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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아 Jul 15. 2022

서른넷 생일에는 새빨간 비키니를 입겠어요

결혼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괜찮아


결혼 준비 중이었을 때는 다이어트를 하겠다며 나름 끼니마다 식단과 칼로리를 신경 쓰며 먹었다. 하지만 파혼하고 나서 얼마 간은 아무런 지각도 없이 그저 마구 먹기했다. 언가를 씹어 삼키지 않으면 계속 이별에 대해 곱씹게 되었기 때문에, 배부른지 어떤지도 상관 않고 미친 사람처럼 계속 먹었다. 그래도 먹는 동안만큼은 그렇게 슬프지 았다.


어는 날엔 친구 S를 만났. 그녀는 6년 전, 스물여덟에 결혼할 했었다. 혼 준비를 하다가 가치관 차이로 이별했고, 현재는 비혼주의자가 되었다.


"내가 결혼할 때 다 돌려받을 줄 알고 남의 결혼식 열심히 다녔는데. 축의금 생각하면 돈 아까워 죽겠어~"


는 S가 헤어지고 나서 힘들어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녀는 혼자 많은 생각을 했을지 모르지만, 누구 앞에서 약한 소리를 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나와는 지역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을 시기이기도 했지만, 그녀는 당시에도 그렇게 심플하게 말했었다. 그냥 '생각이 달라서 헤어졌다'라고. 사실 세상 모든 이별의 사유는 서로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와 타인 생각이 완전히 같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하기에, 생각이 다르더라도 맞춰가기 위해 결혼으로 묶이지 않는 이상은, 헤어짐이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반대로 결혼이란, 나와 타인의 다름을 인정하고 인내하고 극복해가는 거라고, 미혼인 주제 감히 그렇게 생각했었다. 나는 름을 맞춰갈 마음으로 결혼을 결심했었지만, 그는 다름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고 싶지 않다고 다. 그리하여 그와 나는 결혼에 이르지 못하고 각자의 길을 가게 되었다. 결국 나 역시, 그냥 '생각이 달라서 헤어졌다'가 전부다. 


S는 6년 전을 회상하면서 그때 결혼 안 하길 잘했고, 시엔 5년 넘게 연애한 사람이라서 당연히 결혼해야 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 현재 그녀는 자가 소유의 신축 아파트에서 고양이  마리와 반려 식물 몇 가지를 기르며 잘 살고 있다. 직업적으로도 꽤나 영향력 있는 위치가 되었다. 그녀가 입사했을 때만 해도 매니큐어 바른 걸로도 눈치를 주던 보수적인 직종에 여전히 종사하고 있지만, 이제 그녀가 머리를 새하얗게 탈색하고 시시때때로 파란색, 분홍색, 요란한 색으로 염색을 하고 다녀 실세인 그녀를 감지적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근무지를 옮길 때면 그녀를 믿고 함께 따르는 부하 직원들도 한 무리라서, 들을 데리고 이동할 수 있는 곳을 알아보다 보니 근무지 선택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 그녀의 유일한 속박이다.


S 역시 나의 파혼 소식에 기겁하듯 놀랐다. 당연히 결혼할 줄 알았다고 했다. 뭐, 나도 그럴 줄 알았다. S말 내내 나를 이곳저곳으로 데리고 돌아다니며 즐거운 얘기를 해주거나 내가 문득 기분이 가라앉는 것 같아 보이면 맛있는 걸 입에 넣어주었다. 그녀의 집에도 초대해서 이것저것 음식을 차려주었다. 영혼 없는 표정으로 쉬지 않고 음식을 입에 넣는 나를 보던 S뭔가 생각이 난 듯, 서랍에서 새빨간 꾸러미를 가지고 나왔다.


"이거 비키니야. 새 거야. 너 입어."

"비키니? 야아 내가 비키니를 어떻게 입어?"

"내일부터 운동해. 두 달 빡세게 하면 입을 수 있어."

"내 뱃살을 봐, 두 달에 되겠니? 그리고 입을 일도 없네요."

"할 수 있어. 두 달 후 네 생일에 나랑 괌 가자. 괌에서 이거 입고 생일 파티하는 거야."


괌? 괌이라니. 높게 뻗은 야자수, 푸르른 태평양, 부서지는 햇빛, 쇼핑, 칵테일, 이국적인 음식들이 있는 괌에서, 빨간색 비키니를 입고 서른네 살 생일파티라니. 뭐야, 너무 멋지잖아! 설렘이 번지듯이 피어나는 내 표정을 보더니 그녀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씩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지나고 보면 별 일도 아니야.
세상에는 아직 즐거운 것들이 얼마든지 있어.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와 함께 하기 위해서는 나의 삶에서 버려야 하는 은 것들을 결단해야 는데, 가 없으니 이제 무엇도 잃지 않게 되었다. 미혼 나에게는 자유로운 삶- 퇴근하고 나면 오롯이 나만의 취미생활로 가득 채워지는 시간을 즐기다가, 언제든 내 짐만 간편하게 꾸려서 여 떠나 내가 번 돈으로 무엇이든 눈치  보고 살  있는, 래시가드 입고 아이들과 물놀이해주는 게 아니라 비키니 입고 풀 칵테일바에서 한껏 포즈 잡고 사진 찍는, 명절 귀성길 걱정 없이 해외여행 비행기 티켓부터 검색하는, 그런 삶이 여전히 내 손에 주어져 있다. 


그는 나의 인생에 날카롭게 등장했다가 마음에 얼룩만 남기고 완전히 사라졌다. 나는 그 얼룩을 혼자 쓰다듬고 파내면서 상처라 부르고 있지만, 밖에서 보기에는 그가 있건 없건 변함없는 '나'만 있을 뿐이다. 지금 이 순간에는 감정적으로 불행하다 느끼며 슬픔을 곱씹고 상처에 아파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바라보면 내 삶은 바뀐 것 없이 계속 흐르고 있고, 그가 떠난 자리는  떠먹은 자리처 흔적도 이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결혼했더라면 나는 커리어를 포기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나의 일을 존중한다고 말했었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본인의 인생 계획이 우선이었던 듯하다. 3년 간 그의 근무지가 지방 어디로 가게 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서울에 있는 내 직장 근처에 집을 구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이미 3억의 이 있었고 모아둔 돈은 따로 없었기 때문에 내가 모아둔 돈만으로 집을 구해야 했다. 추가 대출을 하기에는 가계부채도 너무 많아지고 매달 이자로 내야 하는 돈이 부담이라고 생각했. 그래서 나는 3년 후  그의 지방 근무가 끝나 같이 살 집을 구하고, 당분간은 신혼집 없이 살면서 빚도 갚고 돈을 열심히 모으자고 다. 하지만 시댁에서는 신혼집이 없는 건 절대로 안될 말이라고 하셨다. 시댁에서 금전적인 도움을 주실 수 있는 형편은 아니었지만 귀한 아들이 신혼집 없이 시작하는 건 안된다는 입장이다. 뾰족한 답이 없는 상황인지라, 나는 당장은 집을 구할 돈이 없으니 결혼식을 미루는 게 좋겠다고 했고 그도 동의했었다.


다만 나는 이번 해에 회사에서 팀장 후보로 발탁되어 교육을 받고 있는 중이고, 내년 중에는 프로젝트를 하나 맡게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 그래서 결혼식을 미 사이에 팀장로 승진하게 되면, 결혼하고 바로 2세를 계획하기는 어려울 거라고 말했다. 그 말에, 그는 매우 화를 내면서 그건 안될 말이니 내 돈으로 월세를 구하든, 우리 부모님에게 돈을 더 아오라고 했다. 3년 동안 주말 부부를 하면서 그의 빚은 같이 갚고, 아이는 나 혼자 낳아 키우는 것. 그것이 그가 입 밖으로 노골적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그가 내게 기대한 나의 역할이었 것 같다. 나는 이해받지 못하고 강요만 받는다고 느꼈고, 나를 넘어  부모까지 존중받지 못하는 것에 화를 냈다. 하지만 아무리 서운하다고 말해봐도 나를 이해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그는 파혼을 통보했고, 그가 말한 파혼의 사유는 세 가지였다. 너는 독립할 준비가 안된 것 같다, 경제관이 너무 다르다, 자기를 나쁜 사람을 만들고 커리어를 들먹이며 자기를 협박했다, 는 것이였다. 론적으로는 내가 지금껏 쌓아왔던 커리어는 그에게는 고작 '협박' 되었다.


정작 나는 내 커리어를 어떻게 취급하고 있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직업에 충실한 것과는 별개로, 보통은 아침마다 출근하기 싫어서 죽을 상을 하고 나선다. 회사에서도 내내 퇴근 생각을 하고, 시시때때로 '집 가고 싶다'는 말을 한숨처럼 내뱉는다. 어려운 일은 부담스럽고 단순한 일은 재미가 없다. 솔직히 회사 생활 몇 년하다 보니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정작 이별 후에 내가 적당히 휘청일수록 잡아준 것은 나의 '일'이었다. 나를 받아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는 생각에 괴로워도, 회사에서 나는 할 일이 있고 쓰임이 있는 사람이었다. 비록 사랑에는 버림받았지만, 나는 적어도 월급만큼의 가치는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위안이 되었다. 그가 내 커리어를 존중해주길 바라면서도 정작 나는 내 일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늘 어딘가에 기대어 살아간다. 나도 결혼해서 안정적인 가정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과 같은 무리에 귀속되어 보려고 했었지만, 결혼이 나를 피해 갔다. 나는 여전히 일와 가정을 둘 다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이 진심으로 부럽다. 하지만 남들이 가졌다고 나도 다 가질 수는 없다는 것을, 쉽지않지만 이제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포기라기보다는 인정을 하고, 그리하여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상실감에 슬퍼하거나 패배감에 분노하지 아니하되, 다만 강건하고 평온하게 살아가고 싶다. 그리고 내가 믿고 기댈 수 있는 건 내가 쌓아 올린 노력과 성취뿐이니까. 소중한 버팀목이 되어줄 나의 커리어를 돈독하게 해서, 누군가 옆에 있건 없건 상관없이 내가 온전한 나로 살 수 있도록 노력해보고 싶다.



괌에서 빨간 비키니를 입었을 때
멋져 보이는 나였으면 좋겠다.
 



그와 함께할 삶을 꿈꾸었을 때는 색색의 보석, 꽃과 노루 비단이 가득한 가운데에 달콤한 우리 두 사람이 있는 낙원을 기대했었다. 이제 그는 내 곁에 없지만, 오늘 나 혼자 있는 풍경도 분히 아름답를, 내일 오늘보다도 멋지기를 바란다. 이별 후에 다 포기한 듯 살면서, 예쁜 옷은 포기하고 펑퍼짐한 옷만 골라 입으면서 나잇살은 어쩔 수 없다며 자기 위로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혼과 관계없이, 심지어 결혼에 실패했을지라도, 나의 가치를 잃지 않고 더욱 높일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나이 들어도 당당하고 늘 활력 넘치면서 누구와 함께하지 않더라도 오롯이 거침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누군가에게 사랑받아야지만 채워지는 이 아니라 내가 나 홀로도 진정으로 괜찮은 삶을 살아가는 나이길 바란다. 나는 아직 나에게 그런 기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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