왈칵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살자리를 피한다. 평소에는 친구들도 만나서 웃고 떠들고, 운동도 하고, 일도 하면서 괜찮은 척 하지만, 결혼 얘기가 나오면 나는 괜찮지 않아 진다. 갈수록 내 안의 감정들은 더 추해지는 것만 같다.


내가 애써봤자 해결되지 않을 일이란 걸 안다. 아마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지고 그러다가 정말 아무렇지도 않질 테지. 누구의 결혼식을 가더라도 자기 연민 없이 순수한 축복을 할 수 있게 되는 날이 언젠가는 올 거다. 행복도 불행도 순간이고 그저 지나가는 것일 뿐이라지만, 나는 여전히 불행의 시간 속에 있다. 그저 이 시간들이 어서 나를 지나가 주길, 그전에 나의 초라함을 들키지 않기만 조용히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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