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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아 Jul 07. 2022

파혼했지만
그 정도로 우울하지는 않아

그렇다고 괜찮은 건 아니지만


파혼 후에 '힘내'라는 위로를 많이 받았다. 의례적인 인사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실제로 마음에 힘을 많이 주지 않으면 이 상황을 견디고 수습하기 무척 어렵다는 걸 알았다. 모든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장 많이 힘내야 했던 건 주변에 파혼 소식을 알리는 것다. 


나는 상처투성이의 나를 지켜내야 했다.


내가 실연 당하여 초라해진 사람이 되지 않도록, 내가 타인의 동정을 화살처럼 맞고 있지 않도록 지켜줄 사람은 나뿐이니까. 이 고통에 냄새가 있다면 아주 조금만 꺼내 놓아도 악취가 진동할 것이다. 나의 감정을 배설하듯 타인 앞에 내어놓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썩어버린 마음을 받아줄 만큼 도량 넓은 사람이 있을 리 없다.


부모님에게 말씀드리는 것은 죄스러운 마음에 힘들었다면, 지인들에게 소식을 알리는 것은 상당히 민망한 일이다. 청첩장을 찍어내기 전이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하필이면 파혼하기 전 몇 주간 모임이 많았어서 여기저기에 근황이랍시고 결혼 준비를 하고 있다는 얘기를 떠벌리고 다녔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도 결혼과 결혼 준비에 대한 기대감에 가득 차 있던 나를 생각하면 스스로가 너무 망신스다. 그와 나의 관계는 견고하고,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믿었었다. 그 대단했던 확신과 자만은, 우스울 정도로 조각조각 부서지고 깨어져버렸으니. 내 꼴이 참 씁쓸.


결혼 준비한다는 얘기를 꺼내는 건 참 쉬운 일이었다. 듣는 사람도 가벼이 축하하면 되는 일이니, 말하는 사람쉬이 말했다. 간혹 본인의 경험담을 공유해주는 분도 있으니 미리 공부 할 수 어서 좋기도 했다. 하지만 좋지 않은 얘기를 하는 건 역시 어렵다. 나도 혼란스러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는데, 듣는 사람들도 당장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몰라 당황할 것이 뻔하다.  일도 아닌 걸로 이 사람, 저 사람 한데 모아다가 소식을 알리기도 영 이상하고, 구태여 여기저기 찾아가서 알릴 기력도 없다. 차라리, 결혼 준비는 잘 돼가? 그래서 날짜는 잡았어? 인사드리러 간다더니 어땠어? 먼저 물어봐주면 '사실 나 헤어졌어'라며 말이라도 꺼낼 수 있으니, 평소엔 반기지 않았을 관심이 기까지 하다.


지인들의 반응은 다 비슷다. 헤어졌다고 말하면, 놀라는 반응. 당연하다. 당사자도 며칠 전까지몰랐던 일이니까. 헤어졌다는 얘기에 자기가 먼저 왈칵 눈물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 대신 울어주는 마음이 고맙기는 했지만, 나는 눈물짓는 사람을 달래기 위해서 또 애써 웃음을 지어 보여야 했다. 왜? 어쩌다가? 면 그와의 이별을 덤덤하게 요약해서 말한다. 처음에는 '그가 어떻게 해서 내가 어떻게 했고' 하던 구구절절한 이야기가 입 밖으로 꺼내놓을수록 간결해진다. 나중에는 '가치관에 차이가 있었고, 서로 오해가 있어서 대화로 풀어 보려 했는데 안됐'로 정리된다. 당연히 나오는 추가 질문. 아니, 어떻게 며칠 만에?


"그러게. 어쩌다 보니."


슬픈 눈과 살짝 웃는 입을 곁들인다. 자세한 설명을 할 필요도 없는 사람들에게는 '어쩌다가?'라는 첫 질문부터 '어쩌다 보니'로 끝내버린다. 그렇게 그와의 이별은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 된다. 내 안에서도 정리되지 못하고 복잡했던 나의 파혼은 사실 '그냥 어쩌다 보니 헤어진 것'이 본질이었구나 싶다.


"괜찮아요?"


괜찮냐는 물음에, 나는 괜찮지 않다며 울음을 터트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속으로 천 번을 울었다면 눈물은 만 번 삼키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덤덤하게 풀어낼 자신이 없으니 , 뭐 생각보다는요, 하고 어깨를 으쓱하며 씁쓸한 웃음을 지어보는 것이 내가 나의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는 방법이다.   


"며칠은 정말 많이 슬펐는데, 시간도 아깝고 마음도 괴로워서 안 하기로 했어요. 서운 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해가지 않는 것도 아니고. 이해가 가니 미워할 것도 없고. 미워해봤자 나만 손해니까요."


정말 괜찮은 것으로 보였든, 애써 괜찮은 척하는 걸로 보였든 상관없다. 상처 받았더라도 상처 받지 않은 척,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척, 그저 내색하지 않는 것이 내가 나를 지켜내는 방식이니까. 흔들릴 지언 정 무너지지 않아 보이도록 감싸주고, 괜찮다며 도닥여 줄 수 있는 건 나뿐이니까. 스스로에게 하면 세뇌이겠지만 타인에게 했다면 응원과 위로였을 것들을 나에게 주고 싶었다. 사람들이 앞에서는 동정하고 뒤에서 이러쿵저러쿵 씹어대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오히려 이렇게 한입에 쏙 들어가게 조각이 났으니 오물오물 씹기도 퍽 좋겠다.






가까운 친구들에겐 사정을 조금 더 자세하게 말했다. 그리고 이해가 되니 미워할 수가 없다, 도저히 그를 사랑하는 것보다 미워할 수가 없다고 하면, 염병하고 있다며 혼이 난다.


"얘 좀 봐, 득도를 해버렸네? 괜찮긴 뭐가 괜찮아? 듣는 사람도 어이가 없고 화가 나는데!"

"네가, 지금, 걔를, 왜 이해하고 있어? 차라리 욕을 해!"

"이해고 뭐고 화가 나는 건 화가 나는 거지 뭘 이해하니까 화가 안나?"

"그냥 네 마음 가는 대로 화도 내고 그래. 이기적으로 살아!"


친구들은 내가 괜찮다고 하는 걸 못마땅해했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척해봤자 언젠가는 터질 거라고 했다. 애쓰는 걸로 밖에 안 보인다고 했다. 아니라고는 못한다. 사실 매우 크게 상처 받았노라 인정한다. 나는 그저 슬퍼하고 힘들어하는 나 자신 지켜보는 것이 괴로워서 그를 미워하는 것을 포기했다. 사실 나는 겁이 난다.



별일도 아닌 일로 쓰러지지 않는다며 외면하는 것이 내가 지금까지 스트레스를 이기는 방법이었다. 스스로 괜찮다, 괜찮다, 하며 나를 세우는 것 밖에는 할 줄 모르니까. 하지만 땅 속에 흐르는 물은 지반을 약하게 한다. 대충 덮어두고 있다 보면 언젠가는 땅이 꺼지는 날이 온다. 5년 전, 나는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경험한 적 있다. 밥을 먹다가도, 길을 걷다 가고, 멀쩡히 대화를 하다가도 별안간 패닉에 빠져 주저앉았다. 눈 감으면 다시는 눈 뜨지 않기를, 오늘이 내 삶의 마지막 날이기를 기도하다가 잠이 들었고, 다시 눈을 뜨면 절망했다. 또다시 살아서 새로운 오늘을 맞이하고 삶이 계속되는 것이 애통해서 울었었다. 깊이도 알 수 없는 어두운 싱크홀에 영원히 빠져버린 것만 같았던 시간이었다. 지금도 5년 전 그때를 떠올리면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기분이 든다.


다행히 그 깊은 어둠은 시간이 지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 나를 뱉어냈다. 나의 경우에는 원인이 분명한 스트레스 상황이 있었기 때문에, 그 문제에서 벗어나자 금방 좋아질 수 있었을 것이다. 객관적으로는 았던 몇 개월이었지만, 우울은 내게 얼룩 같은 흔적을 남겼고, 그 후로 나는 많이 달라져 버렸다.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온 기쁨에 햇빛을 마구마구 즐기면서 뛰어 다니가도, 아주 문득, 나를 집어삼켰던 그 끝이 보이지 않는 구멍이 내 뒤를 바짝 따라붙어있는 기시감이 들 때가 있다. 벗어나기 위해 멀리멀리 뛰어왔는데, 결국은 싱크홀의 가장자리를 빙글빙글 돌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 우뚝, 공포심이 든다. 뒤를 돌아보면 바로 내 뒤에서 그 검은 입구를 크게 벌리고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마치 그림자처럼. 그래, 그건 어쩌면 내 그림자 일지도 모른다. 내 그림자에 집어삼켜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불안감, 그런 걸 매일 가지고 산다. 그저 너무 가까이 따라붙지만 않기를 바라면서.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괜스레 마음이 가라앉는 느낌을 즐기기도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진짜 밑바닥에 닿는 우울을 경험하고 난 후, 나는 울적한 마음이 드는 것을 극도로 꺼리게 되었다. 저마다 본인의 감정 상태를 판단하는 기준이 있겠지만, 나의 우울의 기준은 5년 전에 다시 세워진 듯하다. 이 정도는 우울한 것도 아니야. 그때처럼 죽을 것 같이 힘든 것이 아니니까 난 괜찮아. 그래서 나는 파혼으로 인해 슬프긴 해도 '그렇게까지 우울하진 않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때 그 정도로 힘들지는 않은 것도 사실이, 한편으로는 5년 전에서 한치도 나아가지 못했다는 생각도 든다. 여전히 괜찮을 거라며 덮어두고 꽁꽁 싸서 깊숙이 넣어두려는 내가 애잔하다.



그래도 이 아픈 경험 속에
또 한 번 나의 성장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외면하는 대신 용기 내어 마주하려고 한다. 이렇게 글로 써 내려가는 것도 나를 하나하나 풀어내어 제대로 보기 위해서이다. 지인들에게는 강한 척했지만 사실 나는 다시 그 어둠에 삼켜질까 봐 두려워하는 겁쟁이라고 인정다. 그래도 나는 어른이니까 용감하고 씩씩하게 이겨내 보려고 애쓰고 있다는 기록이기도 하다. 내가 이 시간을 지나고 난 다음에는 지금보다 더 성숙하고 견고한 사람이 되기를, 기대하고 응원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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